글/ 상하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다. 십몇 년 간 비바람 속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눈물도 흘렸으며 여러 차례 박해 속에서 큰 마난도 감당했다. 바로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나에게 끝까지 수련하게 불러 주셨으며 사부님의 가호로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게 됐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개인수련 원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중생구도를 해야 하는 이런 신성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정법이 당신들에게 부여한 위대한 책임을 저버리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이 부분 중생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이미 그들이 능히 미래에로 진입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므로 모든 대법제자들, 신노 수련생들은 모두 행동하여 전면적인 진상 알리기를 시작하여야 한다. 특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들은 사람마다 모두 나와서 말해야 하며, 곳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닿도록 해야 한다.”(『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나는 비록 대법제자의 책임을 알았으나 검은 소굴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박해를 당한 그림자가 때때로 뇌리 속에 나타났다. ‘두려움’이 나를 잡아당겼다. 나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법공부 강화임을 깨달았다. 말과 행동, 사유가 법에 있다면 대법의 위엄과 힘을 지니게 되고 구세력과 사악은 틈을 탈 수가 없으며 사부님과 일체 바른 신이 대법제자를 위하여 돕게 된다. 동시에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 법리에 대해서도 진일보 이해하게 됐다.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점차 심태가 안정됐으며 ‘두려움’도 끊임없이 닦아버리게 됐다.
이번에 사당은 상하이 엑스포(세계박람회)를 열면서 4월 27일부터 5월 4일 8일간 소위 엄격한 관리를 시작했다. 상하이 많은 대법제자는 박해를 당했다. 쑹장 지역에서는 6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어 다시 조를 나누어 한 명의 수련생을 박해했다. 또 반년 간(상하이 엑스포는 는 반년 간 진행된다) 대법제자에 대해 24시간 감시한다고 떠들었다. 또 민싱 지역에서는 9명이 한 팀으로 구성해 세 개 조로 나뉘어 한 명의 대법제자를 박해했다. 이미 한 달간 건물 계단 입구에서 수련생이 드나드는 것을 감시했다. 현재 대법제자의 일상 생활과 중생구도를 심하게 교란했다. 이 기간에 나도 사악의 박해에 직면하게 됐다.
올해 4월 27일 나와 남편(동수)이 막 거주지에서 나가려는데 가도위원회 종합치안사무실 인원이 뒤따라 나왔다. 그는 이 며칠간 당신들 마음대로 외출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대법제자는 쩐(眞)ㆍ싼(善)ㆍ런(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합니다. 사람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려 사람을 구도합니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관계하시며 당신들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늘 하던 대로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4월 28일, 사당은 5명을 파견해 나를 감시했다.(낮에는 3명이서) 나는 정념으로 그것을 완전히 부정했다. 친척집에 갔으며 오후에 집에 돌아오다가 중도에서 하차했다. 걸어가면서 행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8명을 탈퇴시켰다. 그때 길가 곳곳에 경찰이었으며 나는 줄곧 정념정행을 유지했다. 물론 안전문제도 홀시하지 않았다.
4월 29일 나는 채소를 사러 나갔고 뒤에는 두 명이 뒤따랐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중 한사람이 말했다. “우리도 방법이 없어요. 우리도 밥을 먹어야죠.”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들에게 사당의 사악함을 말했다. 그것은 당신에게 돈을 주고 있으나 죽음으로도 몰고 있다고 말했다. 그 중 한사람이 말했다. “그럼 제가 밥을 빌어먹으란 말인가요?” 나는 밥을 빌어먹는 것이 차라리 이것보다 나으며 그것은 천리를 위반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도 사당의 박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내일 더이상 오지 말며 자신의 생명을 아끼라고 말했다.
4월 30일 그들은 계속 뒤따라왔다. 나는 걸으면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천안문 가짜 분신자살사건’, ‘4.25’ 및 기타 일부 진상을 알리면서 그 중 한사람을 탈퇴시켰다. 그리고 내일부터 더는 오지 말라고 했다. 단체 법공부날 사부님의 가호로 나는 정념으로 그들의 추종을 물리치고 제 시간에 도착했다. 그 후 어느 날 저녁밥을 먹고 나와 남편은 밖에 나가 산보하려 했다. 내가 아직 아파트 단지 입구를 나서지도 않았는데 한 여경이 달려와서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나에게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반드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쟁투심이 아니며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속으로 나는 대법제자이며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경은 한마디 하고 안으로 나를 들이밀어 출구와 멀리 떨어지게 하려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안으로 밀었다. 남편은 그녀를 깡패라고 했고 그녀는 자신이 깡패임을 승인했다. 남편은 여기는 중국이며 나는 중국인인데 왜 나에게 이 문을 나서지 못하게 하느냐고 말했다. 나중에 그 여경은 이치가 궁색해지자 우리 뒤를 따라 다닐 수밖에 없었다. 얼마 안 되어 그녀는 울었다. 아주 슬프게 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겨우 이 일을 찾았는데 이번에 잘못이라도 저질러 제명당하면 수입이 없어 어찌 살아가겠느냐고 했다. 길에서 나는 그녀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렸고 인류의 대겁난을 이야기했다.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당의 사람을 다루는 일부 사실을 알려주었으며 파룬궁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다 알고 있어요. 우리는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으며 오직 이 일자리, 생존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후의 발정념에서 나는 갑자기 나를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아주 가련함을 깨달았다. 그들도 내가 구도해야 하는 중생이 아닌가! 나는 더는 그들을 ‘개 몇 마리’라고 부를 수 없었다. 나는 ‘眞ㆍ善ㆍ忍’을 수련하고 있지 않은가.
진일보 사악을 폭로하려고 나는 전화나 대면에서 가족, 친구, 세인에게 사당이 이번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파룬궁을 더욱 박해하고 있다고 진상을 알려줬다. 착실히 수련하면서 나는 반드시 참답게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강화해야만 비로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로 걸으면서 자비롭게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 이번 반박해 과정에서 박해를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여기지 않았고 법리에서 청성해졌다. 또한 마음이 아주 든든해졌고 남편(동수)도 같은 감수였다.
문장발표: 2010년 6월 10일
문장 분류: 정법수련 > 이성인식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6/10/2251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