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최근 주변 수련생이 병업 중 갑자기 세상을 떴다. 동수들은 그녀가 수련을 비교적 확고히 했고 정진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동수들 중에서 조성한 영향과 진동도 비교적 커서, 어떤 동수에게는 이런 생각까지 생겼다. ‘그녀가 수련을 그렇게 잘하고 그렇게 확고했는데 나는 아무리 어찌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떤 동수들의 말 가운데서 나는 신사신법의 이 근본 문제를 보았다.
사실 세상의 어떠한 일이 발생하든 모두 우연한 일이란 없으며, 수련은 더욱 그러하다. 장장 십 여 년이나 되는 박해 중, 노동교양소, 감옥 등 검은 소굴에서 박해받아 죽은 사람으로, 검은 소굴을 걸어 나와 죽은 사람으로, 병업 중 세상 뜬 사람과 기타 돌발적인 사건으로 세상을 뜬 대법제자, 수련생, 이들은 법을 얻었으나 장시기 수련하지 않는 사람의 개별 현상이 아니며 그 중 원인도 복잡다단하다. 어떤 것은 우리 이 공간장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표상이 있으며, 또한 다른 공간에 있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요소도 존재한다. 이런 일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 역시 우리 각자 법에 대한 인식, 心性 층차에 대한 고험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서유기』중의 삼장법사가 서천으로 경을 얻으러 갈 때, 구구 팔십일 난을 겪었다. 이런 난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여래불과 관음보살이 설치한 것으로서 넘기만 하면 정과를 수련 성취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그만두고 말게 된다. 하지만 삼장법사는 중생의 고통을 해탈시켜 주기 위해 진경을 구하려 하는 이 일념에 의지해 넘어 갈 수 있었고 결국 부처의 과위를 성취했던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이라면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사부님 법을 공부하는 중에서 이미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하고, 장래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법으로 일체 사물의 표준을 가늠해야 하고, 우주 중의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아야 하지, 속인의 사유, 인식과 관념으로 문제를 보지 말아야 한다. 수련생이 박해로 세상 뜬 것은 우리를 비통하게 하고 괴롭게 한다. 하지만 수련인의 안목으로 본다면 수련생이 앞서 간 것은 틀림없이 동수 자신에게 원인이 존재할 것이며, 아마도 그가 구세력과 무슨 계약을 맺었든지 아니면 무슨 관련이 있었거나, 다른 기타 원인이 있었을 것인데, 각종 원인으로 그 자신(우리자신을 포함해)이 보지 못하고, 똑바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구세력이 배치한 길은 사부님께서 승인하지 않으시며, 또한 우리에게 전면 부정하고 승인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사당 문화에 주입당한 속인이 뭐라고 한 말을 첫 자리에 놓는가? 무엇 때문에 사악의 박해를 그렇게 중하게 보는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2008년 뉴욕 법회 설법』)라는 법을 알려 주시지 않았는가? 가령 우리가 속인을 대단해 하고 박해를 중히 본다면 사람의 사유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바로 구세력의 박해에 이른바 구실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병업 박해 방면에 관한 법을 이미 매우 많이 말씀하셨고 알려 주셨다. “수련생에게 엄중한 병업(病業)이 나타나면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또 우리에게 당부 하셨다.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당신은 어느 사람이 수련한 것이 어떻다 해서, 그리하여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안 된다.”(『2004년 뉴욕 국제 법회설법』)만약 우리가 이때에 사부님 법을 생각할 수 있고 아울러 법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면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수련 중의 사람에게는 사람 마음과 집착이 있기 마련이므로 폭로돼 나오면 그것을 닦아 버리면 되는 것으로 절대로 두려울 것이 없다. 관건은 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의 배후에 숨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가령 이 때문에 신사신법의 근본이 동요된다면 이건 큰 문제다. 내가 느끼건대 사람마다 이런 문제에 봉착할 때면 모두 반드시 자신에게 깊이 숨어있는 그 마음을 안으로 파본다면 다른 마음도 모두 잇따라 점차 닦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만은 동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가 수련 중에서 봉착하게 되는 어떠한 난관, 혹은 구세력의 이른바 무슨 고험도 모두 신사신법 이 근본을 겨냥한 것이 아닌가? 가령 우리가 시시각각 법의 기점에 서 있고, 사람의 사유, 인식과 관념에서 뛰어 나와 우주 중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볼 수 있다면 아직도 우리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는 무슨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현 층차의 조그마한 인식이므로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6월 1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6/16/2254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