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5월 12일】나는 중국의 노인 대법제자이다. ‘세계 파룬따파의 날’에 즈음하여 대법제자와 세인을 구도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와 수련생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는 1998년 5월 말에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당시 나는 51살이었는데 몸이 극도로 나빴다. 수많은 병 때문에 걷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남편은 다른 여자가 생겼고, 나는 이혼에 직면하여 몸과 마음이 다 지쳤다. 아들은 외지에서 공부했고, 큰 아이는 딸이었는데 아주 철이 들었다. 딸은 베이징에 유명한 전문의가 있다면서 검사해 보자고 하였다.
병원에 가니,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하지만 수술 후 꼭 낫는다고 보장할 수 없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고 했다. 허리에는 신경이 많아 수술 시 다른 신경을 건드리기 쉽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하였다. 나는 수술하지 않기로 했다.
5월 29일, 딸이 책 한권을 갖다 주면서 보라고 했다. 딸의 동료가 아주 좋은 공법이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보니 《파룬궁(수정본)》이었다. 책을 보니 정말 좋았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은 채 단숨에 읽었다. 책을 다 읽고는 책속의 사진에 따라 동작을 연마하였다.
딸은 동료가 연공장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하였다. 나는 연공장에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이렇게 나는 반본귀진의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 날부터 나의 인생에는 철저한 개변이 생겼다.
대법을 수련한지 나흘째 되는 날, 은백색 파룬이 매우 빠르게 도는 것을 보았다. 18일째 되는 날, 연공장에는 사부님 광주 설법 녹화를 틀어 놓았다. 이튿날 일년 반이나 끊겼던 생리가 왔다. 나는 속으로 아주 번거롭게 생각하였으나 동수들은 아주 기뻐하면서, 이는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 주시어 젊은 방향으로 밀어준 것이니 번거로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깊어지는 법 공부를 통해 나중에는 이것이 진정으로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련을 한지 두 달이 되었을 때, 서서 연공을 하는데 나의 상반신이 비할 데 없이 큰 것을 보았다. 배꼽 아래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었고, 하늘은 아주 넓었다. 또 푸른 바탕에 흰 꽃이 있는 사발이 구름 속에서 재빨리 돌고 있었는데, 그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연공을 마치고 나서 이런 상황을 동수들에게 말하였다. 동수들은 듣고 나서 모두 아주 기뻐하였고,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지금의 몸 상태가 예전과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물음은 단번에 나의 몸에 있던 모든 병들을 생각하게 했다. 생각해 보면 첫 날 수련생이 나를 데리고 연공장에 올 때 나는 어기적거리며 들어왔고, 두 치의 문턱마저 문설주를 잡고 넘었다. 지금 나는 언제부터 모든 병이 다 없어졌는지 모른다. 몸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기뻐서인지, 격동되어서인지 아니면 감사해서인지 그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 때 나는 자신이 전혀 50대의 사람 같지 않고, 막 30세가 된 것 같았다. 날마다 정력이 충만하여 아침 연공에 참가하였으며, 연공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오전 내내 법 공부를 하였고, 점심은 찐빵 하나에 더운 물 한 컵이었다. 오후에는 5~10명이 각자 나가서 홍법을 하였으며, 저녁에는 단체 법 공부를 하였다. 생활은 충만하고도 유쾌했다. 그 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법 공부와 연공뿐이었다. 《전법륜》과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빼놓지 않고 보았고, 볼수록 더 보고 싶고, 공부할수록 더 공부하고 싶어서, 한 편, 한편씩 공부했으며, 날마다 연공을 견지함으로서, 후에 법을 실증하는데 튼튼한 기초를 닦았다.
우리는 인력을 더 많이 점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팀을 이루었다. 우리 팀은 세 사람이었는데, 그중 두 사람은 부부이고 둘 다 출근하므로, 저녁에 나가서 홍법 하였다. 낮에는 자료를 잘 준비하고, 사람도 잘 연락해 놓은 다음, 저녁에 나가서 사부님 설법 녹화를 틀어놓았다. 17, 8 리나 되는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돌아오면 늘 자정이 넘었다. 길이 멀 때는 남자 수련생이 세 바퀴 오토바이로 우리를 태워다 주었다.
1999년 겨울 어느 날, 큰 눈이 내려 얼음과 눈이 깔린 망망하고 새하얀 세계였다. 하지만 이런 날씨도 홍법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홍법하고 돌아올 때 중간에서 오토바이가 고장 나 움직이지 못했다. 망망한 눈 바다 속에 있었지만 우리 세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중 두 사람은 96년에 법을 얻은 노 제자였는데 여 수련생이 남 동수에게 말하였다. “당신 차를 자세히 검사해 보세요, 사부님 법신은 우리를 도와줄 거애요.” 여 수련생은 나에게 사부님의 시 《인과》를 외우라고 하였다. 아직 다 외우지도 않았는데, 먼 곳에서 한 줄기 불빛이 비쳐왔다. 가까이 와서 보니 다른 팀의 동수들이 트랙터를 몰고 왔다. 여러 수련생이 함께 얼마 안 걸려 차를 수리하였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였다.
1990년 7월, 장모모를 두목으로 한 중공 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새빨간 거짓말로 세인을 속이고 중생을 독해하였다. 사부님의 제자로서, 대법의 진실한 수련자로서, 우리는 ‘파룬따파는 정법’이란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대법제자들처럼 정부와 세인에게 대법의 진상을 똑바로 알리기 위하여 천안문을 향했다.
그 때 우리는 정부가 시비를 분명히 가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중공은 근본적으로 사악했다. 청원을 하러간 대법제자들을 구치소나 감옥에 집어넣었다. 나는 현지 구치소에 갇혔다. 구치소에 불법구류 되어 있는 동안 남편은 이혼 기소장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아마도 그와 나 사이에는 그 몇 년 동안의 부부인연 만이 있었던가 보다. 나는 이혼기소장에 서명을 하였다. 수련하기 전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한 장짜리 대법진상 전단지를 만드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적게 만들어서 나는 겨우 두, 세 장씩 동수들에게 가져다 보여 주었다. 동수들은 보고 나서 밍후이왕 이라는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련에 방향을 잡게 되었다면서 큰 고무를 받았다. 이렇게 한두 번 다녀오면서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협조인이 되었다. 검은 구름이 도시를 무겁게 내리 누르던 나날에,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껴 문을 나서자마자 가슴이 뛰어 대범하게 걸을 수 없었다. 이런 상태는 나를 아주 화나게 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뭐가 두려우냐? 내가 배운 이 법이 바르지 못한 것이냐?’ 물론 아니다. 정념을 강화하기 위하여 나는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를 외웠다. 열 번을 외우기도 전에 두려움이 없어졌고, 온 심신은 이 말 속에 녹아들었다. 허리가 곧게 펴졌고, 다리에도 힘이 생겼으며, 대범하게 걸을 수 있었다. 이렇게 몇 년을 지나왔다. 자료를 어디로 보내든지, 얼마나 멀든지, 그 길에는 모두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가 남겨졌고, 이렇게 8, 9년을 보냈다.
2004년 추석 4일 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처녀가 탄 오토바이가 나를 아주 심하게 부딪쳤다. 나는 자전거를 탄 채 부딪친 후, 공중에 떠올랐다가 3미터 되는 곳으로 떨어졌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사고를 낸 처녀는 겁에 질렸다. 내가 정신이 들자 첫 번째로 생각한 것은 바로 ‘사부님 구해주세요’ 였다.
눈을 떠 보니 많은 사람들이 둘러 서 있었다. 천천히 땅에서 기어 일어나 한 남자에게 나의 자전거를 일으켜 달라고 하였으나, 그는 꿈쩍하지도 않았다. 나는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 말했다. “선생, 두려워 마세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을 하는 사람입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므로 텔레비전, 신문의 선전을 듣지 마세요. 그건 다 사람을 속이는 것이에요.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어요. ‘쩐,싼,런(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말씀해 보세요. 잘못이 있을 수 있어요? 나를 부딪친 저 처녀도 절대 고의가 아니었을 겁니다.”
나는 처녀에게 말했다. “두려워 말아요. 난 당신 돈을 빼앗지 않을 거예요.” 여기까지 말하자 그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할머니, 공안이 듣겠어요, 제가 자전거를 세워 줄 테니 가실 수 있겠어요?” 나는 문제없다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먼지를 툭툭 턴 다음 자전거를 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밥을 짓고, 외손녀를 데려 왔다. 나는 두 눈이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오른쪽 눈이 자꾸만 위로 쏠리는 것 같아서 만져 보았는데, 뒤통수 오른 쪽이 계란만큼 크게 부어, 오른쪽 눈이 자연히 위로 끌려 올라간 것이었다. 하지만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았다. 그저 좀 저리고 부푼감이 날 뿐이었다. 딸과 아들은 경과를 듣고 물었다. “엄마, 엄마는 ‘쩐,싼,런(眞,善,忍)’을 수련하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겠죠?” 그렇다고 하자 아들이 또 물었다. “엄마는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정말 아프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아프면 어떻게 밥을 짓고 애를 데려올 수 있겠냐?” 그래도 아들은 믿지 못했다. 나중에 자식들은 굳이 나를 끌고 병원에 가서 검사하려 하였다. 딸이 울면서 애걸하였다. “그냥 사진만 찍는데도 안 돼요?” 그들을 따라 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나는 일념을 발했다. ‘난 아무 일도 없다. 아무것도 검사해 내지 못할 것이다.’ 병원에 이르러 나는 또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일념을 발했다. CT실에 들어가 나는 일체는 정상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사진을 찍은 후 딸이 보더니 기뻐서 야단이었다. 몸을 다치지 않았을 뿐더러 예전의 병들도 깨끗이 없어졌다.
딸과 아들은 대법의 초상적임에 탄복을 했고, 나는 이 기회에 그들 둘에게 자세히 진상을 알려 주었다. 딸은 그 후부터 늘 친구들에게 대법진상을 말해 주었다.
2008년 중공은 올림픽을 빌미로 전국에서 대법제자를 함부로 체포하였다. 우리 지역의 동수 두 명도 불법 체포되어 판결 받았다. 이렇게 되어 우리 지역에 진상 자료가 없게 되었다. 이 때 나에게 자료를 만들려는 생각이 싹텄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므로 큰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법 공부를 대량으로 하면서 나는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자료를 만들 결심을 했고, 만 송이 꽃 중의 한 떨기 작은 꽃이 되리라 결심했다.
동수의 소개로 기술수련생을 알게 되었다. 그는 참답게 가르쳐 주었고, 나는 자세하게 기록했다. 하루 사이에 기본적인 조작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지역의 작은 꽃이 활짝 피어났다. 지금 나는 젊은 동수와 협력하여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작은 꽃이 법정인간 시까지 계속 피어나게 하리라 맹세했다.
사부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대법에 대한 송가는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앞으로 계속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사존님! 안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0년 밍후이왕 ‘5.13 파룬따파 날’ 원고모집 선정)
문장발표 : 5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5/12/2229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