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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을 깊이 캐다

글/ 충칭(重慶)시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2010년 4월 27일] 나는 98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오늘까지 걸어왔지만 여전히 사람의 마음이 매우 많다. 오늘 나는 질투심을 내놓고 동수들과 교류해 공동 제고하려 한다.

이전에 나는 늘 질투심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었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강하고 혹은 나보다 잘 지낸다고 불편한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질투심에 대해 전혀 중시하지 않았으며 자신에게는 없다고 여겼다. 지금 내가 말하려 하는 것은 질투심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뿌리 깊게 박혀 있으며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2004년 경에서야 발견했다. 나는 작은 가게를 했었는데 장사가 잘됐다. 당시 가게 인근에 한 부인의 남편이 코에 암이 생겨 화학치료를 해야 했는데 돈이 없어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에게 가게 업무를 좀 봐달라고 하고 돈을 주었다. 나는 그녀를 넷째 언니라고 불렀는데 그녀 가족들은 모두 나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둘째 언니도 생활과 경제면에서 모두 전력을 다해 그녀를 도왔다. 특히 둘째 언니는 그녀에게 매일 음식을 싸주었지만 수개월 동안에 한 푼의 돈도 바라지 않았다. 나는 매우 감동했다.

넷째 언니는 마음속 말을 모두 나와 이야기했는데 그녀는 내가 믿을만하다고 여겼다. 화제의 대부분은 그녀의 남편에 대한 말이었다. 이 시누이는 돈이 있어도 그들을 얼마 돕지 않았으며, 저 시누이도 그들을 돕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암이 걸려 돈이 없어도 마작을 하며 놀고 있다는 등등 매일 화제는 이런 것들이었다. 듣기에 좀 거북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녀는 수련을 하지 않아 사람지간의 인연 관계를 알지 못하고 마음속 원망과 증오를 어디에든 털어 놓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 참으면 아주 괴로울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말을 하고 나는 할 일을 하면서 한쪽귀로 듣고 한쪽귀로 흘렸다.

이틀도 지나지 않아 둘째 언니 집에서 순두부를 먹게 됐는데 그녀는 나에게 꼭 오라고 했다. 집에 들어서자 나는 어안이 벙벙해 졌다. 그녀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으며 낡은 집에 쓸만한 가구도 없었는데 도리어 그렇게 사심 없이 그녀의 동생을 도왔으므로 둘째 언니 가족에 대해 더욱 존경하게 됐다. 당시 내가 알기에 넷째 언니 집의 월수입은 1500위안 이상으로 둘째 언니 집 수입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그녀의 집과 가구들은 모두 새것이었다. 이런 것을 보고 나는 좀 불만이 있게 됐으며 넷째 언니가 뻔뻔스럽다고 여겼다. 또다시 생각하니 연분이라고 생각됐는데 아마도 둘째 언니가 그녀에게 빚진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불만스러운 마음은 좀 나아졌다. 이후 그녀가 둘째 언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둘째 언니를 대신해 그녀의 집을 분석하고 난처한 점을 얘기하면서 넷째 언니에게 그래도 스스로 집에서 밥을 지어먹는 것이 좋겠다고 제기했다. 매번 여기까지 말하면 그녀는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아 나의 건의를 뒤엎었다. 내가 너무 많이 생각한다는 둥, 둘째 언니 부부가 어떻게 좋다는 둥, 또 그녀의 집에 가서 밥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등등을 말했다. 어떤 때 또 아주 화를 내면서 내가 그녀의 난처한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가 시집을 원망하는 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들을수록 괴로웠고 그녀가 시어머니의 편안함을 질투하고 시누이들이 한가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질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는 것이 거슬릴 때는 정말 그녀에게 몇 마디 하고 싶었으나 나는 그래도 참았는데 그런 참음은 속인의 우려하는 마음의 참음이었다. 그녀를 해고하고 싶었으며 무슨 이유를 댈까 생각해봤다. 그녀의 말이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가게는 열심히 돌보고 있으니 말하기 어려웠다.

그간 나는 매우 고뇌했으며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내가 왜 괴로워할까? 이것은 무슨 마음일까? 내가 무엇을 구하려 하지? 사부님께서는 명리정을 건드리므로 비로소 괴롭다고 하셨다. 또 명리정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여겼다. 속으로 대법제자의 신변에서 나타난 그 어떤 일도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그런 마음이 없으면 그런 난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자신이 나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승인했다. 하지만 괴롭게도 어떤 마음인지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성심으로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찾아주실 것을 간곡히 빌었는데 이후에 『정진요지』「경지」에서 “악자(惡者)는 질투심 탓으로 사(私)를 위하고, 화풀이를 위하며, 스스로 공평치 않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으니, 원망도 없고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것이 내가 찾는 답안이 아닌가? 당시 너무나 격동됐고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점화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며 더욱 부끄러운 것은 법공부를 너무 적게 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내 질투심이 일으킨 사건이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넷째 언니의 질투심을 분명히 보도록 해 이 마음이 있다고 점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돌이켜 보지 못했다. 명백해진 후 틈만 있으며 발정념을 해서 나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은 질투심을 제거했으며 차츰 나의 마음은 온화하게 됐고 무엇을 보아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넷째 언니도 내 가게는 도우미를 구하지 않아도 되며 내가 그를 도우려고 한 것임을 알게 됐다. 며칠 후 넷째 언니는 다른 곳에 출근하기로 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우리는 기쁘게 헤어졌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나는 진정 ‘막다른 골목에서도 길이 열린다는 것(柳暗花明又一村)’에 대한 함의를 깨달았다.

그 후 어떤 일에 봉착하든지 법에 따라 이렇게 비교해서야 비로소 나의 질투심이 많고 깊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질투심」중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설법할 때 늘 질투심 문제를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질투심의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속인은 사(私)를 위하고 화풀이를 위하며 스스로 공평치 않다고 여긴다. 이런 심태는 수시로 나타나고 일마다 있다. 자신이 감각이 없다고 해서 없다고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7/2222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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