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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일에 나서다’를 말해보자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16일] 『밍후이주간』(중문 430호, 한글 194호)에서 ‘동수와의 왕래에서 어떻게 씬씽을 지킬 것인가’라는 글을 읽었다. 동수지간에 모순이 발생했을 때 한 쪽 수련생이 다른 한 쪽 수련생이 어떻게 나쁘며 억울하다고 하거나 원망하는 것을 듣게 된다. 이 말을 듣게 된 수련생은 분함을 참지 못하거나 심지어 불공평한 일에 나선다. 일으킨 작용은 동수지간에 모순을 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더욱 심하게는 정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사존님께서는 『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과거 인류사회는 올바른 이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사람은 여태껏 모두 징벌이라는 수단으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하여 이것이 사람의 이치가 됐다. 사람이 신(神)이 되고자 한다면 사람의 상태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럼 이런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며, 자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러분은 조용히 생각해보라. 불공평한 일에 나선 결과가 어떠한지? 어느 한 쪽을 향해 불공평한 일에 나서면 더욱 다른 한 쪽의 원한을 사게 될 것이고 더욱 동수지간의 간격을 넓혀가게 되며 정체를 저애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불공평한 일에 나서게 함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모순을 해결하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면 단지 ‘뒤섞어 놓은 것’밖에 되지 못한다.

사람은 인간세상에서 모순을 피해갈 수 없고 아무리 좋은 친구사이라도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노라면 반드시 삐걱거릴 수 있다. 이런 크고 작은 일들에 있어서 오직 ‘한 발작 물러서면’ 곧 ‘광활함’을 느끼게 된다. 만일 다른 사람이 관계하면, 뒤섞어 놓을수록 더욱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서로 잘 아는 사람끼리 싸우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가서 ‘관계’한다면 이 두 사람은 싸우지 않고 오히려 일치하게 협력해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쓸데없는 일에 간섭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통 보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한 쪽을 위해 불공평한 일에 나서서 분함을 참지 못하고 다른 한 쪽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싸움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에 기름을 뿌리는 격이 될 것이다.

갑수련생은 병동수에 대해 불만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갑수련생은 지금까지 병수련생을 만나지 못했고 병동수도 갑동수한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갑수련생은 지금껏 보지도 못했고 모르는 사람인 병동수에게 깊은 견해를 가지게 됐다. 원인은 을수련생이 갑동수에게 병동수에 대한 원망을 하소연했고 갑수련생은 을동수에 대하여 동정하게 됐다. 그리하여 갑수련생은 병동수에 대한 분함을 참지 못했다. 을수련생은 갑수련생이 자신을 위해 불공평한 일에 나서주자 더욱 힘이 나서 전반 지역에서 병수련생이 어떠어떠하다고 말했다.

을동수로부터 병수련생이 어떻게 나쁘다는 말을 들은 전반 지역의 동수들은 을동수의 이런 행위가 실제로는 ‘뒤섞어 놓는 것’임을 알지 못했고 간격을 벌어지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음을 몰랐다. 오히려 을동수의 말을 듣기 좋아했고 병동수한테 가서 권했고 병동수에게 을동수와 협조하라고 했다. 그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에 대해 무슨 일을 잘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일을 하는 방식이 아니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뒤섞어 놓는 것’이다.

나도 많이 느끼는데 사람과 사람지간의 모순은 정말로 아주 복잡하다. 허나 누가 또 그 배후의 인연관계를 알 수 있겠는가? 일의 인연관계를 잘 모르면 쉽게 일을 잘못 처리할 수 있으며 빚어낸 업은 위로 상승하는 길을 가로 막게 된다. 마치 갑수련생이 을수련생을 위해 불공평한 일에 나섰으나 무의식적으로 병동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영원히 모르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내가 생각하건대 동수지간의 접촉에 있어서 『동수와의 왕래에서 어떻게 씬씽을 지킬 것인가』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한가한 일’에 섞여들지 말며 그런 ‘뒤섞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동수와 접촉할 때는 한마디 속인의 말도 하지 말고 오직 법에서의 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되면 한 쪽 수련생은 다른 한 쪽 수련생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이끌려서 모순 속에 빠져들어 분함을 참지 못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또 무의식적으로 정체에 저애작용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다.

부당한 곳은 자비롭게 지적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16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 이성인식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16/2215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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