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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로 서로 협조에 함께 참여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4월 9일】내가 현지에서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정체로 서로 협조하여 공동으로 제고한 교류의 글을 쓰려고 생각한지 꽤 되었다. 허나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성숙되지 못하여 실천 중에서 모자라는 부분이 존재했기에 줄곧 쓰지 못했다. 현재 우리 지역의 동수들은 모두 정체협조의 문제에 관심이 많고 자신들의 일부 인식을 제출했다. 여기에서 계발을 얻고 나도 개인의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사부님은 대법제자가 서로 협조하기를 요구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의 설법에서 대법제자는 서로 협조해야 하는 법리를 말씀하셨다. 『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에서 한 제자가 사부님께 여쭈었다. “대법제자들은 어떻게 하나의 정체(整體)로서 정법 중에서 작용을 발휘해야 합니까?” 사부님께서 대답하셨다. “서로 협조하도록 하라. 단체적으로 일을 할 때나 단독으로 일을 할 때 또는 몇 사람이 같이 무엇을 할 때 모두 잘 협조해야 한다.” 또 한 제자가 여쭈었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로서 어떤 것이 개진할 필요가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면이고 결함입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하나의 정체(整體)로서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일치하여 협조한다면 법력(法力)이 대단히 클 수 있다. 여러분이 단체로 일을 하든지 아니면 자신이 단독으로 일을 하든지 간에 여러분이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일이며 이것이 바로 정체(整體)이다. 모두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하며 법공부를 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일을 함에는 같지 않으나 질서 있게 분담하고 모이면 형태를 이루고 흩어지면 입자로 된다.” 사부님께서는 또 『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과 기타 설법에서 우리에게 서로 협조해야 하는 법리를 말씀하셨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께서 대법제자가 서로 협조해야 한다는 법리의 학습을 하고 나는 협조에는 국부적인 협조와 정체적인 협조가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몇 사람으로 이루어진 법공부 팀이나 진상을 알리는 팀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잘 하려면 곧 협조를 잘해야 한다. 또 우리가 단체로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는 정체로 협조해야 함이 요구된다. 국부적인 협조가 잘 되면 이렇게 전체가 정체를 이루는 것에 기초를 다지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대도무형의 느슨한 관리방식의 수련형식을 주셨다. 수많은 대법제자는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만일 한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면 기타의 수련생은 정체로서 일치하게 협조하여 일을 잘해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연락인 혹은 협조인이 이 생각을 모든 동수에게 알려주어 일치하게 협조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공동으로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잘하는 것은 바로 정체적으로 서로 협조를 잘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볼 때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함에 하나의 협조된 정체를 이룰 것이 필요하다. 서로 협조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이시며, 사부님께서 정법하시고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수요이다.

정정당당하게 협조하다

우리 지역은 정체로 협조하여 법을 실증하는 면에서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와 일정한 거리가 있다. 돌출된 표현은 ‘흩어짐’이고 각자의 주장에 따라 일하며 서로 협력하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체적으로 서로 협조하는 것이 결핍되어 사악이 박해하는 형세가 일정한 범위에서 비교적 엄중했다. 비록 우리 적잖은 수련생이 발정념을 견지하고 있었으나 단체로 박해당한 수련생을 구출하는 효과에서는 이상적이지 못했다. 심지어 전에 침통한 대가를 지불한 적도 있었다.

왜 우리가 서로 협조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원인이 아주 많으며 개인적으로는 주로 세가지라고 본다.

1. 협조인 간에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로 조성된 간격을 부정하거나 제거하지 못했다. 어떤 협조인은 기타의 협조인과 사람의 것이 작용하여 장기간 간격이 존재했다. 심지어 현지에서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함께 참여하여 협조할 수 없었다. 우리는 늘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입으로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현지 협조인 간에 존재하는 간격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의 협조인은 아직 완전히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2. 일부 수련생은 정체로 협조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편파적이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의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해 협조하는 일은 모두 수련이 잘 된 수련생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며 심부름이나 하고 소식을 전해주는 것은 괜찮다고 여기나 협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전부터 정체로 협조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말했다. “모모(협조인)는 나로 하여금 당신에게 이것을 전하라고 했다.” 마치 자신은 상급에서 파견됐고 말을 전해주고 소식이나 알려주는 사람이며 협조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또 어떤 수련생은 분명히 정체로 협조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협조인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승인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러한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서로 협조하라고 하신 법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3. 동수의 집착이 정체적인 협조를 저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분별심, 배척하는 마음에서인지 아니면 무슨 마음에서인지 개별적인 협조인의 협조는 받아들이나 기타 협조인과의 협조에는 협력해 나서지 않는다. 또 어떤 수련생은 의존심이 있어서 현지의 정체협조는 그 몇 사람이면 된다고 여기면서 자신은 협조하는 일에 게을리 했다. 이상의 여러 가지 표현으로 현지에서 정체로 서로 협조하여 대법을 실증하는 것에 일정한 저애력과 어려움을 가져왔다.

이렇게 협조가 잘 안 되는 표현은 근본적으로 볼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제자가 서로 협조해야 하는 법리에 관하여 잘 공부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부님은 설법에서 일찍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셨다. 사람마다 모두 책임자이고 사람마다 모두 협조인이며 협조인은 단지 대법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으로 협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우리 대법제자는 진정으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해야 하며 마음속으로부터 ‘협조’를 신성한 위치에 놓아야 한다. 자원적으로 더 많이 걸어 나와 정정당당하게 협조해야 한다. 당신도 협조하고 나도 협조하며 당신은 나와 협조하고 나는 당신과 협조해야 한다. 나중에는 백맥이 모두 통하여 맥도 없고 혈도 없이 간격이 없어야 하며 일치하게 협조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지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대법의 가르침 하에 협조 일을 잘해야지 사람의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

동수들이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따라 정체로 협조하여 일을 진행할 때 어떻게 하면 더욱 잘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대법제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정념으로 해야지 사람의 마음으로 협조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는 대도무형이고 정체적으로 느슨히 관리하는 수련형식이다. 이러한 수련형식은 대법제자가 정체로 협조하는 것과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을 진정으로 완미하게 통일시키고 있다. 우리는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있는 군체이지 속인 중의 행정조직이 아니다. 이것이 대법 속의 협조는 행정 간부의 행위가 아님을 결정하는 것이다. 명령을 내려 실시하는 것이 아니며 협조인도 속인사회의 행정 간부가 아니다. 때문에 대법 속의 협조인은 어떠한 행정권력 혹은 행정명령 등 행위로 수련생이 자신의 법 실증의 길을 걷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협조인은 당연히 이지적이고 청성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 명령, 권력으로 협조해서는 안 되며 이것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며 그 효과도 절대 좋을 수 없다. 예를 들면 한 노년수련생은 가정환경이 아주 좋고 평온하게 몇 년간 자료제작을 해왔다. 어느 날 갑자기 협조인은 이 노년동수에게 자료 제작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규정했다. 노년수련생은 이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웠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마저 이것은 봐 줄 수 없다면서 그 협조인을 찾아가 어찌된 일인지 분풀이를 하려 했다. 노년동수의 집사람이 말했다. “다년간 악경도 집에 찾아와 시끄럽게 했으나 우리 집에서 자료를 제작하는 일을 가로막지 못했는데 오히려 당신들 자신이 하지 못하게 하다니, 당신들은 공산당보다 더 무섭다! 이 협조인의 일 처리 방식은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적극성을 심하게 타격했다.” 알아보니 이 협조인은 전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악이 기뻐할 수 있는 유사한 일을 했었다. 이 협조인은 마땅히 이지적이고 청성하게 자신을 반성해야 하며 법을 실증하는 기점에 서서 자료제작을 하던 그 노년동수와 선의적으로 교류를 해야 하며 나쁜 영향을 제거해야 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에서 사부님은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사실 나는 일찍이 각 지역 책임자더러 느슨히 관리하라고 알려주었다. 당신들이 단체적으로 일을 할 때 여러분이 반드시 서로 협조하는 것 외에는 대법제자 개인이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는 것을 속박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 동수든지 협조인 이든지 누가 다른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고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을 ‘속박’ 혹은 제한한다면 누가 곧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부님이 우리더러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면서 협조하는 일을 잘 하려면 절대 사람의 마음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 대법제자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생명이며 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면에서 말할 때 일부 사람의 마음이나 집착이 표현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동수 사이나 협조인 지간에도 어떤 때는 각종 모순과 쟁론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신의 면에서 우리는 마땅히 청성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 집착, 쟁론은 결국 사람의 것으로 당연히 수련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신의 일면으로 억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직 신의 일면이 주도적 지위에 있어야 비로소 사람의 것을 억제하고 제거할 수 있다. 법을 실증하면서 협조함에 우리 매 협조인은 당연히 신의 관용과 대범한 태도를 사용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용하여 협조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에 대하여 사부님께서는 일찍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실 당신들은 아는가, 그런 대각자(大覺者)들은 하늘에서 그들의 많은 일들에 있어서도 서로간에 협조하고 상의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수련과정 중에서 아직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점차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도달하고 있다. 한 신(神)이 하나의 방법을 제출해내었을 때, 그들은 급급히 가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급급히 자신들의 것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이 좋다고 인정하지 않고, 그들은 다른 신(神)이 제출해낸 방법의 최후의 결과가 어떤 모양인지 가서 본다. 길은 같지 않으며 매 사람의 길은 모두 같지 않은바, 생명이 법 중에서 깨달은(證悟) 이치는 모두 같지 않으며, 그러나 결과는 아마 아주 같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그 결과를 보며, 그의 결과가 도달한 것, 정말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모두 동의하는데, 신(神)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무조건적으로 묵묵히 보완 해주며 그것으로 하여금 더욱 원만하도록 한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문제를 처리한다.”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의 이 설법을 받들어 읽을 때 심령은 깨끗이 씻어졌고 진감을 느꼈다. 나는 깨달았다. 비록 우리 대법제자가 세간에서 수련하고 있으나 우리는 미래 부동한 우주의 왕과 주이며 우리는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중생구도하는 신성한 큰 임무를 감당하고 있다. 사부님의 정법이 마무리 되는 오늘 대법제자는 마땅히 자신의 잘 수련된 신의 일면으로 법을 실증하고 관용과 대범함으로 서로 협조해야 한다. 특히 협조인 지간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법제자는 법을 실증하고 있지 자신을 실증하지 않는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보라, 우리가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할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또 무엇을 용납할 수 없겠는가? 우리가 어찌 좁은 흉금과 간격이 존재하는 사람 마음을 지니고 원만할 수 있겠는가? 일단 우리 동수 사이에 협조인 사이에 의견이 부동할 때 마땅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천상의 신이 어떻게 함께 상의하는지의 법리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모심을 해내야 한다. 내가 여기건대 부동한 의견을 지니고 있는 수련생이 함께 앉아 공동으로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협조하며 모두 안을 향하여 자신을 찾고 자신을 제고할 수 있는 이것을 견지해나간다면 홍대한 관용의 심태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아주 좋은 일이다. 여기에서 진정으로 현지의 동수들에게 건의한다. 줄곧 열심히 협조일을 해왔던 동수들을 포함하여 사부님의 이 설법을 잘 공부하여 진정으로 신(神)적이기 바란다. 신의 관용과 대범한 심태로 정체적으로 서로 협조하는 일을 잘하기 바란다.

우리가 정체상에서 협조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협조인을 통하여 자기 지역의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하는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함이며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현지의 동수들도 마음과 힘을 모아 정체 협조에 참여해 나가기 바란다.

이상의 옆은 견해는 벽돌을 던져 구슬을 끌어들이기 위함(역주: 얕은 의견으로 다른 사람의 고견을 이끌어내고자 함)이며 부당한 곳은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9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 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4/9/2212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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