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3월 6일】 수련하지 않는 아내는 원래 나의 수련을 매우 지지했다. 그러나 내가 간수소에서 돌아온 후 태도가 180도 변해 내가 책을 보거나 연공을 하기만 하면 단호히 반대했다. 어느 한번은 내가 연공하고 있는데 그녀가 뒤에서 나를 콱 밀면서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당신은 아직도 고생이 부족한 거야? 당신이 가정을 아예 없애 버리려고 작정한 거 아냐?” 심지어 한번은 내 책과 녹음테이프를 몽땅 땅에 내동댕이친 적도 있다.
나는 당시 아주 망연자실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수련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한 시기 연공과 법공부를 몰래 하면서 아내가 보기만 하면 마음속으로 좀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나를 욕할까 봐 두려웠고, 대법자료를 훼손할까 봐 두려웠다. 이 일로 하여 나는 동수들과 여러 차례 교류했다.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이것은 당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므로 반드시 정면으로 대해야 합니다. 자비와 관용으로 가족들을 대해야 합니다. 잘 하면 곧 대법을 실증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말했다. “지금은 정법시기입니다. 우리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악이 가족들을 이용해 끝 없이 교란하고 있으니 반드시 엄하게 제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는 끝 없이 참을 수 없습니다. 대법제자는 가정에서도 응당 강인해야 하며, 응당 정정당당한 수련 위치가 있어야지, 속인이 함부로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속인에 의해 움직이고 그들의 말을 따른다면 당신이 또 무엇을 수련한단 말입니까? ”
대체 집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응당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가? 나는 당시 동수들의 생각을 그리 승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건대 가족은 대법을 파괴하는 마가 아니며 그들은 주로 자신들이 또 박해를 받을까 두려운 것이고 친인을 보호하기 위한 데로부터 출발한 간단하고 거친 작법일뿐 본질은 나쁜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로서 응당 그들을 이해하고 관용해야하며, 일체를 선해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간단한 심태로 아내를 대하자 그녀의 태도도 호전되었다.
많은 경우 아내가 화가 나서 고함칠 때면 나는 대꾸하지 않았으며, 정말 참을 수 없을 때는 그 자리를 뜨곤 했다. 점차 아내는 내게 화를 내는 횟수가 적어졌고, 자신이 혼자서 떠들어 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내가 법공부와 연공을 해도 더는 관계하지 않았다.
때로는 아내가 말했다. “사실 나도 당신들 연공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국가에서 연공하지 못 하게 하니 우리는 더는 맞서지 말아야 하지 않나요, 앞으로는 집에서 조용히 하세요.” 이렇게 말 할 때면 나는 그녀에게 대법의 진상을 말하여 주었고 해외의 대법 형세를 말했고, 사이트의 인과응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아내는 표면적으로는 듣기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강렬하게 반대하진 않았다.
나는 그녀가 대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똑똑히 알지는 못 하지만 집에서 나의 표현을 아주 똑똑히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매일 퇴근한 후 나는 주동적으로 부지런히 밥을 짓고 청소하며 아이들의 공부에도 관심을 갖는 등 일체 집안 일를 담당했다. 점차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수련을 간섭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식구들에 대해 책임질 뿐만 아니라,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 아내는 몸이 불편할 때면 나처럼 가부좌를 했다.(다만 시간이 짧았다) 더 후에는 내가 마주하고 진상을 알려 3퇴를 시키는 것도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때로는 내가 진상을 알릴 때 자신도 옆에서 몇 마디 돕곤 했다.
한 번은 아내가 화장품을 사러 갔다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면서 달려와 말했다. “빨리 가보세요, 그 사장에게 내가 3퇴를 이야기했는데 절반 이야기 하고 나니 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가서 똑똑히 말하세요.” 나는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아내와 함께 가서 사장을 탈당시켰다.
나중에 나는 생각해보았다. 만약 동수의 당초 말대로 아내와 강하게 맞서면서 그녀의 표현을 일종 마의 교란으로 간주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은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나에 대해 나쁘게 대하니 나는 너에게 더욱 심하게 대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타이르신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상대방을 이해하고 관용하며, 일체를 너그럽게 이해해야하는데 이것이 곧 한 수련자의 위덕을 건립하는 것이다. 쟁투 심과 자아를 강조하는 요소가 없다면 외계의 일체는 매우 빨리 풀릴 것이다.
그 날 한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 내가 법을 배울 때는 매우 지지했어요.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대법을 공격할 때도 상대방의 말을 반박해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어요. 또 내가 법 공부하고 연공하는 것도 매우 지지했지요. 하지만 내가 박해를 받고 감옥에서 돌아 온 후 아이의 태도는 변했어요. 내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지 못 하게 하였고 나의 가방에 진상자료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생야단을 쳤어요. 어떤 동수들이 우리 집에 오게 되면 아이는 문을 막고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지요. 나는 꼭 이 환경을 바로 잡으려고 몇몇 말을 잘하는 동수들을 데리고 와서 압도하여 아이를 설복시켜 나를 지지하게 하고 그들의 이 바르지 못한 표현을 모두 바로 잡으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많은 가정에서 수련생이 박해를 받기 전과 박해 받은 후 가족들이 대법을 대하는 태도가 같지 않는데 무엇 때문인가요? 그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이고 가족을 잃을까 두렵고, 벌금을 낼까 두려워서이며, 친구나 동료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지요. 가족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 그들은 밖에서 머리를 들 수 없어요. 만약 우리가 상대방의 각도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고 관용한다면 그들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나의 가장 가까운 속인 친구를 생각나게 했다. 내가 감옥에서 나오자 그는 나를 청해 밥을 먹었고 가라오케에 가서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나더러 속인식의 생활을 하고 더는 수련하지 않아 박해를 받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그가 이런 정(情)의 올가미로 나를 동여매려 하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이 일체를 돌파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더는 그의 안배에 좌우되지 않았고, 일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상을 알렸다. 마지막에 그는 대법을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수련을 지지했고, 나를 도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였다. 어떤 것들은 표면상으로 볼 때에는 일종의 교란 같지만 사실은 우리들이 이런 상태에서 바르게 하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수련생이 “아이들에게 교란당하다”라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아이들과 논쟁하지 말아야 하며, 이론이나 혹은 기세로 그들을 압도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과 맞서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는 당신에게 “옳다”해도 그들의 눈에는 “틀리게” 보인다. 그들이 이해했을 때는 그들과 당신이 하나의 정체가 된다. 논쟁하는 자체가 곧 사람의 도리를 따지는 것으로 표면상으로는 법을 수호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내려놓을 수 있고, 온화하고 자비한 마음으로 신변의 친인들을 대한다면, 또 “나는 너희들을 위해며 너희들을 생각한다”는 심태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즐겁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주며, 손주들이 오면 자비로운 어른처럼 대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마음속에 당신의 형상이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때 사실 당신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할 말을 다한 것이 된다. 그들은 당신이 대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씬씽과 경지가 자신이 생활하는 환경을 좋게 변하게 한 것이다. 당신의 가족들도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곧 영원한 봄처럼 따스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며칠 동수들과 교류할 때 몇몇 동수들이 모 촌 간부인 수련생이 맞아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나는 “매우 심하게 맞았나요? “라고 물으니 “심하진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입원했나요? 이 일에는 반드시 자신이 수련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나는 말 했다.
수련생이 말했다. “사실 상처만 놓고 말하면 입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때린 사람은 대법을 향한 것인데 때리면서 너희들 파룬궁은 어떠어떠하기에 우리는 너희들의 위풍을 쓸어 버려야 한다고 했어요.” 매우 분명하다. 수련생은 입원을 통해 상대방이 의료비를 지불하게 하여 상대로 하여금 패배를 인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법은 대법의 무엇을 실증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일을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마을 사람들에게 펼쳐줄 수 있는가? 마을 사람들은 이 일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승인하고 대법제자들의 앞으로의 일을 지지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냉정(冷靜)하게 사고하고, 마음을 조금 더 크게 해서, 우리가 정말로 모든 사람들을 구도해야 할 중생으로 여기고 구도해서, 그에게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라. 그 사악이 플러싱에서 나타나 사람을 통제해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절대로 우연한 것이 아니며, 틀림없이 수련생의 누락이 있는 곳을 겨냥해 온 것이다. 사람의 일면에 대해 한사코 정면으로 맞서지 말아야 하는바, 그들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도하는 것이다. 자비롭게 하고, 냉정하게 해서, 이 일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보라.”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
매번 이 단락 설법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플러싱 사건에서 동수들이 특무들에게 맞았는데 사부님께서는 의연히 우리에게 안을 향해 찾고 한사코 정면으로 맞서지 말라고 하셨다. 이처럼 큰 흉금과 사심 없는 경지는 단번에 나로 하여금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보아내게 하였다.
문제에 부딪치면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법보이다. 그렇다면 나는 생각했다. ‘우리들이 맞은 수련생을 도울 때도 사람이 사람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수련생을 해치고 또 중생을 해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대법과 중생을 구도하는 기점에 서서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 애초 간부를 선거할 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수련생이 촌 간부로 당선된 후 응당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여 사악이 틈을 탄 것이 아닌가?
수련인은 적이 없다. 그 어떤 때에도 대법제자는 모두 씬씽의 표준으로 사람들을 “달통”시켜야지 절대 속인의 방식으로 “사람을 다스리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사악은 더욱 큰 약점을 잡고 당신을 박해 할 것이며, 심지어 당신을 박해하여 수련하지 못 하게 할 것이다.
얕은 인식이니 합당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3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10/3/6/219356.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