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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인의 습관, 사유방식은 정(情)을 자양

글 / 충칭(重京) 대법제자 꾸이쩐(歸眞)

【밍후이왕 2010년 3월 15일】 최근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 많은 부족한 점이 나타났다. 오늘 나는 진정으로 속인의 관념을 보았고, 속인의 관념과 사유방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이 위대한 법(法)의 더욱 깊은 층에 존재하는 함의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이전의 생활 방식과 사유방식으로 일하고 문제를 사고하는데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에 진정으로 법의 요구에 따라,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사고하지 못했고 일하지 못했다. 때로는 마음속으로는 응당 가서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열고 겨우 말을 몇 마디 하더라도 먼저 속인의 일을 말하다가 그만 진상을 알릴 기회를 놓쳐 버리고는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념이 예전의 습관과 두려워하는 마음에 의해 좌우지당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자비심과 긴박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늘 내가 응당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하는가 생각했다. 항상 ‘나’를 위주로 생각하면서 중생의 각도에서 생각하지 못했다. 진상을 알리다가 보면 어떤 때는 중생들이 접수하고 어떤 때는 접수하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이는 곧 자신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에서 ‘나’를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정념으로 사람에 따라 부동한 방식으로 알리면서 걸림돌을 찾아낸 후 병에 맞게 약을 써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중생들의 마음속에 있는 매듭을 풀 수 있고, 문제 해결의 관건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다. 또한 사악이 부어 넣은 거짓말을 돌파할 수 있게 되어, 비로소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나는 늘 말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입을 열어야 하나 열지 말아야 하나 하면서 이것저것을 고려하고 있었으니 진정한 대법제자와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정(情)과 두려워 하는 마음은 마치 매우 큰 고비와도 같아 한 차례 또 한 차례 출현하였다. 그리하여 늘 다 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情)은 삼계 내의 것으로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니다. 또한 역시 주왠선이 존재하는 층차의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반본귀진하고 수련하여 돌아가려면 반드시 이 껍질을 벗겨 버려야 하며 그것을 돌파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아직도 정(情)을 끌어안고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 때때로 나타나고 있는가? 관건적인 원인은 시시각각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유방식에 있어서 사람의 관념이 습관으로 되어 일을 하기만 하면, 혹은 문제를 사고하기만 하면 곧 속인의 정 속으로, 속인의 사유 방식으로, 사람의 관념 중으로 달려가게 된다. 이러한 습관, 사유방식은 인위적으로 정(情)을 자양시킨다. 원래 정은 제거해 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러한 습관과 사유방식이 그를 보류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유방식, 습관을 개변하여 신(神)의 사유, 신의 관념으로 변해야만 진정으로 정을 제거할 수 있다.

두려워하는 것의 뿌리는 사심(私心)에 있고, 자아에 집착하는데 있다. 사심이 없다면, 자아가 없다면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관념과 사유는 또한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사유와 관념은 자사적이어서, 오직 사람의 관념과 사유를 수련해 버려야만 비로소 근본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다.

개인적인 인식이다. 부당한 곳은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10년 3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3/15/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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