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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일이 생긴 수련생을 선하게 대했는가

ㅡㅡㅡ단동 둥항시 동수와 교류

글/ 대륙 대법제자

【 명혜망 2010년 2월 19일】2009년 12월21일 저녁과 22일 아침에 요녕성 단동시 정법위 ‘610’, 단동 공안 1처(국보대대)의 직접적인 조종지휘하에 동항시 공안국 및 하급인 개발구역과 대동의 두 공안분국, 형사 경찰대대, ’110’, 가도 파출소, 각 향진 파출소 등에서모두 출동하여 15명 대법제자를 집에서 폭력 납치 하였다.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이번의 대법제자에 대한 돌연적인 납치는 중공 악당들이 네 달간 미리 계획한 것이다. 현재 아직도 몇 명의 수련생이 동항구치소와 단동백방자 구치소에 불법 수감돼 있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 자료점은 곳곳에 피어나야 한다고 여러 번 언급 하셨고, 동수들도 늘 사부님 말씀을 잘 들어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게 해야 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대다수 동수들 중에는 기다리고, 의지하고, 바라는 심리가 존재한다. 법을 실증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고, 일이 생긴 후에 어떤 수련생은 잡힌 동수에게 ‘죄다 떠민다.’ 그렇다면 동수들은 이 ‘죄다 떠미는’ 것이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만일 매 동수들이 모두 조금씩만 하여도 수련생이 죄다 도맡아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럼 이런 ‘기다리고, 의지하고, 바라는 심리 배후에는 두려운 마음과 안일을 추구하는 심리가 존재하고 있지 않는가? 일이 생긴 후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 원래 재료를 수집하고 직접 만나서 유관 부서에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던 동수들이 이번에 모두 박해 당했다……” 이 말을 통하여 반영돼 나온 것이 바로 동수의 의뢰심이 아닌가?

핸드폰 안전 문제: 내가 알기로는, 동항 지역의 많은 동수들은 핸드폰과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통화 중 늘 인쇄기, 컴퓨터, 종이…… 등 단어를 언급한다. 처음에 한 수련생은 핸드폰 안전에 아주 주의하였다. 수련생이 자기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그는 동수에게 이렇게 핸드폰 대 핸드폰으로 전화하지 말라고 알려 주고는 즉시 번호와 핸드폰을 바꾸었다. 몇 번을 바꾸었으나 동수들은 여전히 주의하지 않았고, 후에 이 수련생은 참으로 방법이 없어 그 역시 핸드폰 대 핸드폰으로 전화하였다. 시간이 오래 가자 많은 동수들이 모두 이렇게 하였고, 또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므로 동수들은 핸드폰 안전 문제에 이지적으로 대하던 좋은 습관을 잊어 버리게 되었다.

심지어 이 번 일이 생긴 후에 많은 동수들은 안에서 찾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 번 일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를 추궁하기 시작하였고, 이번에 납치된 한 수련생은 명리를 중히 여겼기 때문에 비로소 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다고 의론하였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 것에는 잘못이 없다. 가령 그 수련생이 정말로 명을 중히 여겼다면 잡히고 박해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 명을 구한단 말인가? 가령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 수련생은 돈을 자신의 돈주머니에 채울 것이 아닌가?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이 동수의 자식이 이 동수한테서 2백위안을 달라고 하니 없어서 주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여기까지 보고서도 아직도 이 수련생이 이익을 중히 여긴다고 느껴지는가? 이 동수의 능력에 따르면 지금보다 얼마든지 수입이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만 이 수련생은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기꺼이 수입이 높은 사업을 포기하였다. 그럴뿐만 아니라 이 수련생은 자신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격한데, 다른 동수들은 그의 생활 조건이 아주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먹을 것이며, 생필품 등을 보내주면 그는 늘 말하기를 이런 것을 받을 수 없다, 받았다가 자신은 아직 조건이 어려운데 언제 갚겠는가. 또 말하기를 남의 물건을 가지면 덕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 한심한 것은 어떤 수련생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 하지 않으며, 수련생을 위한 발정념도 하지 않는다, 유관 자료를 수집하여 사악을 폭로하지 않고 누가 특무인가 추측하고, 서로 의심하고 믿지 못하며,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서 정력을 불필요한 곳에 쓰고 있다. 산산히 흩어진 모래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 생각해 보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할 때 누가 기뻐하고 누가 걱정하고 조급해 하겠는가?

이 한 차례의 일에서 대다수 동수의 일부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법 공부가 적고, 두려운 마음, 의심하고 추측하는 마음, 의뢰심이 모두 폭로되어 나왔다.

이번에 이렇게 큰 손해를 당하고 사악이 이렇게 사납게 덮치자 동수들은 두려워 위축되고 집에 숨었으며, 예전처럼 수련생이 박해를 당하면 적극적으로 유관 부서에 찾아가 진상을 알리고 전화번호를 수집하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이 번 박해를 보도한 가운데 직접 박해에 참여한 사악의 전화가 많지 않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위축되고 두려워 할수록 사악은 더욱 날뛸 것이며, 이렇게 해야만 대법제자가 두려워 한다고 여길 것이며, 사악은 그들의 음모가 성사되었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동수들께서 집착을 내려놓고 아직도 수감돼 있는 수련생을 함께 구출해 내기를 바란다.

동항 지역 동수들은 모두 안에서 찾기를 바란다. 이번 일의 출현은 어느 누구나 몇 몇 동수의 책임이라고 여기지 말고, 표면적으로 이 일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법에서부터 우리는 무엇을 보았든, 무엇을 들었든 자신과 관계가 있든 없든 모두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개인수련이든지 정체적인 협력에서든 어떠한 문제가 존재하는가?, 차이가 어디 있는가?, 어떤 구멍이 생겼기에 비로소 이런 규모의 박해가 생겼는가?

사부님께서는 《2009년 대뉴욕 국제 법회 설법》에서 언급 하셨다. “(주먹을 쥔 자세로) 마치 이 주먹을 내지를 때처럼 여러분들이 한데로 쥐어야 힘이 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한 손가락씩 가리키시며) 그것이 무엇을 하려하고, 그것이 무엇을 하려하고, 그것이 무엇을 하려하고. 이러면 힘이 없어 내지르기만 하면 좌절당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다. 바라건대 동항의 동수들께서 모두 내심으로부터 서로 협력하여 아직도 수감돼 있는 수련생을 구출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2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2/19/2184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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