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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한 사명을 저버리지 말고 중생구도를 바짝 틀어쥐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0년 2월 1일】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중생을 구도하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대법제자의 책임을 완성하지 않는 것이며, 당신의 수련은 물거품과 같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대법제자가 되게 한 것은 당신 개인적인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대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기 때문이다.“《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사부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중생구도’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책임이며, 짊어진 사명이란 것을 분명히 하셨는데, 이는 정법시기의 매 대법제자의 조사 정법에 대한 사부님의 엄격한 요구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중에서 중요한 첫째는, 대사를 단단히 틀어쥐고, 일깨워 주고, 조급해 하는가 안 하는가하는 문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착실한 수련에 대한 검증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중생구도’ 이 일을 잘하지 못 한다면 우리 대법제자로 말하면 그것은 수련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부님 정법 진행을 끌어 내리는 것으로 된다.

최근 우리 지역의 많은 동수들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단락 법에 대해 충분한 중시를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홀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하였다. 그 표현으로볼 때, 사부님 이 단락의 법을 확실히 공부했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서 나오지 않으며, 법 공부와 연공만 하고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구하는 것을 틀어쥐지 않고 있다. 이런 사람과 교류해 보면 어떤 사람은 놀랍게도 “난 말을 잘하지 못하고, 할 줄도 모른다. 속인을 만나게 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고 말한다. 지금이 얼마나 엄중한 시기인데 이렇게 말하는가.

어떤 사람은 집 안에서는 말을 잘 하지만, 문만 나서면 그가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긴 해도, 언제나 천편일률(千篇一律的) 적으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하는 것이 긴박감이란 전혀 없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정진할 줄 모른다. 나 역시 이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틀 전에 나는 2010년 1월 26일 밍후이왕에 오른 글을 보았는데, 제목은 《얼음과 눈이 뒤덮였어도 사람 구하기에 바쁘다》였다. 기사 형식으로 작성 된 것으로, 허베이 지역의 60여세 노 수련생이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구하는 내용을 올린 글이다. 그 중 1월 초에 그 지방은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많은 눈이 내렸어도 진상 알리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고, 날마다 십여 명씩 3퇴를 시켰다는 내용 과, 일 년 중 가장 추운 절기 중인 1월 16일 새벽은 영하 15도에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 혹한의 날씨인데도 진상을 나가려하자, 아내가 걱정하며,“ 이처럼 눈과 어름이 뒤덮여 바람까지 심하게 부니 오늘은 나가지 마세요!” 하고 만류 하자, 그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 급한데 날씨가 무슨 문제냐.” 하고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자전거를 타고 진상 활동을 하여 10여 명의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등 몇 년 간에 진상을 알려 3퇴를 한 사람의 수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난 후의 감촉이 상당히 깊었다. 나 역시 60대의 여자 노 대법제자로서 매일 세 가지 일을 나름대로 한다고 하지만,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구하는 상태나, 구하는 인원 수 나, 구하는 질량 (質量) 면에서나, 구하는 효과상에서나 상술한 허베이 그 동수에 비하면 천양지차이다. 보기에는 내가 날마다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저 얼마를 할 수 있으면 얼마를 하고, 몇 사람을 탈퇴시키면 그만이라는 데 만족하였다. 이를테면 열악한 날씨나 환경을 만나면 쉬면서 중지 하였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법도(大法道)로서 아직도 신더러 환경에 적합하라고 할 수 있는가, 아직도 무슨 명절, 휴가에 따라 휴식을 운운할 수 있는?

그 노 수련생은, ‘사람을 구하는 게 급하다’ 고 말 했는데 아주 합당한 말이다. 사람을 구하자면 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을 구한다고 하겠는가. 비록 간단한 한마디 말이긴 해도 그것은 그 노 수련생이 착실한 수련 중 에서 승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으며,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일체 심혈을 다 바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몇 년 사이 사람을 구하는 상태에서 시종 신의 상태로 사람을 구하였고, 아울러 신이 하고 있다는 효과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중생구도에서 그 노 동수와 같은 그런 강렬한 책임감, 사명감, 긴박감이 없이, 늘 사람 상태에 처해서 일을 하였고, 사람 상태에서 일을 하며, 조건을 운운하고 환경을 운운하게 되었고, 자연적으로 정진할 줄 모르게 되었으며, 더구나 수련은 신의 경지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 (착실한 수련)》 걸어 나오지 않고, 정진하지 않는 것이 수련인가? 만약 걸어 나오지 않고 진상을 알리어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면, 그 수련은 당연히 헛되이 한 것이고, 정진이란 더 말할 나위도 못된다.

지나간 1년을 회고해 보면, 사부님께서 한 번 또 한 번 씩 연이어 수많은 경문을 발표하셨는데 그건 모두 정말로 우리를 대신해 조급해 하신 것이며, 정체상에서 매개 대법제자들에게 모두 걸어 나와 최후 일수록 더 정진하여 중생구도를 바짝 틀어쥐라고 하신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수련해 내고 성숙해 지게 하셨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만고의 기연이다. 우리는 또한 중생이 구원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며 이 기연은 단지 한 번 뿐이다. 그런데 어떤 수련생은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고, 최후 일수록 정진할 줄 모르고 멈추어 선채 전진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사부님 따라 수련한지도 10년 넘었는데 왜, 최후일수록 정진할 줄 모르고 올 때의 서약을 실현할 줄 모르며, 중생구도의 책임과 사명을 이행할 줄 모르는가?

“유유한 만세의 인연은 대법이 한 줄로 이끈 것이네, 난(難) 중에서 금체(金體)를 연마하거늘 어찌하여 발걸음이 한가로운가.“《홍음 2 (신의 길은 어렵나니)》우리 정말로 마땅히 잘 생각해 봐야 하고 안을 향해 잘 찾아봐야 한다. 무슨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았기에 장애를 받고 있는가? 바른대로 말해서 근본적으로 속인의 관념을 개변 하지 않은 것이며, 속인의 마음(혈육의 마음,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명리심,두려운 마음 등등) 을 버리지 않은 탓이다. 만약 우리 정체중의 매 대법제자, 매개 입자마다 모두 진정 사부님 법대로 할 수 있으며, 내심의 집착을 모두 찾아내어 버린다면, 그때가 되면 우리는 정말로 사부님 정법진행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고, 정말로 중생구도의 중대한 사명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개인 인식으로서 부족한 곳은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0년 2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10/2/1/2173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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