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11월 23일】 정체적인 원용에 대해 나 개인적으로 인식하건대, 당신도 대법일을 하고 나도 대법일을 하여 우리가 모두 대법의 일을 함으로 해서 바로 대법이란 이 정체를 원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중생구도 항목을 우리 여러분이 공동으로 완수할 것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 중생구도 항목이 바로 정체적인 협력일 것이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를 제작하고,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를 배포한다. 어떤 수련생은 협조사업을 책임지고, 어떤 수련생은 인터넷 사업을 책임진다. 어떤 수련생은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고, 어떤 수련생은 전화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어떤 수련생은 편지를 쓰고 표어를 쓰며 현수막으로 삼퇴를 권한다. 어떤 수련생은 반박해하려고 수련생을 조직하여 근거리 발정념을 한다. 이런 것 모두는 정체를 원용하거나 정체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단지 구체적인 항목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업, 생활환경 중에서, 동수간의 법실증 환경중에 우리의 수련요소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좋지 않은 속인의 마음, 부동한 의견이 반영되어 나오고 또 서로 모순이 생긴다. 만약 제때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면 동수간에 간격이 생겨 정체적인 협력에 영향주게 된다. 얼마 전 한시기 동안, 자료점 전체를 소량으로 나누어 곳곳에 꽃피게 하였다. 그래서 일부 설비를 다른 동수에게 주어 사용하게 하였다. 당시 한 수련생이 다투어 자기 집에다 자료점을 꾸리겠다고 하면서 또 나 개인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말을 하기에 나는 즉시 쟁투심, 질투심, 원망심이 생겼다. 당시 안을 향해 찾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했고 그저 그 동수만 틀리고 나만 맞다고 여겼으므로 나중에는 이 동수의 어디를 보든지 눈에 거슬렸을 뿐만 아니라 생긴 모양마저 보기 싫은데로 발전하였다.
어느 한 번은 그에게 설비를 보내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네가 얼마나 바보냐, 그가 너를 팔아 먹었는데도 넌 아직도 그에게 돈을 세어 주고 있어.” 마음속의 그 억울함, 미운 마음은 뼈를 깎듯 괴로웠다.
나중에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보고, 법공부를 하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통해서야 나는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평형을 잡지 못하고 동수와 일을 다투는 이것은 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가? 동수와 옥신각신 다투는 이것은 쟁투심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곳곳에 피어나는데 도달하게 하고자 하는데 그를 위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였으니 이는 질투심이 궤변을 부린 것이 아닌가? 이런 더러운 사람 마음은 동수와 간격이 벌어지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정체를 형성하게 하는 것을 방애하고 있다. 이 모두는 진정한 내가 아니며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람 마음이다. 나는 우주대법에 동화하기 위해 왔고 법을 실증하러 온 대법제자로서, 나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 마음을 나는 모두 버리려 하고 배제하고 승인하지 않으며 닦아버리려 한다. 이런 사람 마음을 내려놓았을때 마음은 곧바로 평형되었고, 이 동수와의 정체적인 협력에서 더욱 잘 원용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안으로 찾는 것은 법보였다.
지난 해 이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즉시 다른 동수들과 연계하여 발정념을 하고 구출할 방법을 생각하였다. 우리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인데 수련생이 완수하지 못한 정법사업을 원용하는 것은 정체를 원용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내와 상의한 후 납치된 동수의 정법사업을 감당하여, 모든 노력을 다해 대법이 손실을 적게 받도록 하였다. 나중에 협조인의 안배로 다른 동수에게 넘겨줌으로서 정체를 원용하였다.
올림픽 전야에 여러 수련생이 수감되어 박해받았기 때문에 엄중한 교란이 조성되어 어떤 법공부팀은 해체되었고, 어떤 사람은 진상자료도 지니려 하지 않았고 배포하지도 않았으며, 직접 만나서 알리는 진상도, 삼퇴 권유도 하지 않았으며, 어떤 수련생은 책을 감추고서는 말로는 안전을 위해서라고 하였지만 실질은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많은 동수들이 서로 왕래하지 않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집안에 앉아서 수련생이 정진하지 않는다고 원망만 할 것인가, 아니면 걸어 나와서 묵묵히 원용해줄 것인가? 집에 숨어서 안일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 부정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한 길로 갈 것인가? 답안은 긍정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와 아내는 아직도 자료가 남아있는 수련생을 찾아가 남아있는 자료와 “9평”, 현수막 등을 여러날 밤들을 이용하여 아파트 구역, 부근의 향촌, 가도 및 천가만호(千家萬戶)에 배포하였다. 나는 이것 역시 대법이란 이 정체를 원용한 것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매 개인은 모두 대법중의 한 입자로서 모일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체적으로 승화하고 정체적으로 제고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협조인과 상의하고 법공부팀을 되도록 빨리 회복하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준 단체법공부와 단체연공의 환경을 좀더 일찍 개창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몇 십리 밖에 있는 인근 현의 한 마을로 갔다. 처음에는 글자를 모르는 노인 동수 한 사람만 참가하였을 뿐, 현지 마을의 동수들은 누구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조용히 날마다 한 강의씩 공부하고 법공부 체득을 말하는 것을 견지하면서 법중에서 공동으로 제고하였다. 우리의 마음이 바르고 장이 바르기 때문에 다른 동수들도 재빨리 단체법공부에 참가하였다. 나는 오직 기점을 바르게 놓고, 대법정체를 원용하겠다는 염원만 있으면 사부님께서는 무엇이건 다 우리에게 주신다고 생각 한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하고, 사전 대원(大願)을 완수하는 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이며 이것 또한 정체를 원용하는 일종 형식이다.
이상은 정체원용에 대한 나 개인의 약간의 인식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11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23/2131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