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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은혜에 감사

【명혜망 2008년 8월 25일】

12년간의 대법수련을 회상해보면 사부님께서는 내내 나를 지탱하고 보호해주셨으며 내가 안정적으로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대법을 실증하는 한편의 글도 쓰지 못해 사존께 정말 부끄럽다. 오늘 나는 글을 잘 쓰든 못쓰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는 문장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이 세 글자(謝師恩)는 우리 사부님 은혜의 만분의 일도 포함하지 못하며 사부님 은혜의 호탕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인류에게 또 어떤 단어가 있어서 사존에 대한 경의를 표현할 수 있으랴?

1. 법을 얻다

나는 96년 음력 8월 6일 《전법륜》을 보았다. 그날 오후 출근시간에 어쩐지 몹시 피곤해 동료의 사무실에 가서 신문을 보며 잠이 오는 것을 참으려 했다. 동료가 있는 그곳에는 신문이 없었고 그녀는 대신 말했다. “친구가 보라고 준 책이 있는데 내용이 참 좋아요. 당신도 한번 볼래요.” 내가 책을 받아 펼쳐보니 앞에 사존의 법상이 있었는데 매우 친숙했다. 그래서 말했다. “이 사람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자 동료가 말했다. “그 분이 어떤 분인데 당신이 볼 수 있었겠어?”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법륜》을 받은 후 먼저 목차를 살펴보았다. “불가공과 불교”, “수련은 전일해야 한다” 이런 제목이 나를 흡인했으며 마음이 단번에 밝아졌다.

나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여러 차례 마치 신화같은 꿈을 꾼 적이 있고 또 선녀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이런 경험은 나로 하여금 천상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게 했다. 8, 9세 무렵 한 무리 선녀들이 하늘에서 우리 집 마당에 날아 내려와 나와 함께 노는 꿈을 늘 꾸었다. 12세 되던 어느 여름날, 하루는 학교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의식중에 서쪽 하늘 구름 위에 서 있는 두 명의 선녀를 보았는데 의상과 머리 모양이 매우 뚜렷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1년 전 여름날, 오전에 사람들은 밭에서 보리를 수확하고 있었고 우리는 보리를 줍고 있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 마을 북쪽의 진무묘(眞武廟) 전체가 하늘로 올라가 천천히 먼 곳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는데 묘 앞에 일남일녀가 불진(拂塵)을 들고 서 있었다(하지만 땅에 있는 사찰이 여전히 그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문화혁명 기간에 소실되었다.)

한번은 꿈에서 하늘 중앙에 아홉 마리 황금색 용이 방진을 이루고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중간에 있었다. 또 한 마리 검은 용과 검은 봉황이 있었는데 서북쪽 하늘 중간에서 나를 향해 끄덕였다. 검은 봉황은 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시 나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나에게 하나의 소식-천상에 신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전법륜》을 보았을 때 나는 수련의 일에 대해 금새 믿었고 바로 흥분되었다.

그날 오후 나는 두 시간 동안 ‘주마간산’격으로 책을 전체적으로 한번 훑어보았고 책이 좋아서 집에 빌려가서 보고자 했다. 밤에 책을 보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불편해 마치 감기 걸린 것처럼 견디기 힘들었다. 사실 이는 사부님께서 신체를 청리해주시는 것이었는데 나는 알지 못했다.

다음날 동료를 찾아가 물었다. “이 책에 대체 무엇이 있어요? 어째서 내가 병이 났을까요?” 그녀는 책을 본 시간이 길어지면 그렇게 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날부터 시작하여 나는 책을 보지 않아도 매우 어지러웠다. 괴상한 것은 출근하거나 집안일은 여전히 할 수 있었는데 일단 눕기만 하면 하늘이 빙빙 돌아 베게로 머리를 눌러도 안 되었고 앉아서 《전법륜》을 보면 괜찮았다. 이런 상태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었다.

어느 날 밤, 나는 발부터 장딴지까지 작은 풍차 같은 것이 가볍게 돌며 올라가는 것을 느꼈는데 가는 곳마다 곧 편안해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나중에 책을 보고 나서야 사부님께서 파룬으로 신체를 조정해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이틀이 지나 동료는 또 내게 두 권의 책을 주었다. 《전법륜 권2》와 《파룬궁(수정본)》이었다. 《수정본》에는 연공 그림이 있어서 나는 동작을 따라 배웠다. 그런데 그림에서 동작 방향의 선명하지 못해 확대경으로 그림을 확대해보니 점선 방향을 볼 수 있었다. 사오일 간 연마했는데 동작이 올바른 지 아닌 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오후 집에 돌아와 정공을 연마하려 했다. 가부좌하기가 염려되어 침상에 앉아 혼잣말로 했다. “사부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사부님께 말하듯이 “제가 그냥 사부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사부님, 제가 오늘 가부좌를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제가 인연이 있다는 것으로 알고 이 공을 연마하겠습니다. 만일 가부좌할 수 없다면 인연이 없는 것이니 연마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 인연이 있기를 기대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결심했다. ‘가부좌 해보자! 인연이 있는지 없는지 여기에 달렸다.’

뜻밖에도 나는 단번에 가부좌를 틀 수 있었는데 매우 가벼웠다. 이는 내가 인연이 있는 사람임을 설명하는데 마음이 착실하여 단번에 입정되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았다

“거기에 앉아있을 때에 마치 자신이 달걀 껍질 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미묘하고 몹시 편안한 감각을 느끼게 되며 자신이 연공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온몸이 움직이지 못함을 느낀다.”(《전법륜》)

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또 다른 것을 말씀하신 것 같았다. “또 일종 상태가 있는데 앉아 있노라면 다리도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다리가 어디로 갔는지 똑똑히 생각나지 않으며 신체도 없고 팔도 없으며 손도 없어져 머리만 남아 있다.”

나중에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사유만 약간 있음을 느꼈다. 정말 묘하기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했다. ‘됐다. 인연이 있는지 알았으니 됐다.’ 출정 후 시계를 보니 45분이 지났으니 이는 기적이 아닌가. 나는 여태껏 가부좌를 해본 적이 없다. 속으로 더욱 기뻤던 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제자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사부님을 찾은 것이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어느 해 설날 식사 후 졸음이 와서 솜옷을 덮고 누웠다. 막 눕자마자 마당에서 어떤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일어나서 나갔다. 문득 보니 마당 서쪽 담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내 당신을 만나보라고 하셨다. 당신 부모가 집안에 계시니 들어가지 않고 이만 가겠습니다.” 이때 나는 단번에 기어 일어났는데 내가 아랫목에 있는 것을 발견했고 설마 방금 그것이 꿈이었나 생각했다. 어쨌든 내가 무엇을 생각할 새도 없이 얼른 밖으로 나가 사부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물어보려 했다. 애석하게도 이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돌려보니 부모님은 확실히 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이 사건은 꿈같지만 꿈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나는 사부님을 생각했으며 자면서도 꿈에서 늘 사부님을 찾았다.

한번은 꿈속에 매우 아름다운 산에서 사부님을 찾고 있었는데 산 호랑이의 포효소리에 겁이 나서 산을 내려와야 했다. 또 한 번은 꿈속에 다른 산에서 선경(仙境)과 같은 동굴을 찾았는데 내가 몇 발자국도 들어가지 않아 뚱뚱한 화상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으나 품에서 하나의 책을 꺼내 주었다.(대략 16절지 길이에 폭도 그 정도였다)

내가 열어보니 책에는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전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뒤쪽을 들쳐보니 빈 종이만 많이 있어서 물어보았다. “이 위에도 모두 이름을 쓸 건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럼 나는 급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책을 품속에 넣었는데 나에게 하나의 음성을 들려주었다. “넌 아직 빠르지 않다고?” (그가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음성만 들렸다) 나는 그의 의도를 몰라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았고 사부님만 찾으려고 했다. 이제 드디어 사부님을 찾게 된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내가 처음 정공에 성공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가부좌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음을 느꼈다. 둘째 날 퇴근 후 40여 분간 앉아 있었는데 속으로 매우 기뻤다. 이후 퇴근하면 매일 가부좌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흘째가 되자 막 가부좌를 틀자마자 뼛속에서 바깥까지 아프고, 허리, 등, 다리 고통이 견디기 힘들어 이를 악물고 5분을 앉아 있었다.(여기서 설명해야 할 것은 그 때 나는 스스로 동작을 배웠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함부로 연공하지 못하고 매번 모두 직접 결인하여 가부좌 했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심성수련을 거치지 않고 연공하면 신체의 연화도 되지 않으며 그렇게 가부좌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입정(入定)했을 때 나타는 현상은 아마 사부님께서 그런 형식으로 내가 인연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하신 것일지 모른다. 내가 처음 《전법륜》을 보았을 때 매 페이지마다 심성수련이라는 구절을 보고 당시 어째서 이 말이 늘 나타나는가 하고 궁금하게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부님께서 법의 내포를 나타내주신 것으로 나더러 심성수련을 중시하라는 것이었다.

《전법륜》을 빌려 20여 일간 읽고 난 후 동료에게 돌려주었고 신화서점에 가서 한 권을 산 후 매일 1-3강의를 읽었다.

96년 음력 10월 말경 어느 날 동료가 한 사람을 데려와 내게 말했다. “당신이 본 책은 일종의 공법인데 이곳에 와서 공을 전하려는 사람이 있으니 장소를 알려줄께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우냐고 묻자 그녀는 “아마 10여 명 될 거에요. 여름이 한번 한 적이 있고 그 후에는 한 적이 없어요. 이번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다시 전한다고 하는데 9일의 시간이 필요하고 돈은 한푼도 받지 않아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장소이니 당신이 가서 문의해보세요.”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고 사람들에게 가서 물어보니 마침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9일이 비어 있음을 알았다. 그 앞뒤로는 모두 시간이 안 되었는데 정말 묘했다. 나는 즉시 그들에게 알렸고 그들도 매우 놀라워했다. 마치 미리 1주일을 잘 정해놓은 것 같다는 것이다. 나중에야 비로소 깨달았는데 이는 공교로운 것이 아니라 사부님의 안배였다.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하고 있었지만 사실 사부님께서 일체를 안배하신 것이었다.

11월 2일 하오부터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방영했는데 회의실에 사람이 가득 찼다. 원래 계획했던 10여 명을 훨씬 뛰어넘었다. 사부님께서 이번에 법을 얻을 수 있도록 안배한 사람임들을 알 수 있었다. 보도원이 공법을 가르칠 때 먼저 사부님의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었는데 내가 배운 연공 동작이 정확한 동작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으며 부정확한 곳은 한번 시정하면 되었다. 나는 내가 혼자 배울 때부터 사부님께서 나를 관할하고 계셨고 나를 인도해 연공을 배우게 하신 것임을 느꼈다.

2. 수련

7.20 박해가 시작된 후 그 사악한 기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수련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염려하지 않았고 수련하고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기로 했다. 그 기간에 나는 두 가지 잘하지 못한 점이 있다.

1. 북경에 가서 호법하지 않았다. 한 가지 원인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똑똑하지 못했고 다른 원인은 많은 수련생이 상방하여 붙잡혀 나 역시 감시 대상이었으며 붉은 공포가 사람의 마음을 덮어 두려움 때문에 생사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다.

2. 한번은 직장 동료가 두 치 넓이의 쪽지를 가져와 서명하라고 하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쓰지 말고 그저 이름만 쓰면 된다. 나는 생각했다 이왕 아무것도 안 써도 된다면 서명하면 어떠랴. 그래서 이름을 썼는데 쓴 후에야 비로소 쪽지 한편에 두세 줄의 글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대충 본 관계로 무엇이 인쇄되어 있는지 잘 모르고 그냥 서명했다.

그때는 정말 어리석었다. 나는 이것이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손실을 초래함을 알지 못했다.(2002년에 나는 자신이 대법에 대해 불리하게 말하거나 쓴 것을 모두 폐기한다고 실명으로 엄정성명하고 동수에게 발표하도록 주었다.)

이 두 가지 잘못한 일에 대해 이후 조사정법에 잘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으며 사존의 고심한 구도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며칠이 지나 직장에서 두 명의 상사가 집으로 나를 찾아와 담화자고 했다. 실제로 그들의 뜻은 텔레비전에서 대법을 모욕하는 내용에 대해 나로 하여금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게 해 나를 바꾸려는 것이었다. 나는 더는 흐리멍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수련 이후의 느낌을 이야기했고 사부님의 법에서는 어떻게 말했다고 했다.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한 여자는 견디지 못하고 일어서서 소리쳤다. “아직까지 감히 그를 사부라고 부르는가?” 내가 말했다. “그럼 어찌 사부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고집을 부리다가 안 되자 그녀는 화를 내며 자신들이 미리 써놓은 자료를 내놓고 나더러 서명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함을 질렀다. “서명할거야 안 할거야?” 나는 말했다. “안 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공안국에 가서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이 어디를 가고 싶으며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문을 나서며 내내 내가 너무 지독하다고 소리쳤다. 나중에 어느 동료와 수련생이 나를 위해 걱정하며 말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잡아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나는 말했다. “그들이 나를 찾아봐야 소용없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데 사부님께 충성하면 충분합니다!”

다음날 저녁에 꿈을 꾸었다. 집에 있는데 한 음성이 들려다. “가부좌 틀고 결인해라. 너를 어떤 곳으로 보내줄 텐데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가부좌를 틀었고 결인하자마자 곧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어느 산비탈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막 앉자마자 신체 주위에 하얀 원이 나를 감쌌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에게 땅바닥에 그려준 그 원과 같은 것이다). 갑자기 하얀 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많은 요괴들이 나타났는데 기괴한 형상에 흉악한 눈을 하고 손에는 무기를 들었다. 어떤 것은 나를 향해 활을 겨누었고 어떤 것은 창을 겨누었으며 또 어떤 것을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들었던 말을 기억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그것들이 시끌벅적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 무기들이 날아와도 2,3척 되는 거리에 도달하자 전부 없어져 버렸고 그 요괴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신 것임을 알았고 대법에서 수련하려는 결심을 더욱 견정히 했다. 나는 딸에게 이 일에 대해 말했다. “바로 나 혼자 남는다 해도 나는 수련할 것이다.” 물론 절대 나 하나만 남진 않을 것이며 많은 동수들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다. 이 말은 사부님께 대한 나의 충성을 표현한 것이다.

2000년 10월 사부님 설법을 우리는 12월 이후에야 볼 수 있었는데 모두 손으로 베껴 쓴 것이었다.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난 후 나는 비로소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우리 이곳에는 대법 자료가 없었다. 어떤 때는 다른 곳에서 전해온 두 부의 자료도 전해서 본 후 다시 전해주어야 했다. 진상을 알리는 일에 대해 어떤 수련생은 자료도 없고 말도 잘하지 못하며 법도 없다고 걱정했다.

나는 그래서 텔레비전에서 대법을 공격한 거짓에 대해 폭로문장을 썼고 어느 수련생이 이것을 들고 가 자비로 인쇄했다. 그 후 다른 동수들에게 나눠주어 사람들에게 배포하게 하거나 혹은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자신도 역시 나누어 주었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조사정법의 발걸음을 크게 내디뎠다.

이렇게 약 1년간 했는데 한 외지 수련생이 왔다. 그는 우리에게 전기를 가져다주었는데, 주간, 소책자 등이 모두 있게 되었고 사부님의 설법 역시 제때 볼 수 있어 막힌 국면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나중에 일이 생겨 또 자료가 부족하게 되었다.(이 한 단락 시간동안 발생한 일은 나중에 다시 쓰겠다.) 나중에 수련생이 내게 한 대의 컬러 인쇄기를 보내주어 나는 주간을 복사하는 외에도 스스로 소책자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없어 다운받을 수 없었다. 나는 《명혜주간》을 복사하는 한편 진상에 쓸 만한 문장을 잘 고른 후 다시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따로 인쇄했다. 가능한 한 원래 글자만큼 깨끗하게 하여 소책자를 만든 후 다시 복사해야 효과가 좋았다. 그림을 삽입하는 것은 한 면의 자료에 가위로 잘라 붙인 후 인쇄했다. 자료를 잘 준비하고 A4 복사지를 반으로 접어 다시 접은 종이를 등분하여 잘 접고 나니 바로 소책자만한 크기가 되었다.

일체는 바로 실마리였고 처음에 세심하게 잘라 붙여 마지막에 그림과 글이 다채로운 소책자를 만들었다.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으며 한권의 견본을 만드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왜냐하면 어떤 글은 잘라낸 후 연결이 안 되어 글 중에서 같은 크기의 글자를 가위로 잘라내야 했고 한 글자 한 글자 붙여 문장을 만들었다. 비록 번거롭긴 했지만 동수들은 중생을 구하는 자료가 있으므로 해서 매우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견본이 나온 후 우선 몇 권을 인쇄하여 효과가 좋은 것은 기타동수에게 다시 복사하여 주어 많이 뿌렸다. 우리 역시 제작하여 뿌렸다.

또 일년 반이 지났고 나는 컴퓨터를 사고 싶었는데 다른 수련생이 알고는 자신의 컴퓨터를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인터넷에 연결하지 못하고 그저 다른 곳에서 보내온 USB 자료만 컴퓨터로 이어서 하나로 만들어 인쇄했다. 이렇게 하자 많은 것을 절약할 수 있었다. 더는 가위로 잘라 소책자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나와 딸은 모두 사이트에 연결하는 법을 배워 매우 편리해졌고 글과 명혜주간을 내려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자료 일을 하는데 가장 좋기는 나가서 자료를 뿌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것은 큰 자료점에서 안전을 위해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같은 작은 자료점은 마땅히 전면적으로 해야 하며 정념만 있으면 된다.

한번은 야밤에 혼자서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는데 어느 사거리에 걸어갈 때 마주보는 경찰차 불빛이 갑자기 켜지더니 나를 비췄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전거에서 내려 그것과 멀지 않은 곳에서 대면했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렇게 십여 초를 대치하자 그 차는 머리를 돌려 떠나버렸다. 나는 당시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보기 싫다, 얼른 떠나라.’

또 한 번은 대낮이었는데 역시 나 혼자 어느 곳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있었다. 어느 마을 부근에 갔을 때 경찰차가 다가왔다. 느릿느릿했는데 마치 무엇을 찾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것을 만나 당황하지 않았고 자전거를 타고 그것을 바로 지나갔으며 바로 앞에 도착하자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밀고 그것의 옆으로 지나갔다. 차 안에서 두 명의 경찰이 나를 바라보기에 나도 바라보았더니 그들은 차를 몰고 가버렸다.

다음날 내가 한 동수의 집에 갔더니 그가 물었다. “어제 어디에 가서 자료를 뿌리지 않았어요?” 그는 어제 어떤 사람이 한 여성이 그곳에서 파룬궁 자료를 뿌리는 것을 보았고 경찰이 알고는 차를 타고 그곳에 가서 한참이나 찾았는데도 아무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이 역시 경찰과 스쳐지나가게 한 것이구나, 얼굴을 마주쳐도 나를 찾지 못했구나.’

이 두 가지 일로부터 나는 정말 사부님께서 옆에서 나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다면 두 번 다 서로 얼굴을 마주쳤는데 어떻게 몰라볼 수 있는가?

또 한 번은 길가 전봇대에 자료를 붙이는데 막 붙이자마자 마침 한 사람이 지나가며 물었다. “무슨 광고를 붙입니까?” 내가 답했다. “사람을 구하는 광고입니다.” 그는 잠시 주저하더니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이 모두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고 나 역시 정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정법수련 중에 나 역시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표현되는 것이 있다. 한번은 동수와 함께 교류하는데 내가 말했다. “내가 가장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우리 어머니와 딸이다. 나는 어떻게든 그들을 구해야겠다.” 결과적으로 사부님께서는 또 나 때문에 신경을 쓰셔야 했고 나더러 이 집착심을 버리게 하셨다.

꿈속에서 나는 모친과 딸을 데리고 피난을 갔는데 다 잃어버렸다. 조급해서 도처를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나는 어느 곳으로 갔는데 담장이 가로막아 길이 통하지 않았다. 이때 한 목소리가 내게 말했다: “네가 이 담을 넘을 수 있다면 그들을 찾을 수 있다. 그녀들은 담 저쪽 편에 있다.” 나는 얼른 담을 기어 올라가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어오르지 못했다. 그 담은 보기에는 높지 않았으나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연화하시어 나를 점오하는 것으로 사람의 정을 버리지 않으면 이 담장처럼 수련의 길을 막는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딸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2004년 딸은 자궁외임신으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의사는 10분만 늦었어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수술할 때 나는 수술실 밖에서 발정념으로 악을 제거하는 동시에 속으로 사부님께 그녀를 구해주기를 청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배에서 2500cc 의 피를 뽑아냈다. 의사는 “상황이 매우 급했는데 수술할 때 수혈이 아니라 아예 안으로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들도 매우 놀랐으며 정말로 구사일생이었다고 했다. 수술 후 딸은 집중치료실로 보내졌고 혈압을 측정하고 반시간에 한 번씩 검사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알려달라고 하면서 아직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가 간 후 딸은 매우 똑똑히 깨어있었다.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했는데 매일 혈압, 체온을 검사해도 일체 정상이었으며 수술 상처도 빨리 아물었다. 딸은 나와 함께 수련하므로 그녀 역시 사부님이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왕 일체가 정상이니 대법제자로서 병원에 늘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퇴원을 요구했다.

집에 돌아온 다음날 나는 문을 닫을 때 손가락이 끼어 매우 아팠는데 이때 갑자기 생각이 났다. 수술 후 딸이 아프다고 하지 않고 늘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설마 아프지 않았단 말인가? 그래서 비로소 딸에게 물었다. “상처가 아프지 않았니?” 그녀가 말했다. “내내 아프지 않았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내 손이 한번 끼었는데도 매우 아픈데 수술 후 상처가 아프지 않다니. 이것은 다시 말하면 사부님께서 그녀의 목숨을 구하셨을 뿐 아니라 그녀로 하여금 대법에서 계속 수련할 수 있도록 대신 고통을 감당하신 것이다.

이 일로부터 나는 진정하게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를 알 수 있었다. 친구가 집에 오면 나는 그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 해주며 아울러 그들에게 사부님이 딸을 구했다고 말하며 그들이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자비를 알려주었다.

정법 노정에 한 단락의 새로운 정황이 나타났는데 나는 이해가 늦었다. 하지만 법 공부 중에 깨달았다. ‘사부님이 선택하시거나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은 모두 옳은 것이며 당시 내가 이해하든 못하든 모두 해야 한다.’

한번은 어느 마을의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그곳의 어떤 수련생은 《9평》을 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각자마다 이론이 있으며 모두 사람의 관념으로 문제를 본다고 하면서 나더러 사람들과 한번 교류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 자신도 지금 이해를 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말한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자신의 이런 부면적이고 소극적인 요소를 다른 동수에게 확산시켜서는 안 됨을 알았다. 나는 찾아온 사람에게 자기의 진실한 사상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가기로 했다.

다음날 출발하기 전,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오늘 제가 동수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가지해주십시오.” 가는 길에 정법구결을 외우며 나와 동수 주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그곳에 간 후 사람들과 각자 자신의 생각을 담론했고 나 역시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내가 이렇게 말을 잘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법리에서 하나하나의 단어로 사람들의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주었다. 이 과정 중에 나의 인식도 역시 높아졌다.(나는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 ‘전에는 왜 인식하지 못했을까?’) 사실 그것이 어디 내가 말한 것인가? 바로 사부님께서 내 입을 이용하신 것이다.

떠날 때 나는 동수들에게 알려주었다.

“오늘 오기 전에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교류하는 과정 중에 당신들의 말이 내게 제시해주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부님의 도움인데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올 때 사부님의 가지를 청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는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은 모두 옳은 것이고 우리가 당시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행동상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해야 하며, 하는 과정 중에 이해하고 제고해 올라와야 합니다.”

문장발표 : 2008년 8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8/25/1847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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