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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이 불법(不法)으로 노동교양을 당한 후 생각하게된 것

[명혜망 2009년 8월 24일] 두 명의 수련생이 십여 일 동안의 정체적인 배합으로 구출했으나 모두 다시 노동교양소로 보내어져 계속 박해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오늘 알게 되었다.

형식상으로 우리는 할만한 것은 모두 하였다. 구치소, 파출소, 지역사회에 가서 사람을 풀어놓으라고 요구하고 진상을 알렸으며, 박해받는 동수의 거주지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고밀도의 발정념을 하였고…… 그런데 지금 왜 또 이렇게 되었는가? 안을 향해 찾아보니 내가 느끼건대, 이 일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사(私)를 위한 염두, 빗나간 기점, 명백하지 못한 법리가 있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사악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며, 박해받는 동수의 정념이 부족한 것도 주요한 것이 아니다. 관건은 신우주 법리에 부합되지 않는 우리 정체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이 사악에게 생존할 공간을 갖게한 것이다.

예전의 여러 차례 구출이 성공하지 못한 것을 회고해 보면 많게 적게 모두 이런 원인이 있었으나 예전에는 매번 모두 무엇 때문인지를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구출하는 가장 근본은 법을 수호하고 사악을 해체시키며 기회를 이용하여 세인을 구도하는 것이다. 동수에 대한 어떠한 박해이든지 모두 대법에 대한 박해이고 박해자 자신에 대한 박해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에게, 흉금을 넓혀 일체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구도하되, 제일 악한 자를 제외하고, 설령 이 사람이 아직 살아만 있다면 구도될 희망이 있다고 하셨다. 법리상으로 우리는 모두 명백했지만 실제 가운데서는 왕왕 흉금이 좁아지고 위사위아(爲私爲我)하여 곳곳에서 먼저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낡은 우주의 본성이 있어서, 우리가 신우주의 법리에 따라 일체를 대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지난번에 다른 한 수련생을 구출하느라고 국보대대에 갔다가, 처음으로 국보 경찰이 그렇듯 흉악한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그를 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정해 놓았는데, 좀 너무한 것 같긴 했으나 당시에는 옳지 않다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였다. 저녁에 팀에서 수련생이 교류하면서 일깨워 주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국보 사무실에서 가졌던 심태가 이미 사람을 구하는 기점에서 빗나갔으며, 표면상에서 경찰과 옳고 그름의 이치를 다투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선량하지 못함[不善]이 비로소 국보경찰이 조종당하여 행악하도록 했던 것이다. 공안국, 아파트 구역, 가도, 구치소 등지에 가는 것은 최종적으로 모두 세인, 박해자에게 한 차례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 이는 대법의 위덕이고, 대법제자가 법중에서 수련해낸 자비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을 빗나가면 제일 바른 길이 아닌 것이다. 이 도리를 알게 되자, 후의 발정념 중에 목표를 행악자 본인을 조종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는데 정하였다. 따라서 수련생이 나오게 되는 것은 법을 원용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이 점이 분명해지자 발정념의 효과가 아주 조용해졌고 에너지 또한 아주 강했다. 내가 생각하건대, 법에 있었기 때문에 법의 위력이 펼쳐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위사(爲私)한 것이 아주 중했기 때문에 실의와 같은 그런 성패(成敗)에 빠져, 자아를 실증하려는 심태가 이번 구출 가운데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 나왔고 또 흐리멍덩해졌다. 무엇을 중히 볼수록 사악은 더 틈을 탔고, 사람을 구하려는데 생각이 쏠릴수록 그것들은 더 교란하고 심지어 세인을 조종하여 우리 동수의 행방마저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 구출에서 자신의 바르지 못한 방면이 여전히 아주 돌출하게 표현되었다. 만약 자신이 구출에 참여하지 않으면 이렇듯 “결과”를 마음에 두는 일이 없는 것이었고, 만약 신변의 익숙한 수련생이 아니라면 이렇듯 마음에 두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것은 아직도 나를 위하는 것이지, 법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수련생을 위하고 중생구도를 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쉽게 발각되지 않는 나를 위해 움직이는 이런 염두는 평소에 자신이 하는 일의 많은 방면에 관통되어 있었다 : 나는 자료를 얼마를 배포해야 하고, 나는 무슨 문장을 쓰려 하며, 나는 이 일을 하기 좋아하지만 저 일은 하기 싫다. 나는 너무 바빠서 할 수 없다…… 등등. 일을 고려하는 기점이나 우선 앞에 가로놓는 것이 언제나 “나”이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일을 하게 되면 먼저 법을 생각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다. 정말로 일사일념이 신우주의 법리에 부합된다면 누구도 가로막지 못한다.

법이 나더러 어떻게 할 것을 수요하고, 사람을 구하는데는 대법제자가 어떻게 할 것이 수요된다. 세인이 어떠해야만 진정으로 구원 받을 수 있고…… 하는 “나”가 없다.

또한 두 수련생이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하여 이렇게 “결정”짓는 것이 아니고, 대법을 박해하는 일체 사악을 해체하는 것은 매 대법제자마다의 책임으로서 중지해서는 안 된다 : 우리 자신의 일사일념을 귀정하는 것도 수련생을 박해하는 사악을 해체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더 훌륭히 수정하고, 정체배합을 잘하며, 법에서 더 명백하겠는가?

우리 모두 마땅히 진정으로 법중에서 성숙해져 진정으로 남을 위하는 합격된 신우주 생명으로 되자!!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8월 2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24/20709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