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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방식을 이용하여 법을 실증하다(1~3)

글/ 하북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2월 3일】 나는 1994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다. 사존님 보살핌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비바람 속에서 오늘까지 걸어 오면서, 부처님 은혜를 깊이 느꼈고, 체득도 많고 많지만 단지 자신이 법률형식을 이용하여 법을 실증 하는데 참여한 체득만을 사존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나누려 한다.

1. 주동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다

2001년 초에 나의 남편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노교를 당했고, 나도 30일 간 수감을 당하게 되었으나 단식하여 9일만에 나오게 되었다. 신체는 재빨리 회복되었고, 수련생은 사악이 재차 나를 잡으러 올까 봐 나더러 한 동안 숨은 다음 다시 보자고 하였고, 더욱이 내가 경찰을 찾아가서 남편을 내놓으라 하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사존께서 말씀하신 “사악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에 대하여 체득이 매우 깊어 자신을 고무 하였다. 나는 대법제자이다,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하고 사악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사악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주동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는 여정을 시작하였다. 노교소, 공안분국, 파출소, 주민센터 사무실 등 직장에 찾아가서 사당인원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사람을 내 놓으라고 하였다. 이 과정에 한 경찰은 진상을 알게 되어 아주 동정해 주었고, 내가 남편에게 변호사를 신청하여 노동교양 재심의를 할 수 있겠는지 해보라고 건의하였다.

나는 ‘법률 지원을 찾습니다’ 란 진상편지를 써서 무릇 전화 번호 책에 주소가 있는 변호사 사무소에 모두 편지를 보냈고, 또 전단지 형식으로 인쇄하여 거리에서 배포하였고, 건물에도 붙였다. 그리고 또 변호사 사무소에 전화로 변호사를 찾는다는 명의로 진상을 알렸고, 비교적 열정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남편의 박해 받는 자료를 가지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방문을 하게 하였다. 그 사이에 나는 많은 법률 지식을 열심히 배웠는데 후에 변호사와 가족들은 내가 전직 변호사인 줄로 알았다.

공안청 법제처 노교 재심의를 주관하는 경찰이 변호사들이 파룬궁 사건을 다루지 못하게 하자 나는 공안청 기률검사위원회로 찾아가 고소했고, 사법국 변호사관리처 ‘정책자문’에 찾아갔으며, 사법청에 가서 사법국을 고소하는 등등, 아주 많은 사당부문에 찾아가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려 주어 사악을 진섭하는데 아주 큰 작용을 일으켰다.

나는 배워낸 법률지식으로 우리 집이 박해 받은 경과를 정황 반영, 상방서신, 공소서신 등으로 써서 진상 알리는 자료로 삼아, 동수의 도움 하에 현지 각계 관련부문에 대규모로 보내었고, 폭넓게 배포하였다.

편지는 모두 일인칭으로 썼고 나의 이름으로 낙관(落款)하였으므로 나는 평소에 늘 갖고 다니는 가방 안에 넣어가지고는 어디로 가면 어디에서 배포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배포하였다. 현지 공안은 화가 치밀어 저녁에 몇 번이나 익명 전화로 나를 위협하면서 죄를 뒤집어 씌워 나를 잡으려 하였다. 나는 전화를 녹음하여 주동적으로 신고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급 상관 부문에 상소서신을 제출하였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놀라움은 있었지만 위험은 없었다.

착실하게 진상을 알렸기 때문에 법 실증의 아주 훌륭한 환경을 열어 놓을 수 있었다. 경찰의 소란에 직면하여서도 나는 정념으로 대할 수 있었고, 주동적으로 진상을 알려 주어 직장, 친지 등 주변 환경 사회관계에 영향 주지 않았으며, 2001년 3월 이후부터 더는 불법 체포를 당하지 않았다. 나는 한 사기업의 고급 직원으로서 지도부와 동료들이 모두 나를 아주 ‘보호’해 주며, 친척친지들이 나를 이해해 주고 아주 믿어준다. 접촉한 경찰과 사당 인원들은 나의 사업, 나의 능력을 아주 부러워 하고, 나를 몹시 존경해 준다. 나는 자신의 모든 우세를 발휘하여 모두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데 쓰고 있다. 사당의 올림픽 기간, 나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랐기 때문에 북경에 출장 가서 여관 숙박 등록을 마친 후 북경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 당했으나 평소에 진상 알린 기초가 있었기에 현지 파출소 소장이 전화로 ‘강력한 담보’를 했기에 열 시간 후 무조건 석방되었고, 직장의 지도부와 동료들은 나를 더 보호해 주었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단지 법으로만 가늠할 뿐, 사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사악은 개입할 자격이 없다. 01, 02년 환경이 가장 험악한 시기에도 나는 시종 뒷걸음 치지 않았고, 태만하지 않았으며, 속인의 법률 수단을 이용하여 주동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하여, 사악을 폭로하고 사악을 질식시켜 확고하게 법 실증의 길에서 걷고 있다.

2. 확고한 정념으로 수련생을 구출하는데, 변호사를 선임하여 파룬궁 사건에 개입

대략 2003년, 한 수련생이 불법 노교를 당했는데 사악의 전화 수단은 지극히 잔혹하여, 수련생은 가족에게 편지를 써 변호사를 선임해 달라고 하였고, 가족은 나를 찾아와 도와 달라고 하였다. 나는 사이트에서 지명도가 있는 변호사를 찾아내고, 당사자 신분으로 진상 편지를 보냈다. 해외 동수의 도움으로 아주 유명한 고 변호사를 찾아갔다. 해외 수련생이 줄곧 고 변호사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기 때문에 그의 관점은 아주 선명했는바, 비록 사당 법원은 입안하지 못하게 했지만 고 변호사는 끊임없이 문장을 발표하여 사당 사법의 암흑을 폭로하고 변호사 신분으로 처음으로 세상에 파룬궁 수련생이 받고 있는 잔혹한 박해의 처참한 사실을 공포 하였다. 나는 줄곧 이 일을 추적하고, 각종 겨냥성 있는 진상 자료를 명혜망에 발송하였고, 수많은 진상 편지도 보냈다. 구출된 수련생은 혈압이 높아 보석치료를 받기로 하고 일년 앞당겨 집에 돌아왔다. 당시의 사악 정책은 전화되지 않으면 석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므로 전화되지도 않고 앞당겨 나온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이 과정 중에서 최대 압력이란 동수의 몰이해였고, 사악도 호시탐탐 변호사를 청한 사람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었으며, 사람의 표면으로 본다면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아주 어려웠다. 그 때에는 변호사를 청하여 파룬궁 사건에 개입하는 일이 아직 아주 적어서 법에 부합되는가 안 되는가에 대해 쟁론이 있었고, 자신도 법에서 그다지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면서, 단지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는데 사람의 방식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속인의 법률 수단을 이용하여 사악을 제압하면 법에 부합되고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고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동수와 교류할 때 나도 수련생을 설복할 수 없었다. 참여한 동수들은 계속해서 나갔고, 나와 배합한 가족 동수도 변호사를 청한 일 때문에 악경에게 납치 당했다. 사람이 구출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변호사를 청한 것 때문에 잡혔으니 동수의 가족에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체면을 무릅쓰고 동수의 가족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지만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들은 변호사를 청하는데 대해 실망했고, 중공의 기승에 아주 공포를 느꼈으며,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압력이 컸다. 오직 두 수련생을 함께 구출하려면 착실하게 이 사건을 추적하여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할 수 밖에 없으므로 8달 만에 두 수련생이 모두 석방되어 돌아올 때까지 줄곧 시름 놓지 못하였다.

이번 변호사를 선임해서 수련생을 구출하는 항목을 통하여 법에서 인식을 제고하게 되었고, 나는 시련을 겪었으며, 일부 경험을 쌓게 되었고, 동시에 주변 동수들의 인정과 신임을 얻게 되었으며, 이후의 법률 항목을 조율하는데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3. 변호사를 중생으로 여기고 열심히 진상을 알려 주다

2006년 현지의 한 집에서 3명의 수련생이 납치를 당하여 우리는 구출을 시작했는데 고밀도 발정념을 하고, 진상자료를 편집하여 큰 범위에서 진상을 알리었다. 처음에 사악은 철저히 소식을 봉쇄하여 수감된 3명 동수와 연락을 취할 수 없었다. 사당법원의 일심판결 후 끝내 소통할 수 있게 되어 그들 일가에 변호사를 청해 주었다. 한 방면으로는 진상 소책자와 변호사 도움을 구한다는 진상 편지를 제작하여 몇 천부를 보냈고 동시에 이름있는 일부 변호사를 만나 그 앞에서 진상을 말하여 주었다.

당시 대다수 변호사는 파룬궁 사건이란 말을 듣자 두려워서 시간이 없다고 핑계 대면서 만나기를 거절 하였다. 우리는 아주 참을성 있게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였는데, 먼저 편지를 보내고 다시 전화로 만날 약속을 하였다. 전화를 걸 때 곁에서 수련생이 발정념 하였다. 우리의 노력으로 드디어 몇 명의 변호사가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동의하였다. 하지만 교란이 아주 컸고, 사악이 단단히 가로막고 있었다. 변호사를 보러 가도 순조롭지 못했고, 대부분 모두는 임시로 일이 있어 외지로 출장 갔거나 또 어떤 변호사는 경찰이 바짝 붙어 감시하여 만나서 담화할 때도 늘 ‘급한 일’로 끊기는 일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가는 길에 줄곧 발정념 하였고, 수련생 한 팀을 조직하여 발정념으로 도와줄 것을 통지하여 여러 가지 장애를 돌파하였다.

변호사를 만나기 전에 나는 만날 변호사에게 사이트에서 찾아낸 사례를 아주 열심히 소개하고 발표된 문장을 모두 읽어보게 함으로서 그 변호사로 하여금 이해가 있게 하였고, 진상을 알려 줄 때는 겨냥성이 있고, 파고 들어가는 점도 아주 좋아 효과가 좋았다. 예를 들면 유명한 인권수호 변호사에 대해 나는 독자가 흠모하는 신분으로 방문하여 주요하게는 그들이 관심을 갖는 대법제자 반박해 경력을 말해 준 다음, 다시 점차 중공의 사악을 말해 주었다. 나는 자신에게 절대로 변호사 찾기에 급급하다고 높이 말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 하였다.

유명한 인권변호사 대다수는 경찰의 감시를 받으므로 자신의 안전도 아주 문제가 되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중점적으로 안전에 대한 이해와 일부 방법을 탐구하여 그들의 인정과 초보적 신임을 얻은 후, 그들의 도움으로 잇달아 6명의 변호사가 사건에 개입 하였다. 관례에 따르면 사건을 제1 변호사에게 위탁한 후이면 가족은 상관하지 않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송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인을 구해야 하며, 법 실증의 효과에 도달해야 할 것인 즉, 우선 반드시 변호사가 진상을 알아야만, 과정 중에 부면적인 변호관점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부면적인 요소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줄곧 해이해질 수 없었다. 2심 시간이 아주 긴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시간을 짜내어 매 한 변호사를 만나 진상을 알려야 했다.

과정 중에 줄곧 법에 대한 이해와 확고한 믿음 문제가 따랐다. 어떤 변호사는 돈을 버는 사건에 바삐 돌았고, 어떤 변호사는 열정이 없었고, 참을성이 없었다. 어떤 변호사는 곤란에 부닥치면 후퇴하였고, 어떤 변호사는 중공의 세도에 겁을 먹었다. 나는 아주 똑똑하게 인식하였는바, 그것은 사악한 요소의 교란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생명 중 가장 중요한 일을 놓쳐 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변호사들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도하러 온 것이다. 그러므로 변호사가 어떤 태도이든지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이치 당당’하게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해야 하지 속인의 어떠한 쑥스러움도 가져서는 안 된다. 변호사와 담화할 때, 나는 언제나 거만하거나 비굴하지도 않았고 거리낌 없었다. 한 번은 나와 수련생이 여러 변호사들과 식사를 할 때, 한 변호사는 파룬궁 박해 받는 화제를 늘 회피하기에 나는 ‘정기가 충만되고 격앙’된 연설을 한바탕 하였다. 1억 인의 바른 믿음이 탄압당하고, 매 일분 동안에도 피가 질퍽한 박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심지어 파룬궁 수련생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고 있어 그 잔혹한 정도는 이미 사람의 상상을 초월했고, 이렇듯 엄중한 인권 재난이 이미 우리 앞에 놓여졌는데, 어찌 보고도 못 본체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매 사람에게 모두 사회의 책임을 짊어 질 의무가 있으며, 일어나 ‘아니다’를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행운이 있어 참여한 바에는 반드시 잘 해야 합니다. 이는 역사 사건으로서 이 영광스런 여정의 한 페이지는 역사에 기록되어 남겨질 것입니다.

장내는 진감되어 쥐 죽은 듯 조용 하였고, 나 스스로도 너무 초상적인 발휘를 하였다고 느꼈다. 그 때 아주 유명한 두 분 변호사도 현장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변호사들의 안전에 각별히 주의하여 조심스레 일하고, 주도적으로 사고하여 변호사 명단을 사전에 공포하지 않았고, 되도록이면 면담을 하였고 전화를 쓰지 않았으며, 전 과정에 변호사를 배동하여 발정념을 하였으며, 이상 상황 때면 편리를 변호사에게 양보하기로 하였다. 변호사들은 아주 감동되었고, 우리에 대해 갈수록 신임 하였다.

사실 어떤 안전 조치는 단지 사람 표면에서 자신과 타인에게 안전감을 줄 뿐 실질적으로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하지만 이 표면적인 안전감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심을 증강하게 하고, 협조인에 대한 신임도 증가하게 한다. 더욱이 수련하지 않는 변호사, 가족, 정념이 부족한 동수도 포괄하여 모두에게는 감당능력 문제가 있는데, 안전조치가 있게 되면 완충하는데 아주 필요한 것이다.

‘4,25’, 천안문 분신자살의 진상을 모르는 변호사도 있었는데 나는 이는 기초가 아주 박약하다고 여겼다. 시간은 긴박한데 좀 실망이 들기도 하였지만 다행히도 어떤 수련생은 참을성 있게 말해 주어 부족을 보완해주었다. 하지만 후에 또 한 문제가 나타났는데 한 번에 말한 내용이 너무 많아 변호사가 받아들이지 못하여 더는 동수와 만나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힘쓴 보람으로 변호사와의 간격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변호사와 함께 한 켠으로 안건을 모색하고, 한 켠으로는 진상과 결합하여 말하니 변호사가 잘 접수 하였고, 방식은 좀 보수적이어서 제대로 잘 말할 수 없었다. 다른 수련생은 변호사에게 『9평』등 진상자료를 주었는데 아주 훌륭한 보완으로 되었다.

사건 종결 후, 여러 사람은 만나서 담화를 하였는데, 변호사는 우리가 변호사를 제일 잘 이해해 주는 당사자라고 하였다. 사건은 압력이 크고, 경제적 수입이 낮았지만 변호사 생애에서는 하나의 빛나는 점이었고, 가족과 합작한 가장 훌륭한 사건이었다. 그 후, 몇 명의 변호사는 환난을 함께하고, 사악을 직면한 군자간의 우정으로 되었으며, 수시로 만나서 도와줄 수 있어 더는 예약이 필요 없게 되었다. (계속)

문장완성: 2008년 12월 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8/12/3/1909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