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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지 않은 것은 성숙으로 나아가는 필수 요소이다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19일] 《정진 요지》〈취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의 인식 차이로 말미암아, 일부 제자는 늘 하나의 극단에서 다른 하나의 극단으로 넘어간다. 매번 내가 쓴 법(法)을 보고 과격하게 하여 또 새로운 문제를 초래한다.”고 이야기하셨다.

최근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안으로 찾는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시니, 어떤 동수들은 좀 극단으로 가고 있는데 일에 봉착하면 오직 안으로 찾고 다른 사람의 부족점에 대해 지적할 필요가 없으며 지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동수들이 담화 중에서 자기와 관련되고 자신의 작법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말을 듣거나 혹은 모 지역 동수들이 대규모로 납치된 원인을 분석할 때 “밖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심지어 동수와의 교류를 거절하여 어떤 동수들은 감히 말도 하지 못한다.

대법 수련은 바로 “안으로 찾기”를 요구하나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며 선종(禪宗)처럼 물어볼 수도 없고 도울 수도 없으며 교류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다. 제자들이 함께 법회, 교류회를 통해 상호 교류하고 공동으로 제고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남기신 수련 방식이다. 우리는 응당 사부님께서 남기신 길을 따라가야 한다. 교류는, 자신이 수련 중에서 “안으로 찾은” 체험을 교류하는 것을 포괄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수련 중에서 나타난 문제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을 포괄하며 대법제자 중에서 나타난 일에 대한 인식, 잘하지 못한 동수에게 자신의 건의를 제기하는 것을 포괄한다. 교류의 목적은 “지기[知音 – 역주 :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부동한 의견을 듣고 부족점을 찾아 공동으로 제고하기 위함이다.

명혜망에 기재된 교류문장의 일부분은 자신이 “안으로 찾고” 법에 동화된 과정을 이야기한 것이며, 또 일부분은 자신이 가지는 한 편의 문장에 대한 관점, 기타 동수의 일부 언행에 대한 관점을 발표한 것이다. 일부 문제에서 매번 비교적 대형적이고 좀 긴 시간을 토론했다. 예를 들면 “안전과 두려워하는 마음”의 문제, 대법제자의 가정 혼인 문제, 어떻게 “박해가 온다는 소문”을 대하겠는가 등등이다. 토론 과정에서 동수들은 법리를 더욱더 분명히 했으며 모두 부동한 정도의 제고를 가져왔다. 이런 토론은 “누가 누구에게 의견이 있고”, “누가 누구보다 높다 “, “누가 누구를 질책한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은원(恩怨), 사람과의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법제자는 정체이다. 이것은 대법제자가 법으로 가늠하여 직면한 일체이며 어떻게 더욱 잘 법에 동화하고 법을 실증하겠는가 하는 것을 교류한 것이다.

우리는, 법으로부터 수련생을 도와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사부님의 요구이고 대법제자가 대법에 원용하는 책임이며 역시 대법제자가 수련해낸 자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속담에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똑똑하게 잘 본다”는 말이 있다. 문제에 봉착할 때 신변의 수련생이 만약 법에서 가늠할 수 있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당사자 동수로 하여금 더욱 이지적이고 더욱 명석하게 할 것이다.

동수의 부족점을 지적하지 않을 때, 한 방면으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밉게 보일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겨져 버리지 못하게 되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동수의 부족한 점도 빨리 미봉할 수 없어 쌍방의 수련에 모두 좋은 점이 없다. 우리의 신변에는 이와 유사한 교훈이 적지 않다. 우리는 늘 사후에 후회할 수 없다. 내가 무엇 때문에 처음에 엄숙하지 않게 그(그녀)들에게 지적했겠는가? 기실 이것도 우리 자신의 수련에서의 문제를 반영한다. 엄숙하게 수련하지 못하여 완전히 법으로 가늠할 수 없었고 법의 원칙을 견지할 수 없었으며 자신의 정념을 견정하게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밖으로 찾다”는 문제가 발생한 후에 질책, 원망하고 책임을 미루어 버리며 다른 사람의 부족점만 찾으면서 자신의 부족점을 안으로 향해 찾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자비하게 포용할 수 없으며 꺼려하고 업신여긴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지적할 때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을 개변시키려고 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인정하게 하려 한다. 당문화 “투쟁”의 요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어조가 선하지 않고, 평온하지 않으며 말로 다른 사람을 자극하거나 혹은 빗대면서 다른 사람을 중상모략한다. 인식이 같지 않고 일을 하는 방법이 같지 않을 때 큰 국면을 고려하지 않고 자아를 내려놓지 않으며 자아를 견지하고 기타의 수련생을 배척하는 등등이다. 이런 심태는 잘 협조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초래하며 바로 우리가 안으로 찾아 닦아버릴 것들이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기 싫어하는 수련생은 대개 이 방면에서 잊을 수 없는 심령의 자극을 받은 적 있거나 혹은 자신이 진심으로 수련생을 도왔는데 수련생이 접수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그로 인하여 모순충돌이 발생했었거나 혹은 다른 수련생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지적할 때 언어가 돌출하여 힘들었다. 어떤 상황이든지 기실 모두 사람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며 다른 한 각도로 말하면 바로 우리들이 안으로 찾고 수련하여 제고할 좋은 기회인 것이다. 만약 도리어 소침해진다면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에 어긋나는 것이다.

제 396기 명혜주간에서 나는 “안전과 두려워하는 마음”중의 비유가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오늘 빌려와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수련생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밥을 먹다가 목이 메었다고 하여 그래 밥먹는 것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가? 버려야할 것은 착오적으로 밥을 먹는 방법이지 밥을 먹는 자체가 아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선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점을 지적한 것은 법의 요구에 부합되는 것이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방식, 방법상에서 표현된 일부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응당 버려야 하는 것이다. 대법제자 사이에 근본적으로 신임할 수 있고 자비하게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동시에 자아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흉금을 열고 교류하여 법에서 공동으로 제고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정체 성숙으로 나아가는 표시의 하나일 것이다.

개인의 작은 인식이니 부족한 점은 동수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하고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8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19/20670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