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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관을 넘는 것에 대해 다시 논하다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8월15일]몇일전, 수련생이 아프단 소식을 들었다. 이 수련생은 오랜시간 병업에 시달려 왔는데, 여러 동수들이 번갈아 방문하여 발정념을 하는 등 도움을 주었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자 동수들도 의욕이 떨어졌고, 교류끝에 결국 그 동수 스스로 정념으로 넘어야 할 관이라는 판단을 했다. 과거, 그와 같이 병업을 겪다가 세상을 떠난 동수들이 주변에 몇명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보더라도 생사의 난은 본인 스스로의 인식으로 정념하에 넘겨야 하는게 맞는 것이란 판단이 든다.

나는 이 병업중의 동수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 참 마음이 아팠다. 그 어려운 상황은 동정이 가지만 왜 사부님이 각자의 상황에 맞는 길을 배치해 주셨는데 넘기지 못하는지…그때마다 제대로 인식하고 정진했다면 다 넘을 수 있었을 난들인데 잘하지 못하다가 결국 이런 큰 난에 맞닥뜨려 힘겨워하는 처지가 안타까워서이다. 수련중에는 생사관이 있다. 심성이 얼마만큼 도달했으면 생사관도 별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두 당신의 난이다. 우리는 당신의 심성을 제고시키기 위해서 그 난을 이용했다. 당신이 넘지 않으려고 해서 넘을 수 없는 것이지 넘어 가려고만 하면 넘어갈 수 있다.(전법륜) 평상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안으로 찾았다면 이렇게 난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표현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병업이나, 경찰에게 잡혀서 박해받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거나, 상상하지 못하는 등등의 번거로움을 겪는다. 우리의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채 난이 크게 오면 그땐 이미 늦어 감당하지 못하고 절망속에서 반대면으로 가거나, 삐뚤게 인식하거나, 심한 경우 떨어질 수도 있다. 어떤 수련생은 주위사람들이 보기엔 아주 수련을 잘하는 듯 보이나 난을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어 이상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실상은 심성을 지키지 못하는 등, 실속있게 수련하지 못한 누락이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에 대해 이렇게 설법하셨다. 당신이 요만한 난도 못 넘어가면 최후에는 결국 모여서 큰 관이 되다. 그때의 큰 관은 당신의 생사를 내려 놓지 못하면 못 넘어간다. 어떻게 하겠는가? 심지어 당신의 생사를 내려놔도 평형을 잡지 못하게 된다. 당신의 정념 또한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구세력이 놔주지 않기 때문이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

다른 정황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세가지를 잘하는 수련자들인 것 같지만 어떤 수련생은 박해를 받지 않고. 또 어떤 수련생은 감옥에 잡혀가기도 하지만 정념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이런 결과는 이 수련생이 얼마나 착실하게 수련했느냐에 따라서 이렇듯 달라지는데 평소에 이런 수련생은 한발 한발, 모든걸 안으로 찾으며 착실하게 수련했기 때문에 구세력이 틈을 타지 못하기 때문에 제약하는 힘이 없어 만사가 수월하다.

내 주위에 노(老) 수련생이 있었는데 이전에 암 환자였으나 후에 법을 얻고 완치 되었다. 그 수련생이 말하기를 “당신의 생명은 끝이 났지만 수련을 하기에 연장시켜 주었다”며 법을 얻은 직후, 사부님의 점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 수련생은 아주 착실히 세가지 일을 잘했으며 어떤 일에 부딪혀도 겸손하게 전부 안으로 찾고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가 법의 체현이라고 생각하며 매사에 수련자의 각도로 생각하고 행하는 모습이기에 주변의 동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어떤 동수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지금은 정법시기 이기에 개인수련의 난을 배치하지 않았다고”… 그런 비뚤어진 인식으로 게으름을 합리화하여 심성을 제고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구세력의 교란이라고만 생각하는데, 내 생각에 이런 것은 틀린 생각이다. 정법시기에 사부님은 구세력의 안배를 인정 않으신다. 그러나 구세력은 필경 출현했고 우리가 틈을 타지 못하게 하려면 엄격하게 안으로 찾으며 심성을 제고하고 진정하게 집착을 버려야 사부님의 안배에 의해 수련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입으로만 구세력의 안배 운운 하며 결국 정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2002쯤, 자료 제작등을 맡았던 수련생이 있었는데 비용의 일부를 자기가 임의로 사용하여 교류를 해보니 질투심이 크고 자신의 생활이 법보다 우선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다른 수련생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그 수련생이 자료 제작을 하지 못하도록 중단 시켰다. 그런데 이 수련생은 그때까지도 자기 집착을 버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에서 또 자료제작을 맡아 하는 중에 경찰에게 잡혀가서 보증서를 쓰고서야 풀려났다. 그 후 병이 깊이 들어서 병치료를 위해 재산을 전부 소진했는데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했고, 동수들이 선념을 갖고 찾아가서 도우려고 했지만 법을 욕하고 사부님에 대해 불경한 얘기를 하더니 끝내는 구세력의 박해로 목숨을 잃음으로 만고의 기연인 대법을 잃었다. 나는 그가 너무 불쌍했다.

내가 이 문장을 쓰는 이유는 나 자신이 예전에 정진하지 못했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라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기에 지금도 존재하는, 내 주위의 평소에 실속있게 수련하지 못하는 동수들이 빨리 깨닫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 나는 지금 세가지 일을 놓치지 않으며 심성제고와 매사에 안으로 찾는 것과 모든 생명에게 선하게 대하는 것을 중시하며 정진하고 있다. 만약 아직도 인식에 부족함이 있어 정진 못하는 동수들이라도 풀죽지 말고 바로 지금이 가장 빠른 미래이므로 마음을 다잡으며 난이 높아 넘기 어렵다 하지말고 엄격하게 심성을 지키면서 어떤 일에서도 참고, 대법은 내 집착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을 잃지 말고 한걸음 한걸음 나가게 되면 언젠가는 관을 꼭 넘길 수 있다. 개인 체험이므로 층차의 한계가 있으므로 부족한 면은 동수들의 자비로 지적을 바랍니다.

문장완성:2009년 8월 15일
문장분류:수련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15/2065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