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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邪悟)’한 사람들을 정념으로 대하자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8월 12일】 우리 지역의 ‘사오’한 자들에게는 일치된 논조가 있는데 바로 자신들이 도달한 경지는 이미 ‘진, 선, 인’의 경지를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또, 무슨 일을 하든지 생각만 하면 된다는 것과 진상은 이미 시기가 지났으며, 중공을 해체할 필요가 없다, ‘제 10강’ 등 난법의 것을 신봉하는 것이다. 최근에 또 한 가지 새로운 논조가 등장했는데 바로 공산주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잠시만 접촉해보면 그들의 사유 논리가 혼란하고 이지적이지 못하며 언행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남녀 관계를 가리지 않으며 많은 사람이 다단계를 한다. 이런 행위는 직접 사부님의 가르침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들은 속인 중에서 대법의 성망을 손상시켰고 중생이 대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구도 받는데 거대한 장애를 설치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종종의 현상으로 보건대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유다가 되었다. (몇몇 대법제자가 납치되기 전에 모두 ‘사오’한 인원들과 밀접한 접촉이 있었다.) 그들이 내부로부터 법을 파괴하는 행위는 이미 ‘대법제자’란 신성한 칭호를 더럽혔다. 그들이 범한 것은 이미 단지 “법리가 분명하지 않다”는 착오가 아니며 그들의 배후에는 이미 마가 직접 조종하고 있다.

‘사오’ 인원들의 억지스런 사설(邪說)은 황당무계하고 가소로워 반박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몇 년간 우리 지역에는 ‘사오’ 인원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끌어내렸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중점적으로 논할 한 가지 문제는 대법제자들이 ‘사오’한 인원을 접촉할 때 꼭 정념으로 ‘사오’한 인원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정념은 바로 ‘사오’한 자의 그 어떤 이론도 절대 접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긴다.

‘사오’인원들이 사람을 미혹하는 점은 그들이 자신의 일체 황당한 사설을 모두 사부님의 대법 중에서 ‘근거’를 찾은 것인데 이는 사실 단장취의(斷章取義) 한 것이고 왜곡한 것이며 사부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한 것이다. 법리가 분명하고 법에서 견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아주 쉽게 그들을 분별할 수 있다. 우리 지역에 ‘사오’에 미혹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래 몇 가지 상황에 처해 있다.

1. 법공부가 깊지 않고 법리가 분명하지 않다

어떤 수련생은 법을 얻은 시간이 늦다고 할 수는 없으나 1999년 이후 불법 노동개조로 인해 장기간 법과 이탈해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저애를 타파하지 못해 늦게 걸어 나왔다. 또 어떤 사람은 하사(下士)에 속하며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대법이 맹렬하게 발전하는 과정에는 이런 사람들도 잘 수련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법공부에 대량의 공력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구하는데 썼으며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은 이것을 듣고 내일은 저것을 듣는다. 마(魔)는 그들이 법리가 분명하지 못한 틈을 탄다. 그들은 법공부를 적게 하여 법을 잘 이해할 수 없으며 모종 기괴한 언론을 듣기만 하면 “높다”고 느끼고 지름길을 찾았다고 여긴다.

바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중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당신의 머릿속에 한 가닥 염두(念頭)가 조금이라도 나왔다 하자: 아이고, 이 말은 일리가 있구나. 이 염두가 얼핏 스치기만 하면 그 안의 부체(附體)가 곧 달라붙을 것이다.”

이는 또 사부님의 다음 가르침을 완전히 망각한 것이다.

“이는 수련에서 아주 엄숙한 문제로서 오직 이 대법(大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옳은 것이다.”(『전법류』)

2.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다

작년 올림픽 이후 사악의 한 차례 대 ‘검증’에서 어떤 사람은 두려워서 보증서를 썼다. 그러나 체면 때문에 또 자신의 착오를 승인하기 어려워하며 동수들 앞에서 덮어 감추는데 고집스럽게 “속인을 이해하고 속인 상태에 부합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시끄러움을 끼치지 말자.”라고 하면서 자신을 속이고 장기간 ‘엄정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주신 수련의 길로 되돌아갈 기회를 이렇게 무시했다. “경지가 높으면 무위(無爲)해야하며 진상을 알리지 않아도 된다.”는 무엇이 ‘무위’인지 분명히 모르고 듣기만 해도 타파할 수 있는 거짓말을 어떤 사람은 보배처럼 손에 떠받들고 있다. 마는 그들의 두려워하는 틈을 타며 마에게 끌려갈수록 멀리 간다. 어떤 자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도처에서 사람을 끌어다 유사하며 황당한 언론을 퍼뜨린다. 어떤 사람은 정말 끌려간다. 법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의 수련을 파괴하는 이런 큰 죄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

3. 인정(人情)이 중하다

『전법륜』제 6강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가짜기공을 연마하는 사람을 대할 것인지 가르쳐주셨다.

“물론 당신이 접촉하려 한다면 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갖지도 않으며 다만 일반적인 친구로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크지 않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의 몸에 정말로 어떤 것이 있으면 매우 나쁘므로 가장 좋기는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본래 ‘사오’하지 않았는데 ‘사오’한 사람들에 대해 인정이 중하여 그들과 늘 오가면서 장기적으로 함께 지낸다. 최종적으로 독해 받아 어떤 사람은 납치되었고 어떤 사람은 ‘사오’로 간다. 전에 어떤 수련생이 그들에게 ‘사오’한 사람과 내왕할 때 주의하라고 제기하면 그들은 늘 “그들을 이해하자. 그들 역시 수련하고 있다. 그들도 자신이 깨달은 이치가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것이 그리 도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들의 것을 많이 듣고 적게 부정하면 그들이 당신에게 반감을 갖지 않으며 그들과 많이 접촉해야만 그들을 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관건은 자신을 보아야 하며 누구와 왕래하든 관계가 없다”고 변명한다. 어떤 사람은 ‘사오’한 인원이 고향사람이라고 집착하며 동창이라고 관계에 집착하며 그들의 난법 행위를 지적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동수 정’에 집착하면서 난법하고 ‘사오’한 인원을 여전히 이전의 동수로 간주하고 내왕이 밀접하다. 또 어떤 사람은 더욱 괴상하게 ‘사오’한 인원과의 ‘전세(前世)’ 관계를 논한다.

이처럼 법에 있지 않고 사람의 정으로 수련을 대체하는 것은 ‘사오’한 인원의 기세를 도왔으며 도처에서 “나는 금방 모모 집에서 나왔다.”, “모모도 나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말하면서 대법제자 사이의 신임을 이용해 일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최근에 모 수련생은 박해를 받는 것이 두려워 대법서적을 ‘사오’ 인원의 집에 감추기면서 ‘사오’ 인원의 곳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법을 파괴하는 이런 마를 믿고 완전히 법에 있지 않은 행위를 한 이 수련생은 이미 부분적으로 ‘사오’한 인원의 독소를 접수한 것이다. 만약 벼랑 끝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4. 주의식이 강하지 않아 맹목적으로 타인을 숭배

‘사오’한 사람 중 이런 사람의 비중이 비교적 많다. 수련 초기에 주의식이 강하지 않아 법을 스승으로 삼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대법을 인식하고 대법에 동화하며 착실하게 법에서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며 감수를 중시하고 ‘신기한 사적’를 추구하면서 주의식이 분명하지 않아 늘 끌려다니기 쉽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맹목적으로 타인을 숭배하는 것이다. 어느 사람이 공능이 좀 있기만 하면 혹은 언변이 좋아 심오하게 둘러대면 바로 따라간다. ‘사오’한 인원의 배후에는 늘 한 무리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중 색마 역시 아주 큰 패괴작용을 일으키는데 몇몇 여자들이 한 남자를 둘러싸고 돌거나 아니면 몇몇 남자들이 한 여자를 둘러싸고 돌며 남녀 관계가 발생하는 것도 있다. 또 어찌 남녀의 정 문제뿐이겠는가? 정말로 인륜을 패괴시킨다. 이런 사람은 파괴력이 극히 크며 속인 중의 영향이 몹시 나빠 대법에 먹칠을 했다.

5. 자고(自高)자대(自大) 하여 자심생마를 초래

자심생마의 표현에 대해 사부님께서는『전법륜』중에서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늘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고 자그마한 이치를 깨닫고 자그마한 일을 해도 심지어 박해를 받은 것도 다 내놓고 자랑하는 밑천으로 간주한다. ‘사오’한 사람들 중에는 한 가지 논조가 있는데 “노동 교양을 받지 않았으면 자신들의 이론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수치를 영광으로 간주하며 자고자대한 심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 파괴의 범위와 힘을 넓히기 위하여 그들은 이 설법을 개변하여 “오직 진정으로 수련하고 연분이 있어야만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 여전히 자고자대이다. 늘 자신이 수련을 잘하고 높이 수련했다고 여긴다. 일단 이런 자대를 망상하는 심태가 있기만 하면 마의 통제가 커지며 최후에 “진, 선, 인을 초과했다”는 난잡한 말을 접수하게 되며 ‘사오’로 가게 된다.

『정진요지』「정론」이란 경문에서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들은 기억하라. 장래 어느 때, 어는 곳, 어는 사람이 어떠한 구실로 대법을 부(部), 파(派), 문(门), 종(宗) 따위로 갈라놓는 유사한 행위는 모두 난법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은 것을 당신들은 영원히 할 수 없다. 과시심, 게다가 환희심은 마에게 이용당하기가 가장 쉽다. 당신들이 대법 중에서 무엇을 깨달았든지 모두 끝없는 법리가 한 층차 중에 존재하는 법리의 한점에 불과한 것으로 , 이로서 법 또는 법의 어느 한 부분, 심지어 어느 한 마디 말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만약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한다면 말이 나오자마자 죄업이 이루어지는 지라, 중한 자는 심중하기가 산과도 같고, 하늘과도 같으니 어찌 수련할 것인가? 만일 대법을 뜯어 고치고 따로 수작하는 자는 그 죄가 크기로 끝이 없으니, 생명이 악업을 갚을 때, 층층마다 깡그리 소멸되는 고통은 영원히 끝없는 것이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동수들이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법으로 ‘사오’한 인원이 법을 어지럽힌 심각성을 가늠하고 단호하게 ‘사오’한 인원의 난법 행위를 제지하고 듣지 않고 보지 말며 접촉하지 않아 그들에게 난법할 시장을 주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들의 허장기세를 누르고 근본 상에서 ‘사오’ 이론의 독해 가능성을 막는다면 이렇게 개별적 사람이 ‘사오’한다 해도 시장이 없을 것이며 마는 흥행하지 못해 얼마 가지 않아 스스로 자멸하고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능히 돌아올 수 있는 ‘사오’한 인원을 진정 도우려면 우선 자신의 정념을 강화해 그들과 접촉할 때 발정념을 많이 하여 그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그들이 적게 말하게 하고 우리가 법에서 그와 난법의 엄중성을 많이 분석해야 한다. 절대 ‘사오’한 인원의 어떤 이론도 접수하지 않으며 그들이 말하는 매 한마디 ‘사오’의 논조를 즉시 대법의 법리로 명확하게 벗겨 버려야 하는데 가장 좋기는 함께 법공부하는 이런 형식으로 대법의 위력으로 그들의 ‘사오’ 의 황당한 언론을 타파해야 한다,

개인의 자그마한 인식이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하게 지적하여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8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8/12/20632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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