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북 진황도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30일] 안전 문제에 관하여 특히는 수구 방면, 핸드폰 방면에서 늘 중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부님께서는《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의 문제를 주의해야 한다. 당신들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의 책임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것 역시 수련이다. 수련 중에서 곧바로 자신이 자아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반대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실증하는 이런 문제를 조장할 수 없다. 법을 실증하는 것과 수련 중에서 역시 자아를 제거하는 과정이므로, 그렇게 하였다면 당신이 비로소 진정하게 당신 자신을 실증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최후의 속인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인의 일체를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속인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안전 방면의 설법을 하셨으며 명혜편집부에서도 안전 문제를 여러 번 강조했다. 명혜망은 더욱 장기적이고 대량으로 이 방면의 심득체험과 피의 교훈을 기재했다. 그러나 지금 각 지역의 어떤 동수들은 아직도 ‘안전’을 마이동풍으로 여기고 제멋대로 한다. 수구하지 않고서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나누어줄 때, 누가 무엇을 하고 누가 무엇을 하냐 하는 것을 거의 반 공개한다. 전화 방면에서(핸드폰, 일반 전화로 대화) 줄곧 이런 동수들이 있는데, 늘 자신은 “두려운 마음이 없고 정념이 있다.”는 것을 견지하며, 전화(핸드폰) 안전 조치에 대한 일깨움을 거절한다. 동시에 다른 한 면은 단체 활동을 할 때, 모두 안전에 주의하라고 일깨워줄 때가 아주 적으며, 안전문제를 말하면 무서워하고 수치스러워 하면서 마치 안전을 말하면 광채롭지 못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긴다.
이 두 가지 표현은 다 법리가 분명하지 못한 표현으로서, 사부님께서 우리들에게 안전 방면에 관한 설법을 하셨는데, 우리는 자신과 타인, 나아가서는 정체 법 실증의 평온과 안전을 위하여 무엇 때문에 이지적으로 정정당당하게 안전을 강조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접수하지 않는 것이 두렵거나 혹은 자신이 상해를 받을까봐 두려워서 정체로 사람을 구하는 환경의 안전을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지 않는 수련생에게는 주요하게 몇 가지 심태가 있다 : 자신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실증하면서 뺄 필요가 없다고 하거나, 나의 법기(法器)이니 어떻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번거롭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편리만 도모하는 등등이다. 사실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중국인들이 집집이 대문을 잠그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니 복잡한 구실은 없다. 또한 지금 핸드폰 감독기술이 아주 널리 보급되어 전자지도에서 핸드폰의 위치를 생각대로 추적하고 지정한다. 어떤 속인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 배터리를 빼라고 강조하면 감춘다. 특히는 대량의 인원이 모일 때, 핸드폰의 안전 방비를 하지 않으면 안전위험이 제일 크다. 그러므로 이 방면에서 동수들은 모두 응당 성숙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건의 : 오직 모두들 정체로 일할 때(단체 법공부, 법회, 토론 교류할 때) 핸드폰을 휴대하지 말라 (혹은 몇 백 미터 밖에서 배터리를 빼라). 만약 아직도 자신을 견지한다면, 자신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대국면을 돌보지 않는 것이며, 정체와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과 일은 엄숙히 제지하거나 그런 사람들을 퇴장하게 해야 한다. 인정과 체면,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제약한다면 화근을 남기는 것이다.
개인의 건의이므로 부정한 점이 있으면 동수들이 지적하여 바로 잡기 바란다.
문장 발표: 2009년 7월 30일
문장 분류: 수련마당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7/30/20545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