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2009년 7월 21일] 사람을 구하는 효과, 즉 사회에서의 대법의 명성과 질량은 우리가 진정 마음으로 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늘 어떤 동수들이 진상을 하는 방면에서, 그 뒤의 효과에 대해 주의하지 않는 문제를 보게 되었다.
이를 테면 호신부에 대해, 어느 수련생이 사부님께 신, 불의 그런 형상의 호신부를 써도 되는지 물었을 때, 사부님께서는 이미 적당하지 않다고 우리에게 알려 주신지 아주 오래 되었는데도, 어떤 수련생은 아직도 쓰고 있다. 바로 후에 반응할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속인은 호신부를 불교중의 신불로 여기고 모시고 있는데, 그건 “주객이 전도”된 부면 효과를 생기게 하는 게 아닌가? 진선인은 생명 존재의 근본이며: 대법을 인정하는 것만이 미래로 진입할 수 있는 보증이다. 조그마한 호신부 자체는 진상을 대표할 수 없으며, 진상을 분명히 알리는 것과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 어떤 수련생은 진상 메시지나 진상 지폐에 쓰는 일부 용어가 아주 신중하지 못하다. 마치 “파룬따파는 좋다네. 성심으로 늘 외우면 생명을 보호할 수 있고, 재난이 없어져 사람마다 즐겁게 웃는다네……”라는 것처럼 이다. 또 예를 든다면, “ 파룬따파 하오를 늘 외우면 재난을 없애고 병을 고쳐 평안과 건강을 지키고, 백병이 사라지네”이다. 하지만 ㅡㅡㅡ
속인은 어느 날에 가서 무슨 병을 얻으며, 어느 날에 가서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두 예상하기 아주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ㅡ지금의 사람은 업력이 모두 아주 크기 때문이다.
그래, 속인이 늘 “파룬따파 하오”를 외워 재난이 없어지고 병이 떨어진다면 그럼 빚을 지고 갚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무슨 난이던 사부님께서 모두 없애 주시는 건가? 무슨 병이던 죄다 없어지고 죄다 사부님께서 감당하시란 말인가?(물론 나는 동수에게 진정으로 이런 사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조심하지 않아, 글자마다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수련하는 사람일지라도 사부님께서 자비로 구도하시느라 없애주신 것 외 나머지는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에서 언급되었던 이 사람은 일생에서 꼭 뇌혈전을 얻게 되지만 이 난이 나타났을 때 사부님께서 이미 그에게서 많고 많은 것을 없애 주어, 이 난이 아주 작디작은 것으로 변하게 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파룬궁을 연마하여 편차가 생겨 뇌혈전에 걸렸다고 탓 하였다.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이 정말로 메시지나 진상지폐 이런 정보를 받은 후, 사부님께서 그를 도와 일부분 업력을 없애주고 그에게 복을 주었다 해도 재해가 없고 난이 없는 지경까지는 해 줄 수 없으며, 빚을 져도 모두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다른 한 방면은 이 사람에게 무슨 병이나 무슨 난이 나타났을 때 “뇌혈전”에 걸린 그 사람처럼 도리어 대법을 탓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진상을 알린 후에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권유 하였거나 다른 수련생이 탈퇴를 권유한 (바로 이미 3퇴한) 사람 가운데도 늘 “파룬따파 하오”를 외우지만 늘 병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금방 3퇴할 것을 동의했음에도 한 시간 내에 돈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제때에 업력 방면에 관해 연결해서 해답해 주었는데, 그에게 어쩌면 이 돈을 잃은 것이 큰 재난을 없앤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커다란 좋은 일 ㅡ격언에 재산을 잃으면 재난이 없어진다고 했다.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서 나는 어떤 땐 수련생이 쓴 “신은 왜 인간 세상에 고난이 존재하게 하는가?” 란 글 중의 이야기를 인용하기도 한다.
여행하고 있던 두 천사가 한 부유한 가정에 빌려 들게 되었다. 이 집 사람은 그들을 우호적으로 대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편안한 객실에서 밤을 나는 것을 거절하고 썰렁한 지하실 한 쪽 구석을 찾아 주었다. 그들이 이부자리를 펼 때 좀 늙은 천사는 벽에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걸 잘 수리해 주었다. 젊은 천사는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노 천사가 대답했다. “어떤 일은 당신이 보이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
이튿날 저녁, 두 사람은 또 아주 가난한 농가에 하루밤 주숙하게 되었다. 주인 부부는 그들을 열정적으로 대해 주면서 아껴둔 음식물을 꺼내어 손님을 접대 하였고, 자기들 침대를 두 천사에게 양보해 주었다. 그럼에도 이튿날 이른 아침, 두 천사는 농부와 그의 아내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 하였다. 그들의 유일한 생활 내원인 젖소가 죽었던 것이다. 젊은 천사는 아주 분노하면서 노 천사에게 왜 이렇게 하는가고 물었다. 첫 번째 집에는 뭐나 다 있어도 노천사는 그들을 도와 벽을 발라 주었으나. 두 번째 집은 이렇게 가난한데도 그들을 잘 대해 주었지만 노 천사는 젖소의 죽음을 제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일은 당신에게 보이는 것처럼 그렇지 않다.” 노천사가 대답 하였다. “우리가 지하실에서 밤을 보낼 때, 나는 벽 구멍 안에 금덩이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주인은 탐욕에 미혹돼 있어 그의 재부를 나누려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벽 구멍을 막아 버렸다. 어제 저녁 죽음의 신이 농부의 아내를 데리고 가려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를 대신해 젖소를 데려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일은 당신이 보이는 것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서 말한 것은 큰 난을 작은 난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그의 진정한 난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른다)은 복을 얻고도 “여전히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비난한다”
사람이 “무재무난”(无灾无难)하다는 이 말은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업력이 없을 수 없으며, 업력이 있으면 병이 있거나 난이 있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업력이 없다면 그건 신이 아닌가? 더구나 업력이 구르고 굴러서 온 오늘의 세상 사람임에랴.
또 한 방면은 우리 수련인은 절대적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방면인데, 이 역시 수련 중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한 중학생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단,대 탈퇴를 권하면서 “영원한 행복” 따위의 말을 하였다. 그날 저녁 꿈에 사부님께서 이 방면에 수구할 것을 나에게 점화해 주셨다. 우리가 한 말은 그 곳에 정해지기 마련인데, 사람에게 업력을 없애지 못하게 한다면 사람에게는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여러 방면에서 말을 절대적으로 하지 않도록 주의를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있는 층차의 진상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 더 높고 깊은 것은 고층차까지 수련해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뱉을 수 없는바, 이는 수련중의 필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사실 대법은 사람에게 병을 떼고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재난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특수한 역사시기에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 하오를 성심으로 외우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병을 떼 주고 복을 얻게 하셨을 뿐이다. 이렇듯 사악한 환경에서 파룬따파 하오란 한 마디를 할 수 있는 것을 보시고, 또한 하늘같은 담을 무릅쓰고 이렇게 내려온 경력을 보아 주셨을 뿐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파룬따파 하오를 늘 외우라고 알려 주는 것은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고 미래에로 진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이렇게 알려 준다. 파룬따파 하오를 늘 외우면 복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병이 있어서 잘 외우는데, 좋은 사람이 돼야 효과 있고, 진, 선, 인에 따라 얼마나 하면 얼마를 얻을 수 있다. 좋은 사람으로 변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도덕이 미끄럼질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진선인은 좋고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알려 주라! 아무리 부유해도 미래는 보증하지 못한다. 9글자 진언은 미래를 보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메시지나 진상 지폐에 이렇게 쓸 수 있다: 파룬따파 하오를 성심껏 외우면 훌륭한 미래가 있을 것이며, 복을 받을 것이며, 화가 복으로 변하고, 난이 상서로움으로 변할 것이다….. 등등으로서 총괄하면 너무 지나치게 말하거나 절대적으로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절대적이면 틀리기 때문이다
속인에게는 남의 뜻을 잘 알아차린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 집착에 따라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참말로 마음을 써서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누가 잘하지 못했다거나 마음을 써서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모두가 더 세심히 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더 좋게 하기 위해서이며, 그 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인식을 삼가 동수들과 교류하는 바이다.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7/21/2047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