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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가 여전히 지속되는 원인을 담론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7월 2일]

대법에 대한 사악의 박해는 이미 십여 년간 지속되고 있으며, 개별적인 지역에서 사악의 표현은 아주 미친듯하다. 그럼에도 대법제자는 십여 년의 정법수련을 경과하면서 대부분 더욱더 성숙하게 단련되었고, 더욱더 이지적이며, 더욱더 자신이 응당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대법제자가 조사 정법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사악은 깨끗이 제거되었고 남은 사악의 요소는 이미 아주 적어져 지금 대법제자가 발정념할 때 도처로 사악을 찾아다니고 있다. 대법제자가 전반적으로 낡은 세력의 일체 안배를 부정하는 데에도 박해는 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가? 필자는 주요원인이 다음 몇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위사위아의 사람 마음을 버리지 못했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했다. 둘째는 관념에 좌우지되고 있다. 셋째는 신사신법에 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1, 위사위아하며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위사위아는 낡은 우주의 특성으로 대법제자 역시 낡은 우주 속에서 산생된 생명이기에 불가피하게 낡은 우주의 위사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운 좋게 사부님의 선택으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어 대법을 얻게 되었으며 정법수련 속에서 끊임없이 낡은 우주의 위사의 특성을 닦아버리고 새우주의 위타(위공)의 특성에 동화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낡은 우주의 위사한 특성은 불가피하게 반영되어 나와, 심지어 목숨을 걸고 대법제자가 신우주의 특성에 동화되는 것을 저애하고 있다. 이처럼 양자는 대립되기에 신우주의 특성에 동화되면 낡은 우주의 특성은 곧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낡은 우주의 특성은 곧 대법제자가 신우주의 특성에 동화되는 것을 극력 교란하고 저애하고 있다. 이는 대법제자가 수련 속에서 각종 모순과 마난을 만나게 되는 원인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를 무사무아의 정각으로 수련성취 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우주의 대법을 전해 주셨고, 우리에게 천서인 >을 주셨다. 또한 우리에게 모순에 봉착하여 안을 향해 찾는 법보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의 부동한 시기의 정황에 근거해 번거롭게 여기지 않고 우리에게 설법해 주셨는데, 우리는 도리상 응당 쾌속으로 사람의 마음을 닦아버려야 하며 새로운 우주를 향하여 동화되어가야 한다. 하지만 위사의 사람 마음의 교란으로 인해, 사부님께서 이미 법을 아주 명백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비와 난을 만나게 되면, 우선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이 손실되지 않겠는가를 생각한다. 이런 위사한 사람 마음이 심하게 대법제자의 제고를 가로막고 있다. 위사라는 사람 마음이 교란을 해 대법제자로 하여금 간격이 산생되게 하였고, 사적인 이익을 내려 놓을 수 없으며, 명리를 내려 놓을 수 없고, 정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두려운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없다. 결국 한마디로 생사를 내려놓지 못한다. 생사를 내려놓는다함은 결코 정마로 가서 한 번에 죽는 게 아니다. 생사고비는 가능하게 매 사람마다 다른데, 어떤 사람은 정이고, 어떤 사람은 이익이며, 어떤 사람은 명일 가능성이 많다. 또 어떤 사람은 가능하게 병(그러한 병마에 의하여 생명을 잃은 사람)이며, 어떤 사람은 가능하게 곧바로 생사이다. 어느 한가지이든 모두 대법제자가 나중에 사람으로부터 신을 향해 걸어가는 데 반드시 넘어서야 할 사관(死关)으로서 누가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누가 곧 신우주에 동화될 수 없으며 원만할 수도 없다. 자신마저 원만할 수 없는데 중생을 구도한다함은 한마디 빈말에 불과하게 되기 때문에 대법제자는 반드시 생사를 내려놓아야 하는 바, 이는 절대로 소홀해서는 안 된다.

속인으로서 생사를 내려놓는다함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보다 어려우나 대법제자는 법속에서 이미 생사에 대해 깨달았고, 사부님께서 법속에서 일체를 모두 명백히 말씀하셨다. 가히 이미 수수께끼를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대법제자의 미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우리는 또 그 무엇을 내려놓을 수 없겠는가? “당신들은 아는가? 부처님은 당신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찍 속인 중에서 동냥하였고, 나는 오늘 또 큰문을 열고 대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몸은 비록 미혹 중에 있지만 우리는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약을 하였고 사부를 따라 세간에서 정법을 하려고 소원하였기 때문이다. 구도중생은 사전의 우리의 크나큰 소원이고, 역시 우리의 신성한 사명인바 이 한 점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왜 아직 박해가 지속되고 있는가? 대법제자가 사람의 마음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사악이 비로소 틈을 타고 박해하는 게 아닌가? 만일 우리가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을 향하여 자신을 닦고 생사를 내려놓고 머리에 담은 것이 모두 법이라면 사악이 감히 박해할 수 있겠는가? 사악이 감히 대법제자를 붙잡아 세뇌반, 노교소, 감옥에 보내 “전화”박해를 할 수 있겠는가? 오늘의 박해는 바로 대법제자의 사람의 마음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가? 동수들이여!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는가, 내려놓지 못하는가를 개인 수련의 문제로만 여기지 말라, 이는 전반 정법의 국면과 관계되는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의 수련생이 자신의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함은 전반 정법국면에 영향주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두 사람이 또 그렇게 생각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수련생이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누락이겠는가!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와 파괴하지 않겠는가? 사악은 바로 대법제자를 훼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만일 누가 이러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사악이 박해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미 자신의 미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 왜 생사를 내려놓고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내디디지 못하는가? 만일 대법제자가 오늘에 모두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럼 사악은 곧 오늘 깡그리 멸하게 될 것이며 박해는 자연히 결속되게 된다. 대법제자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기에 중생을 구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모두 보호할 수 없는 ㄱ[ 아니겠는가! 마난 속에 처한 동수여, 주저하지 말고 결단을 내려라!

2. 관념에 좌우되면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은 것이다

대법제자 역시 낡은 우주에서 산생된 생명으로, 생명의 윤회 속에서 각종 낡은 관념은 이미 뿌리 깊게 박혀있고 게다가 사당의 몇 십년의 세뇌와 폭력적인 진압으로 사람은 이미 사당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보는 관념이 형성되어 있어서, 이미 그 정도가 사당의 존재 없이는 독립적으로 문제를 사고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대륙의 수많은 사람들의 관념에는 사당이 말한 것이면 반드시 맞다고 하는바, 심지어 사고조차 해보지 않고 그렇게 말한다. 대법제자도 수련하기 전에는 동일하게 노예교육을 받았지만, 수련 후 대법을 공부함으로써 점차적으로 사당 문화의 공제를 타파하였다. 허나 여전히 일부 수련생은 법공부를 실속 있게 하지 않기에 수련에서 그다지 정진하지 못하며 여전히 사당 문화의 미혹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에 봉착하면 대법으로 가늠하지 못하고 사람의 관념으로 인식하는데 이게 바로 비자각적으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게 아니겠는가. 예들 들어 사당이 파룬궁 수련을 위법이라고 하면 그는 곧 사당의 말을 듣고 수련을 포기한다. 사당이 곧 파룬궁자료를 만드는 게 위법이기에 붙잡아서 판결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수련생은 정말로 자료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한다. 사당이 또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함은 반당이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어떤 수련생은 곧 집에 숨어서 “착실히 수련”하고 진상을 알릴 엄두를 못 낸다. 사당이 대법진상자료는 판결하고 노교소로 보내는 “죄증”이라고 말하면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할 때 우선 생각하는 게 어떻게 하면 박해를 받지 않을 것인가 하는 등등이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건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이며 사부님께서 하시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곧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정정당당하게 가서 해야 하며(이지가 아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구도해야 할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삼계는 우주정법을 위해 개창된 것으로, 이곳은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장소이지 사악이 날뛰라고 한 낙원이 아닌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낡은 세력의 어떠한 배치든지 승인하지 않으신다. 그럼 대법제자도 전반적으로 낡은 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해야 하며 정념을 견정히 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걸 가장 신성한 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면 박해를 받게 된다는 사념을 버려야 하고, 마음속에 박해를 받는다는 관념이 없게 되면 곧 박해를 받지 않게 되며 낡은 세력도 감히 박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낡은 세력이 억지로 박해하려 한다면 사부님의 법신과 바른 신은 곧 그것들을 깨끗이 제거할 것이다. 반대로 대법제자가 어떤 일을 함에 우선 박해를 받을까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박해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사악이 박해할까 두려워 할 때, 당신은 이미 자신을 사악의 아래에 놓은 것으로, 이때의 심성표준은 이미 속인으로 떨어져 사악이 한 속인을 박해함은 손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대법이 지도하고 있으며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있고 바른 신이 호법하고 있기에 오직 사부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가장 안전한 것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아직 어떤 동수들이 박해를 받는 게 발생하는 것일까? 이것은 바로 이러한 동수들의 바르지 못한 관념으로서(혹은 사념)이 조성된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지금까지도 집에 대법의 자료를 갖다놓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를 사악이 박해하는 “증거”로 여겨 심지어 >마저 보고나서는 기타 동수의 집으로 가져가는데 얼마나 심한 두려운 마음인가! 얼마나 큰 사(私)인가! 사부님께서는 대륙의 자료점은 도처에 꽃을 피워야 한다고 하셨으나 어떤 수련생은 조건이 되면서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안전”을 자신에게 돌리고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밀어주는 것으로 이렇게 큰 사심을 버리지 못하고 나중에 어찌 원만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는 수련생은 비록 본인이 사악한테 붙잡히지 않더라도 이미 낡은 세력의 박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낡은 세력은 끊임없이 당신의 사심과 두려운 마음을 가강시킬 것이며 나중에 당신을 훼멸시킨다. 대법자료는 바로 중생을 구하는 법기이며 또 가능하게 박해를 받는 “증거”일수 있으나 관건은 대법제자의 일념이다. 당신이 그것을 법기로 여기면 그것은 당신을 도와 중생을 구도할 것이나, 당신이 그것을 박해 당할 수 있는 증거로 여기면 가능하게 이것으로 인해 사악의 박해를 받게 될 것인데 바로 일념지차인 것이다.

만약 박해가 결속되려면 반드시 근본적으로 사람의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그리고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을 향해 자신을 많이 찾으면서 사부님의 요구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한다면, 곧 낡은 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할 수 있으며 중생구도의 신성한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3, 신사신법함에 에누리가 있으며 절대적으로 신사신법하지 못하였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법이다. 92년부터 사부님께서는 법을 전하기 시작하셨고, 제자의 부동한 시기의 부동한 정황에 겨냥해 대량의 법을 말씀하셨다. 정말로 진수 대법제자는 어떠한 정황을 만나더라도 마음에 들게 법공부를 해서 모두 능히 법속에서 답안을 찾았고 고비를 넘겼다. 실천이 증명하다시피 많은 진수대법제자는 위험한 고비에 직면해 견정하게 신사신법 하였으며 모두 위험 속에서 안전하게 벗어나 고비를 넘겨왔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사악의 박해를 받았다.(병마로 생명을 잃은 것을 포함) 그러면 사부님께서 제자를 구별하는 마음이 있으신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바로 매개 대법제자가 신사신법하는 정도가 부동함으로 조성된 것이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낡은 세력이 감히 반대하지 못한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할 때 악인의 추격을 당하거나 혹은 진상을 알지 못하는 세인 때문에 시끄러움을 당할 경우가 있다. 만약 수련생이 이때에 잡념이 없고 자신이 하는 일이 우주 속에서 가장 바른 일로 여기고 어떠한 박해도 승인하지 않으면서 사부님께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을 청한다면, 곧 추종이나 혹은 세인의 시끄러움을 떼어버릴 수 있고, 순조롭게 위험에서 안전하게 된다. 허나 어떤 수련생은 동일한 정황에 대면해 왜 사악의 박해를 받게 되는 것일까? 바로 위험에 봉착하는 그 순간,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절대적인 신사신법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한 무더기나 되는 것을 연상하는데, 심지어 사부님한테 청해 보호해 주실 것마저 잊어버리는데 후과가 같은 수 있겠는가? 부동한 후과는 바로 신사신법하는 정도가 부동함으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수련생은 세 가지 일을 하기 전에 우선 생각하는 게 어떻게 하면 박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보기에는 이지적이나 실제로는 박해를 승인하고 있는 것이며 박해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태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가능하게 박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병마에 박해받은 동수 중, 병마를 전승한 경우가 있으나 어떤 사람은 병마한테 생명을 잃어버렸다. 이것 역시 신사신법 하는 정도가 부동함으로 조성된 것이다. 병마의 박해 앞에서 수련생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 병임을 승인하지 않고 곧 사부님의 요구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하면서, 일을 할 때 사부님의 배치에 맡겨 결과는 순리롭게 고비를 넘기면서 병마를 전승하게 되었다. 허나 어떤 수련생은 입으로는 병임을 승인하지 않으나 마음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해 늘 상태가 좋아졌는지 여부를 감수하려 들었다. 심지어는 세 가지 일을 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신체 상태를 잊지 않는데 오늘 세 가지 일을 잘하였는데 오늘 왜 아직도 조금도 좋아지지 않는지 생각하고 있다. 이는 입으로는 병임을 승인하지 않으나 마음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하는 것으로 실제로는 아직도 병임을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이 이전에 말하기를 나는 대법을 위해 적잖은 대가를 지불하였는데 사부님께서는 왜 나를 관계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바로 이러한 수련생이 몇 명 있어서 병마로 생명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동수와 교류할 때면 다수는 모두 내심의 집착을 폭로시키려 하지 않는다.

감옥, 노교소, 세뇌반에서 왜 대법제자를 감금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곧 대법제자가 시시각각 정념으로 악인을 정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소극적으로 감당한 것으로 조성되기 때문이다. 만일 대법제자가 절대적으로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어떠한 환경하에서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배합하지 않고 정념이 족하다면 당신이 나를 여기에 붙잡아 왔으면 나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고 줄곧 “파룬따파 하오”를 외쳤고 어디로 가든지 진상을 알렸다. 그것들은 당신을 전화하지 못할뿐더러 거기의 사람은 도리어 당신한테 전화되며 이러한 곳에 감히 대법제자를 감금할 수 있겠는가? 박해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바로 대법제자한테 두려운 마음이 있기에 비로소 사악의 틈을 타게 되는 것이다.

만일 대법제자가 능히 근본적으로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고, 위사위아의 집착을 내려놓고 생사를 내려놓으며, 절대적으로 신사신법 한다면, 사악은 곧 깡그리 소멸될 것이다. 그리하여 박해는 곧 정지될 것이고 중생은 최대한도로 구도 받게 될 것이다.

문장완성: 2009년 6월 30일

발고일자: 2009년 7월 2일

갱신일자: 2009년 7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 특별추천 정법수련에 관하여사이트주소: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7/2/2037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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