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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感恩)의 눈물 그치지 않아

글/대륙 어린 대법제자

【명혜망2009년6월18일】나는 어린 대법제자이며 비교적 성격이 강한 여자애이다. 어릴 때부터 파룬따파는 우주의 근본 대법이고 자비하신 사존은 바로 우리의 사부님임을 알고 있었기에 일사일념의 동요는 한 번도 없었다. 사악이 미친듯이 박해하던 10년 동안 사부님께서는 항상 나를 보호해 주셨고 나는 대법의 신기함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진지하게 느낄 수 있었다. 10년간 나는 잠을 이룰 수 없는 무수한 밤을 보냈고 은혜에 감사드리는 눈물이 베개를 흠뻑 적셨다. 가끔 소리를 억제할 수 없는 흐느낌도 있었다.

정정당당하게 박해 서명을 거절

2000년 사악의 발광이 극에 달할 때 엄마 아빠는 “세뇌반”에 갇히거나 구치소에 갇혔다. 부모님은 공직에서 제적당하고 박해를 면하기 위해 집을 떠나 떠돌아다녔다. 후에 사악은 현상금을 내걸고 수배했는데 부모님들은 파룬따파를 단호히 수련함으로써 노교소에 납치되었다. 집에서는 전기 요금, 수도요금을 내지 못해 정전 단수되었다. 고독하고 두려운 밤이면 나에겐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니 누구도 감히 나를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두운 밤은 아주 빨리 지나갔다. 입에서는 늘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거니 진선인(眞善忍)이 마음속에 있네 세상에 대 나한을 귀신도 굉장히 두려워하네 ”(《홍음》〈위덕〉)”을 읽었다.

5월의 어느 날 사악의 선동 하에 또 한 번 학생들에게 독해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대법을 모함하는 서명을 강요했고 휴가도 내지 못하게 했다. 오후에 서명하고 오전에는 요언을 선동하도록 동원했다. 담임선생님은 특별히 나를 찾아 협박했다. “어느 학교의 누구는 서명하지 않아서 흑판을 마주하고 3교시 동안 벌을 섰다. 또 누구는 서명하지 않아서 대학 시험을 보지 못했다.” 나는 침착하게 웃으면서 “저는 철이 들어서 좋고 나쁨을 압니다. 저는 자신을 주재할 권리가 있습니다”고 했다. 오후에 그들은 몇 명의 학생을 파견하여 나에게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니게 했다. 화장실에도 따라 다녔는데 나중에는 나를 끌어다가 서명하게 했다. 나는 “선생님, 학생들 서명은 자발적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절대 서명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했다. 방법이 없자 나를 학교서기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서기, 파룬따파가 좋은 지 나쁜 지를 나는 압니다. 사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엄마 아빠는 모두들 인정해주는 좋은 간부들이고 지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멍청하겠습니까? 저더러 양심을 어기고 헛소리하고 서명하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나중에 서기는 다정한 어투로 그만두자고 하면서 아마 몇 년이 지나면 네 말이 맞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으로 돌아갈 때 학생들은 나에게 가만히 엄지손가락을 내보내며 탄복하는 시선으로 나를 주시했다. 저녁에 나는 이불 속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저로서는 넘기 어려운 하나의 관을 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름도 안 되는 교육을 받고 11곳 정규대학의 합격증을 취득

2004년 12월 사존의 보호와 배치 하에 친구는 나를 태원에 데리고 가서 예술에 관한 트레이닝을 받게 했다. 주 목적은 대학에 순조롭게 입학하고 현지를 벗어나 박해를 감소하기 위함이었다. 예전에 미술에 대해 기초가 없어 등록할 때 선생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주 총명하고 문화과목도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미술의 기초가 없으니 대학에 들어가기 힘들고 돈을 낭비할 수 있다.” 나는 초상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10일이 안 되어 정확히 말해서 7일간의 시간에 각 대학이 산서에서 모집하는 예술분야 모집시험에 응시했다. 그 당시에는 아주 단순했지만 나를 주재하는 것은 법이고 사부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기제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는 것을 아주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아주 고달팠다. 낯선 학생들도 나를 불가사의라고 여겼다. 나는 형 누나(대법제자)들이 준 생활비에서 남은 돈으로 등록을 마쳤다. 첫 시험에는 성도이공대학의 시험을 보았는데 떨리는 손은 나도 하여금 시험에 대한 용기를 잃게 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뒤에서 나를 보호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결정하시고 나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르면 되므로 성공할 수밖에 없으니 사람이 나를 어찌하겠는가고 생각했다.

구도, 형체비례, 색채 면에서 나 자신도 어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시험 감독선생님께서는 기초가 약하지만 화풍이 특별하여 아주 발전성이 있다고 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린 것이 좋지는 않지만 대법제자의 손에서 나왔으니 공이 있으며 좋은 사람이 보면 편안해 질 것이다! 일부 시험 과목의 명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어 오늘 밤에 학생들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다음 날 아침이 채 밝기 전에 화판을 들고 길을 물어서 시험장에 들어가 시험을 보았다. 바로 이렇게 연속 16군데 대학의 시험을 보았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나는 11군데 정규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같은 반에서 가장 먼저 합격통지서를 받은 사람은 나였고 가장 많은 합격 통지서를 받은 사람 역시 나였다. 만약 정상적인 이치로 본다면 누가 이 사실로 믿겠는가!

나는 남으로 가는 “전용열차”를 탔다

태원에서 예술과목시험을 볼 때 친척들에게 연락을 제때에 하지 못했다. 2004년12월 15일 저녁에 나는 통지서를 받았는데 다음날 오전에 반드시 학교에 와서 시험등록 자료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맙소사, 나는 어떻게 가야 하나? 열차가 없는데 아예 기차역에 갔다. 다른 노선으로 가는 것이나 그 지역을 지나가는 자동차, 화물차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한 가닥 희망을 지니고. 나는 책가방을 메고 기차역에 갔다. 그 때는 이미 밤 10시였고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무척 혼잡했다. 나는 차가 없음을 알면서도 문의처에 한번 물었다.”아주머니, 남쪽으로 가는 차가 없죠?” 그 아주머니는 아주 기뻐하며 답했다. “이 어린 친구는 정말 행운이네. 오늘 기차 하나가 그 쪽으로 시범 운행하고 있단다. 대동에서 항주로 향하니 태원 도착은 새벽 3시니까 너한테 딱이야.” 다음 날 아침 나는 학교에 제때에 도착했다. 오후에 친척(속인)은 일보와 석보 한부를 가져와서는 나에게 흔들어 보이며 “봐! 특종이다. 대동에서 항주로 가는 열차 시범 운행하여 처음으로 본 역을 경과… 너를 위한 전용열차였지?”

그때 나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었다. 눈물이 샘솟듯 흘렀다. 자비하신 사부님이시야 말로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고 매 한 명의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계시며 세인을 구도하시고 만물 창생을 보호해주신다. 극의 무대는 중원이고 대법제자는 주역이며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틈 하나 없이 배치해 주셨다. 친척은 나를 달랬다. “집이 생각나니? 엄마 아빠가 그립니? 돈이 떨어졌니?”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것은, 사부님의 나에 대한 빈틈없는 보호에 나는 보답할 길이 없음을. 사부님께서는 매개 대법제자의 좋은 아버지이시고 매개 중생의 좋은 아버지이시며 만물 창생의 주이시다. 홍대한 자비는 인류의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본성이 미혹된 이 중생들을 마주하고 나는 어디에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명백히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정말로 괴로웠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한 번,나는 하얀 모자를 쓰고 농촌 외할머니 집에 가서 엄마의 근황과 소식을 알아보았지만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차 도급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모든 티켓가격이 올랐다. 교통비가 워낙 빠듯하여 돌아갈 수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남은 돈을 한장 한장 세어보았다. 현성의 기차역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 마침 어머니의 중학교 선생님의 자녀를 만났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나에게 물었다. “너는 그 언니네 아이가 아닌가? 왜 이 곳에 왔니?” 나는 비록 그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머니께서 늘 그를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주동적으로 나에게 돌아가는 티켓을 사주고 또 50위안을 한사코 주었다. 차가 떠날 때까지 나와 함께 있으면서 “너의 어머니는 좋은 분이시니 걱정하지 말아, 아무 일 없을 거야, 아주 빨리 돌아올 거야.”라고 위로도 해주었다. 차가 떠나자 나는 손을 흔들었다. “삼촌 고마워요!”

2008년 음력 1월 8일 태원 동창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학교에서 시험을 치니 이미 나를 대신해서 등록하고 수험증을 받았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산동 친척집에 있었고 오후 6시에 제남 동부역에 도착했다. 급급히 티켓을 사려고 하니 역무원은 태원으로 가는 티켓이 없고 예약하지 않았다면 일주일 내에는 갈 생각을 말라고 했다. 나는 멍해졌다. 산동 제남 동부역에는 태원으로 가는 차도 있는데 오늘 차는 만석이 되어 이미 가버렸다. 날은 어두워지고 나는 급한 나머지 발만 동동 구르다 매표소에서 나왔다. 이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동생, 어디 가려구요?” 산동에 친척집에 왔다고 시험시간을 놓치게 되어 태원으로 급히 가야 하는데 티켓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티켓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아마 티켓 장사하는 장사군일 것이고 티켓은 비싸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예요?” 그녀는 차가 곧 들어오니 돈을 많이 요구하지 않을 것이니 정상 가격으로 주고 빨리 폴랫폼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나는 달려가면서 외쳤다. 차에서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창 밖을 바라보며 몰래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정말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이튿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나는 화판을 메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마침 그 해에 나는 이 중점대학에 입학했다.

대법제자들은 세인을 깨우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사악의 경제적 박해를 받고 있다. “경제상에서 무너뜨린다”는 사악의 정책은 대법제자와 가족의 생활에 모두 어려움을 만들었다. 그들은 근검 절약하여 모은 돈으로 자료를 만들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입학 통지서가 오자 등록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어찌 대법제자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는가! 역시 대법제자들은 주동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큰 형, 큰 언니들은 나와 함께 방법을 대어 돈을 모았지만 2천 위안이 모자랐다. 나는 조금 조급해졌다. 또 누구를 찾아야 하나? 저녁에 걱정하고 있는데 마침 왕씨 아저씨가 문에 들어서면서 돈 2천 위안을 책상에 내놓으셨다. 이러한 일들은 정말로 많고도 많아 헤아릴 수 없다. 한마디로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항상 곁에 있으시고 나를 보호해 주셨다!

사람들 속에서 보아도 가장 좋은 것이다

2000년 연초에 사악의 무리들이 아버지를 납치할 때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나는 네 아이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하고 밥을 굶게 하겠는데 또 연마하겠는가? 9년이 지나서 나는 이미 성장해서 성숙하였고 대법은 나를 연마해주었다. 중생구도의 신의 길에서 휘황찬란하게 연마해주었다. 대학에서 나는 “3가지 일”을 견지하고 일사일념을 모두 법의 기초에 놓았다. 환경을 이용하여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했다. 학생들에게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 소프트웨어를 가르쳐주어 진상을 알게 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했다. 학업에서도 아주 이상적인 성적을 거두었는데 속인이 희망하는 좋은 성적이었다. 나의 숙제 작품은 모두 일류에 속하고 신의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으며 신의 정통전통문화를 선전하고 대법을 실증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일체를 주시고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도록 보살펴주셨다. 현재 나는 속인의 일자리를 찾았고 어머니, 아버지도 잇달아 집으로 돌아왔다. 정법노정의 추진으로 사악은 끝장나고 환경은 좋게 변했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꼭 기억할 것이다. “견정(堅定)하게 최후의 길을 잘 걷도록 하라. 법공부를 잘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한 기초 위에, 정념은 자연히 강해지기 마련이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필히 잘 할 것이다.”(신경문>)

문장발표:2009년 06월18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6/18/20295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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