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9년 6월 15일】
사부님께서는 2009년 5월 17일 캐나다 법회에 보내는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악이 끝장났고, 환경이 변하였다고 해서 더욱 자신의 수련을 느슨히 하지 마라.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 중에서 당신들의 위덕과 휘황함을 만들고 이루도록 (鑄就) 하라!”
이 단락 경문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면서 사존의 정법형세의 신속하고 맹렬한 발전과 정법이 개창해 낸 새로운 형세의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가 상응하여 제고된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조사정법 중에 대법에 대한 세인의 태도 변화를 직접 감수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인의 이런 각성에 기쁨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 가지 일을 더 잘할 것을 독촉하고 있다.
지금, 세인들 배후의 사악한 요소는 적고 또 적어졌다. 어떤 사람은 아마 당문화의 여독(餘毒)이 아주 조금 남아 여전히 그들이 구원받는 것을 방해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에게 3퇴를 권할 때 그(그녀)는 아마 말할 것이다. “난 아무것도 믿지 않아. 당신이 말하는 신앙범주에 속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나 잘 믿으라구!” 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한테 가서나 말하시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나는 날마다 일을 해서 돈벌고 밥 먹는 것만 알뿐 다른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진상을 알려 줄때 태도가 예전처럼 나쁘지는 않지만 도리어 웃으면서 말한다. “나는 당신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안다.” 그러면서 서둘러 자리를 뜬다. 정황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여전히 들으려 하지 않으며, 그들이 구원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체험은, 어떤 때는 단지 우리가 겨냥성 있게 그(그녀)에게 한마디 말을 더 해준다면 아마 그의 껍질을 타파해 그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은 불고기 가게 주인에게 진상을 알려 주고 3퇴를 권할 때,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무신론자에요. 당신이 말한 것은 역시 일종의 신앙인데 나하고는 관계가 별로 없어요. 나는 날마다 고기를 더 많이 팔아 돈을 많이 버는 것만 알뿐이에요.”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동생, 동생은 지금 무신론이라고 말하면서 내 말을 믿지 않지만 한 발 더 나가 깊이 생각해 봐요. 일이란 동생이 믿고 믿지 않는 것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정말 재난이 온다면 동생은 어떻게 할래요? 나는 진심으로 동생을 위해 말해 주는 것인데 그렇지 않아요?” 이때 그녀가 말했다. “당신 말도 맞아요.” 처음 대화를 시작할 때 그녀가 입단했다고 말했으므로 나는 즉시 이름을 하나 생각해서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모모모란 이름으로 동생을 탈단 시켜 줄께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또 한번은 품팔이를 하는 형제를 만났는데 한사코 탈대하려 하지 않으면서 이른바 자신의 이유를 나에게 반복적으로 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이것은, 신앙에 속하는 것으로 나는 반대하지 않으며 중립을 지키겠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의 태도가 만일 하나의 조직이라면 그래도 될 수 있고, 반대하지 않고 중립을 지킬 수 있겠지만 한 개인이라면 당신이 한 말은 틀리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 앞에서 당신은 중립을 지킬 수 없으며 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의 선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탈대하지 않는다면 그럼 돌아가서 사악과 한데 묶여 도태될 것이고, 만약 탈퇴한다면 신은 당신을 보호하여 재난을 면하게 할 것이며 장차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 나는 자네를 위해 그러는 것이니 기회를 놓쳐 평생 후회를 남기지 말게!” 그는 끝내 3퇴를 했고 아울러 나의 호의에 감사했다.
천금과도 같고 만금과도 같은 이 시각에, 우리 매 하나의 대법제자들은 사존께서 개척해 주신 사람을 구하는 이렇게 훌륭한 환경에서, 우선 자신의 각종 좋지 못한 마음, 이를테면 두려운 마음, 어려운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속인에게 듣기 싫은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등을 버려야 한다. 이런 마음을 모두 버려야만 진정으로 신의 상태로 일을 할 수 있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한마디 말을 더 하고 하나의 도리를 더 말하면 한 사람을 더 구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에 부끄럽지 않고 대법제자의 칭호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9년 6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6/15/2027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