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남의 어느 법공부팀
【명혜망 2009년 6월 4일】 안으로 찾음은 마치 우리가 밥을 먹고 잠 자며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나는 비교적 늦게 법을 얻은 제자이다. 법을 얻자마자 박해가 시작되어 개인수련 과정이 없었다. 법을 얻은 후 나는 대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의식했으며 나는 자신이 너무 늦게 법을 얻은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나는 자신과 동수들의 거리가 이미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으며 속으로 너무 조급하여 한 방면으로 마치 굶주리고 목이 마른 것처럼 법 공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단체 연공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두 달 후 ‘7·20’이 막 시작되어 동수들은 하루 밤사이 모두 세뇌반에 갇혔다. 나는 막 새로운 생활환경에 들어왔기에 나의 상황을 아는 사람이 없어기 때문에 다행히 화를 면했다.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막막하여 사부님의 사진을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사부님의 가호 하에 나는 오늘까지 걸어왔다.
나는 내가 오늘 쓴 이 제목이 너무나 크고 그것은 나의 능력과 수준을 훨씬 초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제재를 선택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한번 단체 법공부할 때 우리가 다시 “안으로 찾은” 체험을 교류했는데 C수련생은 모 수련생이(96년 법을 얻은 노제자) 마난 중에 처해있는데 그는 안으로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한 층차에서 너무나 긴 시간을 지체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게 하며 말하기만 하면 화를 낸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그 마난에서 곧바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 95년도에 법을 얻은 한 수련생이 있는데 우리는 서로 잘 알진 못한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나는 모모에게서 당신의 말을 들었는데 당신은 나중에 들어왔지만 앞사람을 뛰어넘었다고 하더라.”라고 하면서 나에 대해 말했다. (이 동수 역시 한 가지 집착에서 나오지 못해 지체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모두 사부님의 정법노정에 따라 가며 절대 층차 거리가 떨어지지 말고 원용불파한 정체를 형성하여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조금이라도 더 기뻐하시고 안심하며 조금이라도 라도 적게 힘들게 하시게 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아래에 나는 우리 법 공부팀에서 “안으로 찾음”에 대한 법리의 인식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 법공부팀에는 네 사람이 있는데 나이가 제일 많은 분이 75세이고 제일 적은 사람은 40여 세이다. 우리가 “안으로 찾음”에 대한 법리의 인식 과정은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무조건 안으로 찾거나, 찾으려 하지만 찾지 못하거나, 어떻게 찾는지 모른다.
나는 무조건 안으로 찾는 유형에 속한다. 나는 법을 뒤늦게 얻었기 때문에 개인의 수련과정이 없었으며 동수들과 떨어진 거리를 보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법과 동수들 앞에서 나를 낮추고 또 낮추면서 수련의 길에서 감히 조금이라도 소홀하지 않았다. 때문에 사부님께서 무엇이라 하면 나는 무엇을 하고 조금이라도 감히 벗어나지 않았다. 매번 뼈가 사무치게 마음을 도려낼 때마다 나는 법을 외우고 사부님을 굳게 믿고 법을 굳게 믿었으며 “다른 사람이 틀렸다면(인간의 표면현상 혹은 구세력이 연화한 가상이다) 백이면 백 자신을 찾자!” 이렇게 눈물을 머금고 인내하는 과정을 거쳐 최후에 사부님께서는 수많은 흑색 물질을 없애주셨다. (매번 없애버릴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늘 내게 보도록 하셨다.)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하는” C수련생은 남편(동수)이 정진하지 않는 것과 아이가 공부에서 떨어지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여러 번 나를 찾아와 하소연했다. 매번 나에게 하소연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안으로 찾으세요. 안으로 찾으세요. 무조건 안으로 찾으세요.”라고 말하거나 혹은 “대법제자의 가정에는 절대 이런 일이 나타날 수 없어요. 이런 일이 나타난 것은 분명 자신에게 문제가 있으니 법공부하고 법공부를 하여 무조건 안으로 찾으세요.”라고 알려 주었다.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하자 C수련생은 어이없어 하면서 “나는 정말 안으로 찾고 싶어요. 하지만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하겠어요.” 라고 말했다.
“어떻게 찾는지 모르겠다”는 D수련생은 ‘현모양처’라 할 수 있다. 남편을 돕고 자식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손자도 교육하고 또 “세 가지일” 도 잘했으며 매우 평온하게 큰 곡절이 없었다. 정말 안팎으로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원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가정 모순은 끊임없이 심해졌고 심지어 사부인마저 그를 비난했다. 그는 나에게 울면서 하소연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역시 간단하게 “안으로 찾고 안으로 찾으며 무조건 안으로 찾으세요.”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대법제자는 반드시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한 번은 D수련생이 집에서 아들 며느리의 무시를 받자 나에게 하소연 했다. 나는 그래도 그녀에게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너무나 괴로워하면서 “내가 이렇게 해도 당신이 나더러 안으로 찾으라니 찾고 찾아도 나는 틀린 것이 없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이렇게 말하니 나는 수긍할 수 없어요! 나는 어쨌든 틀린 것이 없단 말이에요!”하고 울면서 말했다.
나는 갑자기 놀랐다. “사부님 저는 안으로 찾아야합니다! 대법제자 신변에는 우연한 일이 없습니다. 이는 분명 내게 제고할 요소가 안에 있습니다! 나는 반드시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나는 어찌하여 늘 다른 사람더러 안으로 찾으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은 안으로 찾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는데 나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부끄럽다! 부끄럽다!”
내 마음에 이런 염두가 스칠 때 “안으로 찾으라는 것은 구체적인 착오를 대한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한 법리에 따라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넣어주신 체내의 수 천 만개도 더되는 기지에 따르며 법리, 기지를 어기지 말라! 우리 이 문은 바로 이런 수련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에 부딪치면 꼭 안으로 찾아야 하며 바로 우리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졸리면 잠을 자는 것처럼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호흡이 필요한 것처럼 자연스러워야한다.” 라고 하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때렸다.
이 말을 했을 때 나와 세 수련생은 모두 격동했으며 우리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우리를 점화 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드디어 각자의 오류가 있는 구역에서 벗어났다. 법리에서 승화하고 승화된 후의 기쁨과 홀가분함은 정말 언어로 형용할 수 없었다.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린다.”더니 정말 그 심정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웃었다. 매 사람의 눈에는 행복의 눈물로 충만되었다. 우리는 한참동안 말하지 않고 각자 속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렸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 ”(『홍음』「착실하게 수련」)
우리는 배우는 것과 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깊이 알았다. 우리는 이 문장을 써냈으나 아직도 진정 안으로 찾는데 도달하지 못했다.—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호흡이 필요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런 수준으로 우리는 꼭 있는 힘을 다해 빨리 도달하겠다.
이상은 우리 몇 사람의 개인 체험이다. 만약 틀리게 말한 곳이 있으면 여러분이 법을 스승으로 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6월 4일
문장분류: 수련 마당
문장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9/6/4/20214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