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현상고시”와 더불어 요성 동수와 토론
글/요성 대법제자 정행
[명혜망 2009년 5월 22일] 몇 달 동안 요성시 사악의 610등, 사악한 당의 부서들은 중생을 독해하고 대법제자들이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교란하려고 문건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성시 각 주택에다 주민마다 진상자료 혹은 디스크를 받치면 현찰로 장려하고, 자료를 배포하는 대법제자와 자료팀을 신고하면 현금 얼마를 장려한다고 고시했다. 금전을 이용해 중생더러 대법에 죄를 짓게 유혹하고 겨우 생명을 부지하면서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는 것을 교란하는 동시에 미혹된 중생을 훼멸하려 시도했다.
사악의 박해가 십년 가까워 오고 있다. 다년간 박해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실패가 결정된 사악이 이미 죽음에 임박해 대법제자들이 날마다 성숙되는 오늘 날 이런 반상현상이 나타나는가? 여기에는 사악이 최후로 발악하는 회광반사가 있는 것이며 우리 매개 요성 동수들의 심성이 아직도 상응한 제고를 얻지 못했다고 깨우치는 게 아닐까? 사존님께서는 “나는 여전에 말했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 사회에서 오늘 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각 지역 설법2》〈2002년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고 말씀하셨다.
아래 필자가 요해한 요성 동수들 상황에 대한 개인의 조그마한 인식을 말하려 한다.
1, 의뢰심이 중하다. 자료점이 아직 곳곳에 많지 않아 중요한 대량의 일을 소수의 자료점 동수들이 한다. 많은 동수들은 집에서 소위 “법 공부”만 하면서 주간과 진상자료가 필요할 때 자료점에 손을 내밀어 요구하고, 어떤 때에는 조금만 늦으면 늘 불만스러워하면서 자신이 자금을 지불했으니 당연히 자료를 가져야한다고 여긴다. 근본적으로 자료점 동수들의 간난신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동수의 가정조건은 각 방면에서 아주 느슨해 협조하는 수련생이 여러 번 말을 했지만 자신이 담당해야 할 책임을 앞에 놓고도 여러 가지 구실로 책임을 회피한다.
두려운 마음이 중하다. 법 공부팀은 많으나 진정으로 나와서 세 가지 일을 하는 수련생은 적다. 지금 우리 유성에는 법공부팀이 적지 않다. 그러나 많은 동수들은 법 공부를 하기위한 공부만 하면서 공부를 비기고 수련을 비겨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다. 법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대법제자의 정념을 수련하여 대법제자의 위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이다. 집에서 법공부하기 위한 공부만 하면 공부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어떠한가? “당신들은 당신들의 두려운 마음, 안일을 구하는 마음, 당신의 각종 소원에 부합되어야만 비로소 대법제자의 수련의 길이라고 여기는가? ”(《역시 방할하노라》)사부님의 방할은 제자로서 우리가 응당 시시각각 마음에 새겨야 한지 “꽈배기”로 수련되어 빈 것만 남는 유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주간에 기재된 동수의 한 편의 문장이 기억난다. 현지의 사악들이 박해를 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아는 수련생을 찾았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동수들은 컴퓨터를 알건 모르건 모두 다 컴퓨터를 사서 인터넷 선을 안장하고 인터넷을 하여 단번에 사악의 안배를 타파해 사악의 음모는 수포가 되었다. 수련생은 한 부의 대법이다. 동수들의 정념정행을 보고 우리는 응당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들의 의뢰와 사심으로 자료점의 동수들은 우리가 응당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으며 우리의 두려운 마음과 안위를 탐내는 마음 때문에 자료점과 자료를 배포하는 동수들이 받지 말아야 할 압력을 받고 있다. 이것은 “현상고시”가 요성시에 부쳐진 근본 원인이다.
2, 시 지역 내에 진상자료가 포화 상태이지만 향진은 공백이나 마찬가지다. 박해한 이래 자료점에서 한 가지 진상자료 대부분 중복해서 시 구역에 배포하였으며 요성시 구역 내에 배포하고 또 배포하였는데 몇 번이나 반복 되었는지 모른다. 동수들이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고, 또 하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이 진상자료가 얼마나 힘들게 그들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으며, 유한한 대법자원을 진귀하게 여겼는가? 우리 자신이 진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속인이 어찌 진귀하게 여기겠는가? 진상을 알지 못하는 많은 세인들이 “전단지를 물 뿌리듯 뿌리니 그 돈이 얼마냐!” “파룬궁은 돈도 많다!”고 비웃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는 우리 자신이 만든 게 아닌가?
서로 비교해보면 유성시내 각 향진은 거의 공백이다. 몇 년래 그 곳의 중생은 진상자료를 아주 적게 접하였다. 그곳의 얼마나 많은 중생이 구도되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우리의 잘못된 마음으로 제자리걸음을 하여 그들이 오늘까지도 대법의 복음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사부님께서 보시면 얼마나 조급해 하시고 사악이 보면 얼마나 좋아 하겠는가?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으면 바로 사악이 틈을 탈 수 있는 것이다.
“당시 구세력이 사악에게 책을 태우게 할 때 구세력이 무슨 구실을 댔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왜 책을 태우는가? 그 때《전법륜》책이 중국대륙에 너무 많아 많은 학원들이 존경하지 않았고 속인들은 더욱 불경하였다. 신은 참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우주를 만드는 천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구세력은 책이 모자라도록 하여 사람들더러 법을 찾고 법을 존경하고 이 법이 귀중함을 알게 해야 한다. 당시 그들은 이런 구실로 이 일을 한 것이다.” (《2003년 정월보름 설법》) 어쩌면 우리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아 유한한 자료 자원을 낭비해서 응당 해야 할 일을 줄곧 하지 못했고, 진상자료가 일으켜야 할 작용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사악에게 구실을 주어 그들이 사악을 시켜 문건을 제정하여 돈으로 보귀한 자료를 “회수”하려는 것이다.
“현상고시”는 우리 요성 대법제자 정체의 부족함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다시 보면 사악의 교란에 직면해 우리가 오직 안을 향해 찾는다면 또한 제고 하는 좋은 기회이다. 세상의 일체 모두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우리의 대법 실증을 위한 것이다.
문장 발표: 2009년 5월 22일
문장 분류: 수련 마당 문장 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9/5/22/20142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