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5월 6일】 진상을 알리는 과정은 바로 우리 매 대법제자가 부단히 사람의 마음을 없애는 과정이다. 진상을 알리는 각종 심태로부터 우리의 부족한 곳을 찾아내고 사람의 마음을 버려야만 비로소 진상을 똑똑히 알릴 수 있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일부 동수들이 속인의 사상이 어떻게 변이 되었다고 탓하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때 그들은 어떠어떠한 각종 변이된 사상질문과 쟁투를 한다는 등의 말을 늘 듣곤 한다. 여기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이 체험하고 깨달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속인은 후천의 각종 변이된 관념에 점차 물들고 어려서부터 사악한 당의 무신론과 거짓, 사악, 투쟁을 주입당했기 때문에 그들은 잘 살고 향락을 추구하며 개인의 명예와 이익, 정을 위해 쟁투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 대법을 수련하며 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친히 법을 전해 구도한 대법제자이므로 속인과의 거리는 비할 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 자신의 명백한 법리로 온 몸이 업력으로 가득한 속인더러 단번에 우리와 같게 되라고 강조하고 요구한다고 하여 단번에 우리와 같아질 수 있겠는가?
진상을 알릴 때 우리는 기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는 자비로 악당의 거짓에 기만당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지 중생과 그 무엇을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속인이 일시적으로 알지 못하고 우리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한다고 하여 그들을 원망할 수는 없다. 그들이야말로 위험에 직면한 중생이다. 우리는 자비로 그들을 구도할 의무만 있을 뿐 그들에 대해 원망하거나 골치 아파하는 심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상을 잘 알리지 못했을 때 우리는 결코 중생을 원망하지 말아야 하며 응당 자신의 부족을 찾아야 하며 자신에게 아직도 어떤 사람마음이 존재하고 자신의 수련에서 어디에 빈틈이 생겼는지 보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2007년 『호주 수련생들에 대한 설법』을 하실 때 일찍이 우리와 속인에게 모순이 나타나면 그것은 곧 대법제자의 잘못이다고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가 진상을 잘 알리지 못 했고 속인더러 진상을 명백히 알게 하지 못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부족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 어떤 수련생은 ‘9평’, ‘해체당문화’를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으며 또 어떤 수련생은 대법의 각종 진상자료와 소책자를 매우 적게 본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어찌 구체적인 설득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자신마저 악당의 많은 부패한 행위와 추악한 소식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전혀 말할 수 없으며 더욱이 구체적인 예를 얼마 들지도 못한다.
그러헤 되면 우리가 한 말이 매우 공허하고 들뜨게 되는데 속인들이 어찌 우리를 믿고 따르겠는가? 속인 또한 “사실을 놓고 이치를 따진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리어 속인이 신복할 수 있는 사실과 이론을 내놓지 못하면서 어찌 세인을 탓할 수 있겠는가? 어떤 수련생은 탈퇴를 권할 때 다만 “당신은 절대 악당조직에서 탈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재난이 닥칠 때 죽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마치 속인을 놀라게 하는 것 같을 뿐 무엇 때문에 “삼퇴”를 해야 하는지 명백하게 말하지 못했다.
다른 어떤 농촌 대법제자는 자신은 작은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할 때 더러운 글자를 말하고 다른 사람이 탈퇴하지 않으면 화가 나서 말투마저 선하지 않다. 이렇게 하면 더욱 상대방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릴 수 없으며 진심으로 탈퇴하게 할 수 없다. 또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는 동시에 매우 강렬한 쟁투심, 과시심, 자신을 강조하고 수량을 추구하며 임무를 완성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리하여 속인이 반문하거나 악당의 많은 왜곡된 이론을 말하면 불쾌해서 얼굴을 찌푸린다. 심지어 그들과 쟁론하거나 속인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며 더욱이 속인을 업신여긴다.
어떤 사람은 청산유수처럼 “당신이 보라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과시하며 속인의 접수 능력과 듣는지 여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한다. 이는 무형 중에서 속인의 불만과 반감을 갖게 만든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과시하는 것이며 이때 당신이 무엇을 말했는지 그는 아예 듣지도 않는다.
이런 예를 드는 것은 우리 동수들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가 오직 반드시 노력하여 자신을 잘 수련하고 법 공부를 많이 하며 자신의 집착심을 많이 버려야만 비로소 진상을 더욱 잘 알릴 수 있고 진정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고 본다.
대법 제자는 정체이다. 보기에는 우리 개인이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매 대법제자 정체가 하고 있다.(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얼마나 탈퇴시켰다고 하면서 잠재의식 중에 득의양양하며 스스로 즐거워하는 과시심이 있다. 사실 당신이 말하기 전에 아마 많은 대법 제자들이 길을 개척했을 것이다) 보기에는 우리가 속인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 같으나 실질은 사부님께서 일체를 하고 계시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지(加持)하신다. 오직 우리의 기점이 옳고 생각이 올바르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꼭 우리를 가지하실 것이며 우리에게 더욱 큰 지혜를 줄 것이다.
우리는 시련 속에서 이미 십년의 정법 노정을 걸어왔다. 최후 정법의 길을 어떻게 바르게 걸을 것인가? 어떻게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응당 뚜렷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속인을 원망할 수 없으며 오직 속인을 더욱 많이 더욱 잘 구도하는 것만 있어야 한다! 매 대법제자는 응당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어떤 부족점이 있고 어떤 사람마음이 있는지 우리가 응당 없애야 할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 이것은 매 대법 제자가 현재 사색해야 할 과제이다.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속세에 내려 오기 전의 서약(誓约)이며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대법에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며 사부님께 무엇을 해드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체는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과정에서 각종 사람마음을 부단히 없애 버리고 중생에게 자비롭고 서약을 지켜야만 대법제자의 책임을 다 하여 중생 구도를 더 잘 더 많이 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09년 5월 6일
문장분류: 수련 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5/6/20028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