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감숙 대법제자 대도(大度)
【명혜망 2009년 4월 25일】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우리가 사존을 뵙지 못하는 상황 하에서 사악의 그런 미친 듯한 박해 속에서 걸어나올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법의 위력에 속한 것이다. 세간을 보면 속인들은 재난 앞에서 일격도 감당하지 못하고 병업 앞에서서 어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성(人性)을 멸절하는 사악의 악행에 직면했음에도 수련인의 성숙을 만들어냈고 낡은 신을 뛰어 넘는 위덕과 미래를 성취했다.
이 일체는 초인적인 힘이 없었다면 어찌 나타날 수 있었겠는가?! 불법의 강대한 위력이 없었다면 한 작디 작은 사람이 무슨 덕이 있어 오늘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아직까지도 어떤 동수들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모르며 매 차례 제고는 모두 마난(魔难)이 올 때에야 비로소 마난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마땅히 수련해야 할 요소가 안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련은 늘 피동적인 상태에 처하게 되는데 모두들 법공부의 중요성을 알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써서 공부했는가?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정황하에서 다른 일을 좀 내려놓고 법공부를 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예를 들면 법공부가 가급적 교란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전화기를 ‘자동응답’으로 설정하는 것이다.”(『각 지역 설법 4』「2003년 애틀란타 법회 설법」)
법공부 할 때는 곧 법공부를 해야 한다. 외부 교란에 대해 사부님께서 이처럼 엄숙하게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법공부 할 때는 마음을 조용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맞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진정한 자신을 구도하고 계시며 우리는 곧 명명백백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있다. 만약 법공부 할 때 사상이 집중되지 않는다면 초상적인 법리(法理)를 우리 사람 일면에 보여줄 수 있겠는가?
나 자신을 말하더라도 십여 년 동안의 수련에서 법공부가 중요하다고 느껴 지금도 책을 읽고 있기에 수련생을 접촉할 시간이 적으며 밖에서 동수들을 만날 기회도 적다. 접촉하는 것은 오직 법뿐이고 정법 중에서 매번 어떤 교란과 마난(魔难)이 나타날지라도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에서 찾았을 뿐만 아니라 책을 보며 점차 법에 동화되었다. 그리하여 수년간 어떠한 고비도 모두 넘을 수 있었으며 그 무엇도 법에 대한 올바른 나의 믿음을 동요시킬 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어떠어떠하게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부님의 말씀대로 할 때에야 비로소 법의 위력을 느끼고 사부님의 매 한마디가 지닌 힘을 느끼며 오직 우리가 사부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잘하지 못할 일이 없다. 사부님의 매 한마디 말씀은 모두 대각(大觉)의 법을 만들어 내며 우리가 단호히 믿는 마음을 음직이지 않을 때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한 수련생은”나는 법에 대해 매우 견결히 믿지만 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자 여전히 진정하게 믿은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오직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동화시키고 자신의 일언일행을 점차 귀정하며 또한 법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진정으로 믿는 것이다. 만약 다만 인식상에만 머물러 있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믿음이란 말인가? 만약 말로만 믿고 해내지 못한다면 이 어찌 불법(佛法)의 위력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련은 일이 아니다. 우리가 법공부 할 때 진심으로 정력을 기울려 공부하고 마음을 써서 대도(大道)를 접하는가 아니면 법공부를 위한 공부인가? 발정념을 정의를 수호하고 사악을 청리하며 법을 바로잡기 위해 하는가 아니면 발정념을 위해 발하는가? 진상을 알리는 것이 생명을 자비롭게 여겨 진상을 알리고 그로 하여금 도태될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가 아니면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진상을 하는가?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 명백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이래 우리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것은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용해되었다. 모두들 점차적으로 순서에 따라 일하는 상태에 진입했기 때문에 시간이 길어지면 형식 속에 빠지기 쉽다.
사존께서는 우리의 개인 수련 과정에도 세 가지 일을 하는 것 속에 안배하셨다. 그러므로 매 하나의 일은 모두 간단하지 않으며 우리가 마음을 써서 해야만 신의 위덕을 구비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속인도 대법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다만 복보(福报)만 얻을 뿐이고 우리가 최종 성취하는 것은 과위라고 말씀하셨다. 때문에 우리가 속인과 다른 것은 바로 일하는 기점이 다르기에 자연적으로 배후에서 대응되는 요소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은 끝없는(大法無邊) 것으로, 전적으로 당신의 이 마음에 의해 수련해야 한다고 말한다.”(『전법륜』)
그러므로 잘해야 하며 마음을 다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법의 홍세(洪势)가 인간 세상에 오기 전에 우리는 마음을 써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신성한 일을 잘하고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서약(誓约)을 완성하고 신사신법 해야 한다.
개인의 인식으로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2009년 4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4/25/1995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