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4월 7일】 친구가 북경에서 사업하기에 나는 북경에 거주하는 북경의 일부 동수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그들의 수련 상태에 대해 일부 요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일에서 걸어나오는 이 일을 가지고 북경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먼저 몇 가지 예를 들겠다. 동수 갑(甲)은 노 제자인데 대학을 졸업한 후 북경에서 사업한 지 7,8년 가량 되었다. 처음 몇 년은 아주 정진하여 다른 동수들과 협조하여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다했다. 나중에 봉급이 만원에 이르러 지금의 생활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그에게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나타나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아파트를 사고 회사를 꾸리기 시작했으며, 세 가지 일에 쓰는 시간이 갈수록 적어졌다. 나중에는 끝내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불법 노동교양을 받게 되었다. 노교소에서 돌아온 후 마음으로는 대법을 떠나지 않았지만 정진 의지가 이미 아주 희박해졌고 또 다시 돈벌이와 차를 사는데 바삐 보내면서 세 가지 일을 아주 적게 한다.
동수 을(乙) 역시 노 제자인데 노동교양소에서 박해 받고 돌아온 후 한마음으로 돈벌이에 나서 기업을 꾸리고 차를 사며 가정을 꾸렸다. 한번은 내가 그들과 함께 법공부 할 때, 전화를 받느라 바쁜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법공부에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었고 예전의 정진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동수 병(내 친구)도 99년 이전에 법을 얻은 노 제자로서 예전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 적지 않은 마난을 겪었으나 이 몇 년 동안에는 줄곧 정진하지 못하고 있다. 생활의 압박 때문에 돈 벌이에 바삐 지내다보니 법공부, 연공시간이 매우 적었고 단지 자신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어느 해 집에 돌아가 그녀와 함께 사부님의 『북미순회설법』을 학습할 때 그녀는 울면서 자신이 너무나 많은 것을 빠뜨렸다면서 신심을 잃었다. 이튿날, 그녀와 몇몇 동수들은 농촌에 가서 직접 만나서 자료를 나누어 주고 진상을 알려 주었다. 동수들이 정념정행으로 세인을 구도하는 그 상태를 보면서 촉동이 아주 컸고 북경에 돌아가서 꼭 정진 하겠다고 표시했다. 하지만 얼마 안지나 그녀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나는 또 북경 현지의 몇몇 동수들을 접촉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상태 역시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두려운 마음이 아주 중하여 걸어 나오기가 상당히 어려웠고 최후 이 단락의 시간을 평안히 보내고자 생각했다.
북경은 사악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악한 요소 또한 많아 대법제자에 대한 불법 감시와 박해 또한 비교적 엄중하기 때문에 대법제자의 법 실증(특히 북경 현지 동수들)과 중생구도에 비교적 큰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이렇듯 사악한 환경에서도 여전히 매우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데 아주 잘하고 있다.
이런 수련생이 있었다. 박해가 발생한 후 그는 홀로 북경에 갔다. 2천여 원의 봉급으로 일가족 세 식구가 살아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아껴 쓰고 모은 돈으로 진상자료를 만들어 스스로 나가 배포했다. 나는 그의 집에 며칠 머문 적이 있는데 매일 저녁 줄곧 12시까지 법공부를 했고, 정각이 되면 곧 발정념을 했으며 새벽 3시 50분이면 일어나 연공을 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북경과 같은 이런 사악한 환경에서는 오직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며, 시시각각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해야만 비로소 걸어나올 수 있다.”
모두들 법공부와 교류 가운데 모두 정진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안일을 바라는 것 때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박해당할까 두려워하고, 고생할까 두려워하면서 안일과 향수를 탐한다. 속인이란 이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생활의 압력과 이익과 욕망의 유혹에 직면해 조금만 정진하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내려가게 될 뿐더러 스스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한 수련생은 자신이 받은 깊은 감명을 이렇게 형용했다. “북경은 이익과 욕망이 충만된 함정과도 같아서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딛기만 하면 스스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상술한 몇 동수의 예는 이 점을 아주 설명해 주고 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안일을 구하는 것에 대해 일찍이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경문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만약 당신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정법제자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현재의 마난(魔難) 속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없으며 인간세상의 안일(安逸)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그릇되게 깨달을 것이다. 사부는 떨어져 내려간 그러한 사람들을 줄곧 아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수는 이런 마음에 이끌려 망가진 것이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나 다시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복습하니 우리가 이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수많은 침통한 교훈을 남기게 되었다.
사실 관념상에서 말한다면 안일을 추구하는 배후에는 가장 큰 집착이 숨어 있는바, 그것은 바로 ‘위사위아’한 낡은 관념이다. 그것은 낡은 우주의 매 하나의 생명의 본질이다(우리 대법제자도 그 속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닦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이 낡은 우주의 생명의 본질 ㅡ‘위사위아’를 벗어 버리고, 신우주의 생명ㅡ ‘무사무아’의 표준에 도달하려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수련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신의 생각으로 전화되는 과정이다. 우리의 ‘위사위아’한 낡은 관념이 ‘무사무아’한 새로운 관념으로 대체될 때, 바로 환골탈태한 것이 아니겠는가? 신 우주의 생명이 탄생한 것이 아닌가?
행위상으로부터 말한다면, 관념상의 전환을 제외하고 또 행위상의 돌파가 있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해내야만 비로소 수련이기 때문이다. 안일에서 걸어 나오는 것은 바로 자신을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가운데 놓는 것이다. 나는 북경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사악을 해체하는 면에서 대륙 기타 지역과는 비할 수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본다. 이를테면 우리는 전국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에 있으며, 정보가 활발히 유통되고 보는 것이 많고 견식이 넓으며, 사악의 소굴과 가장 가까워 그것을 해체하기에도 가장 편리하고, 발정념의 위력과 효과도 가장 크고 좋은 곳에 있다.
예전에 한 북경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북경은 대법제자가 몹시 필요하다. 당신이 만약 길에서 걸어가거나 버스를 탔거나 공원, 식당이나 백화점을 돌아다닐 때 근거리에서 사악의 소굴을 향해 발정념 한다면 그 작용은 모두 대단히 큰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날마다 북경을 향해 발정념을 한지 이미 여러 해가 되는데, 북경에 사는 대법제자들은 마땅히 더욱 잘해야 한다. 가령 우리 북경의 모든 대법제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날마다 10번, 8번씩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정념의 장이겠는가? 사악이 능히 창궐할 수 있겠는가? 북경에는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조건이 있어 꼭 모두 나가 직접 만나서 말해줄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사당 중앙 및 북경시 각 부문에 진상편지나 선을 권고하는 편지를 쓸 수 있고, 전자우편, 메시지 같은 것을 발송하거나, 진상자료를 부칠 수도 있고, 전화를 걸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동수들이 모두 사당 부문(혹은 예전에)에서 사업하므로 하기만 하면 더욱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 북경의 대법제자들이 단체 법공부 환경을 될수록 빨리 회복하고,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정체를 형성하여 협조한다면 더 좋아질 것이다. 물론 말하기는 쉽지만 하고자 하면 아주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지역의 정법 수련 환경인들 자기 스스로 개척하지 않은 곳이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 북경 대법제자들이 처한 환경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계신다. 그것은 사존님의 우리에 대한 자비와 보호이다. 물론 북경에는 대륙 기타 지역에서 온 동수들도 있는데 모두 ‘안일’한 침대에 누워 계속하여 속인이 추구하는 안일을 구하면서 주변 동수들이 환경을 바로잡아 올 것을 기다리고, 사부님의 정법이 종료되기만 기다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위덕은 어디에서 오겠는가?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사부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답안을 바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안일한 마음을 갖고 그다지 정진하지 못하는 동수들이 가급적 빨리 안일에서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우리의 위대한 사명을 완수하기 바란다.
예전에 우리 북경 동수들은 조사정법, 중생구도 가운데서 일찍 사람을 탄복케 하는 휘황을 창조한 적이 있다. 조사정법의 최후 시각에 우리는 더욱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글을 써내는 것은 북경 수련생을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다.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4월 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4/7/1985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