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3월 2일】 동수들의진상자료 편집에 대한 건의를 본후 마땅히 자신의 일부 생각을 써서 함께 교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수들은 어떻게 하면 진상으로 더욱 많은 세인을 구도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신들이 인식한 비교적 좋은 건의를 제출하였다. 특히 퇴당전화를 소책자 중 응당 어느 위치에 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동수들은 자비로운 넓은 마음으로 중생을 구도하겠다고 서약한 약속을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이 중생을 구도하려는 마음이 아무리 긴박하여도 일념을 굳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명심하겠다고 하는 이 일념이 아주 관건적이다. 우리들이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좋은 방법을 생각했던지를 막론하고 모두 이 일념으로 가늠할 수 있다. 우리들의 이러한 모든 좋은 방법이 신의 표준에 부합되는지? 우리들이 생각한 이러한 좋은 방법은 어느 기점에 입각한 것인지? 배후에 은폐된 쉽게 깨닫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없지 않는지 하는 것들이다.
진상자료 배포에 대하여 말한다면, 어떤 동수들은 일부 자료는 너무 많이 배포하면 안 된다고 인식하였다. 바로 박해를 폭로하는 방면에서, 예를 들면 “산 사람인 대법제자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한 것”, “중공은 항상 비극을 유지하고 있다”는 등과 같은 자료들이다. 나는, 이러한 자료를 속인들이 보고 두려워하면 그들이 진상을 요해하는 것을 저애하므로 구도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만약 우리들이 참답게 안에서 찾는다면 이러한 생각은 배후에 은폐된 하나의 두려운 마음이 아닌가? 우리들에게 이러한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을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있으며, 이런 것은 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식을 이용한 것이 속인사회에 반사(反射) 되어 나타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의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각지역설법2》〈2002년미국필라델피아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안에서 찾을줄 모르고 또 이러한 방법을 해보고, 저러한 방법으로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한 방법이나 모두 수련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수련하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들의 사람 관념이 전변되었다면, 우리가 처하고 있는 경지 중의 일체는 모두 전변되었을 것인즉 속인중의 일체 문제는 바로 우리의 마음이 조성한 것이 아닌가? 모두 생각해 보시라, 우리가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제작한 진상자료가 사악을 해체하고 세인을 구도함에 있어서 그렇게 강한 위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를? 만약 우리에게 그러한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면 퇴당전화를 소책자 안에 놓는 그 위치도 모두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사람의 마음을 많이 수련해 버려야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서 신기가 나타날 수 있다.
어느 한번 나는 한 친척집에 놀러 갔었다. 돌아오면서 층계에 한 권의 “9평” 책을 배포했다. 그후 친척은 나에게 그의 집 층계의 창턱에 한권의 “9평” 책자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감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는 또 몇 번 진상을 들었고, 국외의 퇴당 조류에 대한 CD도 모두 보았는데도 “9평” 책을 보고 또 놀라 이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는 마땅히 명백히 알아야 한다. 진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한 다른 공간의 두려움이 해체된 사령으로서 우리는 속인사회의 표면 현상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들이 속인이 놀라 하는 그런 모양을 보고 “9평”을 배포하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가장 바른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속인의 이러한 두려움의 표현은 주요하게 아직도 사당이 제멋대로 참혹하게 백성들을 박해하고 있기 때문에, 공포심에 의해 구족(九族)이 연루되어 박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모종의 방면에서 말하면 우리들의 진상이 아직 그들을 깨우쳐주지 못하였다는 것을 설명한다. 진상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존재하므로 사악을 해체하고 세인을 구도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큰 위력이 없는 것이다. 속인들이 감히 진상자료를 보지 못하는 것이 관건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이 마음을 수련하려고 하는지, 사람의 관념을 전변하려고 하는지 하는 것이 관건이다.
다시 한번 현지에서 진상 소책자를 배포하는데 대한 견해를 말한다면 어떤 동수들은 현지의 진상 소책자 배포에 대하여 중시하지 않는다. 사실 당시의 진상 소책자를 배포하는 것 역시 하나의 수련과정이며, 하나의 자신을 내려놓고 정체에 원용하는 과정이다. 어떤 동수들은 소책자를 복사하고 전단지를 복사하지 않으니 일을 덜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동수들은 현지의 소책자가 자기가 생각한 그러한 소책자보다 못하다고 느낀다. 이 원인 그 원인, 아직도 자기의 관념을 첨가하기 때문에 이러한 원인이 생기게 된다. 자신의 그 어떠한 생각도 모두 있어서는 안 된다. 오직 정법 노정이 필요로 한다면 그 어떠한 조건도 없이 가서 해야 하며, 그 어떠한 조건도 말하지 말고 가서 원용해야만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상태가 될 수 있다.
현지의 진상 소책자는, 당지에서 자료를 편집하는 수련생이 명혜망에서 다운받은 템플릿에다 현지의 소식을 첨가한 후 명혜에 보낸다. 명혜 편집하는 동수들이 이것을 다시 정리하여 각 지역에서 자료를 제작하는 동수들에게 보내여 그것을 다운받아 복사한 것이다. 소책자의 진상내용에서 역시 정법 노정중에서의 진행되는 경지를 볼 수있다. 우리가 제작하는 과정 중에서 만약 자신의 관념이 첨가되었다면 정법 노정의 추진에 저애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현지의 진상자료 제작하는 동수들이 자료를 제작하는 과정중에서 반드시 본말(主次)의 부분을 잘 드러내어 반드시 좋은 효과의 작용을 일으키기를 부탁한다.
나의 생각을 피력하였는데 명백하게 말하였는지 모르겠다.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과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주기를 부탁한다.
문장완성 : 2009년 3월 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9/3/2/19619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