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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향해 찾으면서 마음을 닦은 자그마한 체득

글/ 길림 대법제자

[명혜망2009년 2월 18일]안을 향해 찾는 게 제고의 관건이란 것을 사존님께서는 >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법회 설법, 해법, 질문 해답 중에 모두 반복 강조 하셨다. 사존님께서는 98년 >때 바로 말씀 하셨다. “그럼 모순이 생길 경우 각자 나름대로 안을 향하여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으로,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지 막론하고 말이다. 내가 말한 말을 기억하라.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지 막론하고 당신이 모두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07년 사존님은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에서 또 안을 향해 찾을 것을 강조 하셨다. 2007년의 >에 “안을 향하여 찾다”란 제목의 문장이 발표되었는데, 그 수련생은 열린 채 수련하면서 보았는데, “사악이 둘러싼채 박해하려 할 때, 오로지 안을 향해 찾기만 하면 사악은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 굳어져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였다”

나의 10년간 수련 여정을 회고해 보면 사실 비틀비틀 아주 고생스러웠다.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라면 바로 마음을 닦는 면에서 “안을 향해 찾는” 법보를 잘 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래의 것은 자그마한 체득을 이야기 하니 부족한 부분은 삼가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1 , 안을 향해 찾는 습관을 양성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안을 향해 찾을 줄 몰랐다. 그래서 모순이 발생하고 문제가 나타나면 가장 많이는 수련생을 찾아 교류하거나, 문제를 지닌 채 사존님의 유관 설법을 공부해 사물의 표면 현상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 제고가 아주 느렸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안을 향해 찾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진정으로 중시하게 된 것은 2005년 7월이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나는 국안특무의 주의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그래도 나는 세 가지 일을 아주 잘 한다고 여겼으므로 어느 곳에 누락이 생겼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사존님의 >을 학습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진상을 알리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구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할 때의 심태가 그에게 틈 탈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2년 동안의 진상편지를 보내던 계절마다 활동해 왔던 나자신의 내심을 진지하게 회고해 보면, 확실히 문제가 존재하였다. 나는 2003년 하반기부터 진상 편지를 부치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그 때 나는 교외에 있는 동수의 노년 주택에 살고 있었다. 동수의 도움으로 나는 본 시의 기관, 대중원교, 공검법사 등 만 명에 달하는 구체적인 통신록을 수집하여 매 주마다 시내로 가서 50통 씩 배포 하였는데 어떤 일이 닥쳐도 중단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를 2년동안 아주 순조롭게 진상편지를 부치게 되자 서서히 일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때는 한 봉투에 동일한 파출소거나 동일한 직장의 세 사람이 받아 보라고 썼으며, 수련생이 부동한 의견을 제출해도 접수하지 않았다. 활동 면이 커짐에 따라 적지 않은 동수들이 내가 잘 쓴다고 칭찬 하였고, 어떤 사람은 명단을 제공해 주면서 나보고 써 달라고 하였다. 서서히 진상 편지를 쓰는데 집착이 생기면서, 이는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제일 좋은 방식이며, 기타 복도 같은 곳에 진상 자료를 놓는 것은 받아 보는 율이 낮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자만심, 우월감이 자라고 있었고, 동수의 부동한 의견은 들어주지 않았다. 중생에게 편지 쓰는 부본을 명혜 편집부의 통과를 받아야 하는지 여부를 가지고 동수와 얼굴을 붉히며 논쟁도 했다. 2005년에 이르러 대량의 진상 편지가 압수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자 나는 매 한 번의 편지를 독자가 받아 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 개의 피드백점을 건립 하였다. 국안 특무는 바로 원 직장의 연락인이 나에게 전화하는 과정을 도청하여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또 진상 편지의 쪽지에서 내가 있는 직장을 알아내 집과 직장에 전화를 함으로써 내 이름을 알아냈던 것이다. 원 직장의 마음씨 착한 적지않은 분들이 나더러 빨리 숨으라고 하였다. 나는 자신을 반성해 보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과시심과 명리심, 또 자신을 실증하는 사심도 있었음을 보아내 문제의 뿌리를 파내었다. 나는 한 달간 잠시 진상 편지를 보내지 않고, 내가 익숙히 알고 있는 각 대기관, 대학교, 가도, 사법단위의 수발실, 사무실에 편지를 보내고, 주변 농촌에 진상자료를 보내는 것으로 고쳤다. 동시에 발정념의 밀도를 강화 하였다. 나는 국안의 조사와 체포에 영향 받지 않았을 뿐더러 반대로 더 많이 진상을 하면서도 효과는 더 좋았다.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국안 특무의 수색 체포는 스스로 없어 졌다. 이는 나로 하여금 진정한 안전은 “안을 향해 찾아보는 것”이며,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 가지 일을 열심히 잘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였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이렇듯 중요할 진대,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시시로, 일마다 모두 안을 향해 찾을 수 있고, 주동적으로 안을 향해 찾는 좋은 습관을 양성하겠는가? 여러 해 동안 법공부를 해 오면서 나는 심심히 느끼게 되었다. 어느 하나의 법을 완전히 알려면 늘 이 한 법만 지켜봐선 안 되며, 반드시 그것과 상관되는 어느 법, 혹은 어느 몇 개 법의 법리를 알아야 하는데 이 역시 대법을 원용하는 하나의 체현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삼계의 이치는 반대 이치라는 법과,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우연한 일이 없다는 법을 참답게 이해하는 것은 모두 “안을 향해 찾는다”는 법리의 이해와 중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안을 향해 찾는 것과 씬씽의 제고는 상보상성( 相辅相成 )하는 것이다 “씬씽이 얼마 높으면 공이 얼마 높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주동적일수록 정확하며, 씬씽 제고도 빠르고, 공도 더욱 높아진다. 오로지 우리의 일사일념이 안을 향해 찾아보는 어떠한 하나의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안을 향해 찾는 양호한 습관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2, 쟁투심을 버리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실제 상황에 맞추어 적용

우리 같은 70대의 사람들은 사당 문화의 독해를 가장 중하게 받은 일대들이다. 특히 사당의 투쟁 철학의 독해로 형성된 쟁투심은 나에게 더욱 돌출 하여, 나로 하여금 수련인의 그런 상화하고 자비한 심태를 오랜 시일이 가도록 수련해 내지 못하게 해 직접적으로 중생구도에 영향을 주었다. 친족에 대한 진상 알리기도 아주 잘하지 못해 나의 형수는 형님을 나와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

나의 둘째 형은 임업 노동자인데 해마다 심산 밀림에서 벌목하다 보니 온 몸에 병만 남았다. 엄중한 풍습병, 간염, 심장병, 엄중한 쥐나는 증상에 시달려 산다는 게 죽기보다 못하였고 유명한 약 꾸러미로 되었다. 나는 법을 얻어 혜택을 얻은 후 98년 6월에 그에게 공을 배워 주었더니 형은 몇 달을 연마한 뒤 약 보따리를 버리게 되었고 건강한 사람으로 변하여 형수와 자식들 모두가 기뻐서 대법이 나의 둘째 형을 구해 줬다고 감격했다. 하지만 대 형세가 뒤틀려지자 형수의 태도도 뒤틀려 졌고, 특히 파출소에서 수색을 하고 둘째 형을 간수소에 납치해 가자, 사당의 독해를 받은 형수는 원한을 죄다 나한테 쏟아 놓고 날마다 나를 욕했다. 하지만 둘째 형은 근기, 오성이 좋아서 집 안팎에서 어떻게 저애를 하든 수련인의 요구대로만 하였다. 형수는 이런 형을 관할할 수 없게 되자 더욱 나를 미워하고, 대법을 미워하였다. 둘째 형이 연공, 법 공부를 하거나 대법의 일을 하기만 하면 욕지거리를 하였다. 07년 초반에 둘째 형수가 방광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당시 나는 반응이 아주 복잡 하였고, 속으로는 그에게 경고를 주어 사부님과 대법을 덜 욕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형수가 이 지경까지 된 데는 나의 책임이 없을 수 있는가? 그녀는 사당의 독해로 시비를 가르지 못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는가? 많이 알려 주었는가? 제대로 알려 주었는가? 천 여리 떨어져 있고, 6,7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왜 한 번 다녀 가 직접 만나서 분명히 알려 주지 못했는가? 이건 개인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닌가? 배후에는 여전히 쟁투심이 작간을 부렸던 것이었다.

1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사부님의 모든 경문을 통독 하고, >에서 가족에게 진상을 알린 유관 문장도 주의해 학습함으로써 대대적인 계발을 받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속인과 모순이 있는 것은 모두 대법제자의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나의 형수는 속인으로서 그녀가 나에게 대항하니 나도 그녀와 대항 하였다. 이건 자신을 그녀 수평에로 낮춘 것이 아닌가? 수련인은 마땅히 속인의 이 층 이치보다 높은 대법의 요구에 따라야만 비로소 한 수련인으로 될 수 있다! 왜 이런 기본적인 정념마저 다 잊어 버렸는가? 한 신이 속인과 모순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붓을 들어 몇 천자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그녀에게 써 보냈다. 먼저 그녀에게 사과하고, 대법엔 잘못이 없으며, 강씨 집단이 헌법을 어긴 것으로서 일체 화근은 장씨, 사당에게 있으니, 당신은 시비를 가리지 않고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그녀에게 명혜망에 성명을 발표하여 대법 사부님께 이후 더는 미안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용서를 빌라고 알려 주었다. 만일 이래도 작용이 없다면 꼭 시간을 내어 그녀를 보러 갈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친족이 아니고 일반 중생일지라도 죽는 걸 보고 구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08년 8월 경, 나는 아들의 혼사를 마치고 직접 둘째 형의 집으로 갔다. 차를 갈아타는 길에서 둘째 형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뜻밖에도 형수가 전화를 받아서는 “동생이 와서 뭘 하자는 거야?”고 했다. 나는 “형수님 뵈울려고요”했더니 형수는 “흥, 그렇게도 마음이 고와 ?, 난 받아줄 수 없어!” 하고는 전화를 놓아 버렸다. 본래 기차 안에서 몇 시간 졸고 나서 날이 밝으면 곧 도착할 것인데 누가 알았으랴, 엎치락뒤치락 잠이 전혀 없어지자 속으로 생각 했다. 이건 절로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격이 아닌가? 비굴하게 남의 문전에 가서 남의 눈치를 본다는 건 얼마나 체면이 깎이는 일인가! 하지만 또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신의 길로 가고 있는 대법제자인데, 왜 또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거냐? 사람의 이런 물건을 돌보기만 하고 대법의 위엄은 버리겠느냐? 또 어찌 중생을 구도 한단 말이냐? 이런 것을 생각하자 마음은 도리어 평온해 지기 시작하였다. 한 시간 후에 차는 역에 도착 하였다.

형수의 정서를 늦춰주기 위하여 나는 먼저 처남네 집에서 하루 밤을 묵었다. 그런 김에 처남과 여러 외조카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는데 그들은 모두 대법을 아주 인정해 주었다. 외조카는 말하였다. “큰 외삼촌은 다행히도 파룬궁을 연마했으니 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엄마와 마찬가지로 진작 가버렸을 거애요.(사망)우리 엄마가 살아 계신다면 나는 꼭 엄마보고 외삼촌 따라 파룬궁을 연마하게 했을 거예요” 일가노소의 정신 상태를 바라보면서 나는 몹시 기뻤다. 이튿날 오후 둘 때 형은 나를 마중 나왔다. 형수는 집안에서 나오면서 하는 첫 마디가 바로, “난 자네가 죽도록 미워” 하면서 탓하는 것이었다. 형수는 그래도 내가 웃고 있으니 더 화가 나 웃지 마, 자네 형 한 사람만도 화가 치밀어 죽을 지경이다. 난 심장이 나빠서 당신들 두 형제의 시달림을 감당하지 못하니 어서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앉자마자 쫓아내는 건 너무 인정이 없는 게 아니예요?” 라고 했더니 형수는 “이런 세월에 무슨 인정 같은 걸 다 말할 것 있어, 무사하게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나아”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 줄 때 높게 말하지 말라고 하신 가르침대로 그녀에게 이야기 했다. 형이 주방에서 밥을 짓는 동안 나는 형이 수련하기 전에 사내로서 거칠었던 점 등의 잡담을 늘여 놓자, 단숨에 형수의 말문이 터졌다. 형이 어떻게 성격이 조폭하고, 어떻게 사나우며, 어떻게 독단독행 한다는 등 숫한 불만을 쏟아 부었다. 기분이 잡친 곳을 말할 때면 연신 눈물을 훔치곤 하였다. 나는 말속에 끼어들어 물었다. “대법을 수련 한 후에도 당신과 애들을 때려요?” 그녀는 부득불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은 대법을 수련 후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성격의 변화와 신체의 건강을 보면, 이제 곧 80이 다 된 사람이 약도 먹지 않고 주사도 맞지 않았지만 아무 병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형의 그렇듯 조폭한 성격, 그렇게 많은 만성병을 인간의 어떤 역량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할 수 있는가? 그녀도 인간엔 어떤 사람, 어떤 역량도 그를 이렇게 전환 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승인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물으면서 말 했다. 대법이 좋아요, 안 좋아요, 대법 사부님이 좋아요, 안 좋아요? 그녀는 찍소리 없었다. 후에 또 장씨가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가? 어떻게 거짓말을 날조하는가, 현재의 전국, 전 세계의 대법 형세가 어떤가에 대해 말해 주었더니 나중에 그녀는 말하였다. 이 공은 좋긴 좋지만 정부에서 하지 말라는 일을 왜 억지로 하는가? 팔로는 허벅다리를 비틀 수 없지 않는가? 나는 슬그머니 기뻤다. 오직 당신이 속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이건 큰 걸음을 내 디딘 것이지 않은가.

저녁에 나는 형과 함께 그녀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청리 하였다. 이튿날 아침 시장에 나가서 형수는 흰닭 한 마리와 커다란 수박 하나를 사들고 와서 나더러 먹으라는 것이었다. 둘째 형이 대충해 놓은 밥과 반찬이 맛이 없었다. 나는 주방 일을 도맡아 했다. 나는 날마다 목적있게 기회만 있으면 그녀에게 대법의 일,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녀와 함께 올림픽 경기를 구경 하였더니 그녀는 내 형이 종래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고 불평을 토로 했다. 나는 말했다. 사당의 텔레비전은 거짓이 많아 볼 것이 없어요, 그는 문화가 낮아 책을 보는 속도가 늦은데 언제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내 형을 좀 권유 해 보지요, 명절 휴가일엔 형수와 애들을 많이 배동 하시라구요, 형수가 말했다. 동생은 그래도 형 보다 나아, 생활 할 줄 알거든. 그렇게 눈 깜짝 사이에 한 주일이 지나갔고 차표를 끊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그랬더니 형수는 닷새 후이면 올림픽도 끝날 터인데 끝나면 그때 가라는 것이었다. 형수의 선심이 나왔던 것이다, 올림픽 같은 건 안중에 없었지만 나는 형과 같이 법 공부를 더 하고 싶었기에 기쁘게 더 있겠다고 응낙 하였다. 닷 새 동안 형이 책을 읽으면 내가 보면서 모르는 글자, 이해 할 수 없는 구절을 얘기해 주었고, 함께 >과 >를 죄다 공부 했다. 또 일정한 시간을 내어 거리에 나가서 직접 대면하여 진상을 알려 주고 3퇴를 권했는데 형은 날마다 십여 명씩 탈퇴 시켰다. 떠나갈 때 둘째 형수는 숫한 물건을 사 주면서 재삼 부탁하는 것이었다. 형님 생각이 나면 아무 때건 오라고. 8년이란 세월의 얼음 덩어리가 은사님의 가지 하에 녹아 버렸다. 특히 나를 기쁘게 한 것은 형수의 방광암이 최근 검사에서 암세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생명이 진정으로 구원 된 것이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스럽게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 결심을 크게 내리지 않고는, 사당의 독소를 깨끗이 청리하지 않고는 여전히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는 아주 어려운 것이다. 주동적으로 안을 향해 찾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장발표 : 2009년 2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9/2/18/1956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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