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천대법제자 지련(池蓮)
【명혜망 2009년 1월 8일】 사부님께서는 거의 매번 설법 때마다 안을 행해 찾음을 강조하셨다. 특히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에서는 거듭 의미심장하게 우리에게 문제에 부딪치면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모두들 다 사부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치 입버릇처럼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어떤 수련생이 무슨 번거로움에 부딪치거나,혹은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 혹은 무슨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 있거나 혹은 무슨 모순이 발생하기만 하면 모두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상대방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심령을 건드리는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흔히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잊고 도리어 늘 밖으로 밀어버리며 객관적인 원인을 찾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곤 한다. 만약 안을 향해 찾음을 오직 다른 사람을 가늠하는 척도로 삼거나, 혹은 말로만 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하게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 내가 어떻게 마난 중에서 진정으로 “안을 행해 찾는”다는 참뜻을 깨달았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거에 나 역시 일부 동수들과 마찬가지로 늘 자신이 얼마나 되는 집착심이 있는지 헤아려 보곤 하면서 마치 이렇게 하는 것이 곧 바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뜻인즉 “나를 보세요, 나는 이렇게 많은 집착심을 찾아냈으니 사부님 제거해 주십시오.”라는 의미이다. 또 ‘사부님께서는 왜 나의 집착을 제거해주시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사실 자신은 수련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전혀 수련하지 않았다! 정말 거기에 앉아서 자신이 집착심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는 것이 수련이란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앞으로 연공 중에서 당신은 각양각색의 시달림에 부딪힐 수 있다. 이런 시달림이 없이 당신이 어떻게 수련을 하겠는가? 여러 사람들이 모두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이익에서 충돌이 없으면 인심의 교란이 없는데 당신이 거기에 앉아 있기만 하면 씬씽이 제고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안 된다. 사람은 실천 중에서 진정하게 자신을 단련 하여야만 비로소 제고될 수 있다.”
“그러나 모순이 생길 때 흔히 사람의 심령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쓸모없으며 제고를 가져오지 못한다.”
몇 년 동안 나는 거대한 난 속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어렵게 기다시피 걸어왔다. 나는 매우 연약한 사람이었는데 수련을 시작한 후 부딪힌 이런 마난 중 하나만 있었더라도 수련하기 전의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으며 마음 속에는 견정한 일념이 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대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이러한 마난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속에서 깨닫고 제고하라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성은 너무 차했다. 심지어 자신이 어떻게 해야만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마저 모르며 어떻게 자신을 진정으로 제고하는지 몰랐다. 난 중에서 나는 그것을 수련 제고하는 좋은 환경이라고 간주하지 못했고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비난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순조로운데 나는 왜 이처럼 어려운가?(경제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전방위적인 압력은 정말이지 나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없게 한다.)혹은 표면상으로 나에게 마난을 조성한 사람을 원망했다. 비록 말로는 안을 향해 찾으라고 했지만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마음속 깊이 은폐되어 있는데 어떻게 안을 향해 찾을 수 있겠는가?
최근 한 차례 마난 중에서 나는 갑자기 이렇게 원망하는 마음이 바로 나의 전진의 길을 가로막는 하나의 장벽임을 깨달았다. 내가 만약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영원히 제고할 수 없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속인과 이런 것을 따진단 말인가? 나는 이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내심으로 부터 상대방을 관용하며 그 사람에게 감사 드릴 것을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나의 생생세세의 업력을 없애고 나를 도와 씬씽을 제고하게 하며 나에게 덕을 돌려주는데 내가 그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는 진심으로 그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여 버렸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원망했던 그 사람을 만났다. 나는 상냥하게 그에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눴는데 그 당시 나는 정말 온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돌아보면 정말이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마난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확실히 한 차례 생사의 큰 겁난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이 난이 또 휩쓸려 왔고 다시 한번 나로 하여금 전방위적인 압력을 느끼게 했다. 이때 나는 또 안을 향해 찾으면서 이번에는 또 나의 그 어떤 마음을 향해 왔는가? 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하지 못하면 당신은 곧 원만하지 못한다.”(『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 )
나는 자신을 살펴보았다. 나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는가? 나는 자신의 ‘적’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때때로 이 문제를 동수들과 교류할 때 또한 선악에는 반드시 보응이 있다는 말을 했다. 사실 이속에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원망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는데(남이 보응 받는 것을 생각) 이는 나의 집착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계속해서 자신의 사상근원을 파고 들다가 마침내 내심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양해하게 되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그가 다른 사람에게 마난을 조성해 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더을 잃게 되며 얼마나 큰 죄를 짓겠는가? 그렇다면 그가 불쌍하지 않은가? 동시에 그는 객관적으로 나를 도와 나로 하여금 난 속에서 도리를 깨닫게 했고 제고하게 했으니 나는 마땅히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며 그를 불쌍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마침내 자비심으로 그 원망하는 마음을 대신했다. 나는 이때야 비로소 진정으로 해탈했고 비할바 없이 홀가분한 함을 느꼈으며 자신의 씬씽이 정말로 제고된 것을 느꼈다 .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수련 제고하는 법보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나는 정말로 자신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수련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그 참뜻을 깨달은 것에 대해 몹시 후회스럽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과거 많은 수련에서 진정한 법을 얻지 못하여 몇 세(世)를 고생스럽게 수련했으나 원만에 도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존께서는 우리더러 금생에 원만하도록 하셨다. 이는 바로 대법을 수련하는 우리들의 진정 커다란 행운이다! 나는 영원히 수련 중의 법보를 든든히 잡고 굳건하게 지켜나가면서 수련제고의 비결인 안을 행해 찾음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진정으로 제고할 것이다.
문장발표 : 2009년 1월 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8/1931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