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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의 제고를 위해 진정으로 책임져야 한다

글 / 일본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2월 22일】 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정체적으로 협조하고 불학회(佛學會)에 대해 협력하는 것은 중생 구도를 더 잘하기 위함이다. 협력 과정 중에서 나타난 순조롭지 않은 일들은 모두 자신을 제고하는 기회이며 좋은 일이다.

불학회에서 한 일에 동의하지 않을 때면 우선 마땅히 자신을 보아야 하며 동의하지 않는 그 마음을 보아야 한다. 수련하는 마음이 교란 받아서는 안 되며 수련 성취된 그 부분이 사람에 의해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일체는 모두 법에 동화하는 과정이며 좋은 일이다.

불학 회에서 안배한 일부 일들이 타당하지 않음을 볼 때는 무조건 그것을 원용해 손실을 줄여야 하며 이것은 한 대법입자로서의 책임이자 위덕을 건립할 기회이며 역시 좋은 일이다.

비록 진수하는 매 사람은 모두 이런 이치를 잘 알고 있지만 정체적인 협조가 여전히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에게 아직 사람의 일부분이 있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닦아 버려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실천 중에서 나는 늘 동수 사이에 불학회에 대한 지적과 불학회에 대한 불만을 듣곤 한다. 하지만 이런 불만 자체가 바로 교란이다. 동수 사이의 간격을 강화하는 요소이다. 왜 몰래 이런 일을 논의 하는가? 불학회에 문제가 있다면 마땅히 직접 앞에서 지적하고 선의적으로 상대방을 이해시켜야 한다. 무엇 때문에 직접 마주하고 지적하지 않는가? 어쩌면 불학회도 일부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여러 번 지적해도 그리 큰 변화가 없다면 어쩌면 불학회에서 동수의 의견을 충분히 중시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 장기간 이런 상태를 형성하게 된 것은 매 사람이 촉성한 것이다. 한 속인조차도 여러 차례 진상 알리기를 통해 모두 철저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데 왜 수련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없단 말인가?

불학회가 어떻다고 강조하는 동수일수록 불학회라는 이 위치에 대해 더욱 중시한다. 왜 다른 동수와 교류하면 그렇게 사이가 좋은가? 불학회의 수련생도 역시 수련생이 아닌가? 불학회의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또한 일반 대법제자가 아닌가? 그러나 실제적으로 많은 동수들이 불학회 자체를 대단히 과중하게 보고 있기 때문에 불학회와 동수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으며 상호 교류가 부족하게 만들었고 상대방의 진정한 제고를 위해 상대방의 부족점을 지적하지 않았기에 인위적으로 간격을 형성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불학회 동수들은 정면적인 교류 환경을 얻지 못했고 이 때문에 수련에서 부족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조성한 것이 아닌가? 동시에 우리가 지적하기를 기다려 함께 제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동수의 진정한 제고를 위해 책임져야 한다. 정말로 형식상 대립해서는 안 된다. 인식상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그 차이점은 서로 교류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하나의 정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으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12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 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2/22/1920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