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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고 집착을 버리며 자신을 귀정하다

글 / 헤이룽장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2월 3일] 최근 나는 명혜망에서 《안으로 찾고 용맹정진》이란 문장을 보고 아주 큰 계발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자신의 수련에서의 차이와 부족을 보아 냈다. 나는 내가 안으로 찾는 것을 홀시하였고 안으로 찾는 것을 잃어 버렸으니 수련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며, 또한 오랜 시일 늘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음을 느꼈다. 안으로 찾지 않으면 기필코 잘 수련 할 수 없으며 또한 수련을 못하는 근본 원인이다. 나는 결심을 내려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우고, 나의 근본 집착은 물질 이익과 금전을 내려놓지 못한 것임을 찾아냈다.

나의 전반생의 생활은 아주 어려웠다. 한 집에 여덟 식구가 월급 600위안으로 생활하였다. 이렇게 매월 매 사람이 평균 6위안의 생활비로 십 여 년 동안 어려운 생활을 겨우 지탱하였다. 나는 이 어려운 나날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집에는 위로 노인 아래로 어린이가 있었고 나는 가정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속인 속에서 생로병사의 난은 모두 내가 해결해야 했다. 그러므로 돈은 내가 근심을 해소하고 어려움을 극복 하는 데 있어서 첫째 요소였기에 돈을 생명의 기초로 간주하였으며, 오직 돈만 있으면 생활을 보장 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돈을 아주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돈 때문에 담배와 술을 끊고 돈 때문에 나는 검소한 가풍을 수립하였으며 돈 때문에 많은 고생과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자력갱생의 길을 견정하게 걸어 왔다. 가난하지만 의지를 잃지 않고 빚을 지지 않으며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인격을 무시하지 않으며 양심을 어기지 않는 등등이었다.

비록 내게 돈이 없어 생활에서 많은 양호한 인품과 덕성을 키웠을지라도, 필경 나는 돈이 있어야만 생활이 보장될 수 있다고 여겼기에 돈에 대한 집착이 생겨 난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돈을 그렇게 중하게 여겨서는 안 되며 응당 고정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그러나 수련 후 나는 이 문제를 중시하지 않았고 의식적으로 돈에 대한 집착에 중점을 두고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더 중히 여기고 물질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조그마한 이익마저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예를 들면 길가에서 음료수 병이나 캔을 보기만 하면 주어 들고 이것은 돈이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고, 집에 사 온 야채 과일들이 잘 보관하지 못하여 상하기만 하면 마음이 아파 어쩔 바를 몰라 하였다. 만약 누가 화장실에 갔다 전등을 끄지 않으면 화가 나고 마음이 불편해 하는 등등이다. 비록 근검절약은 좋은 것이지만 과분한 것은 옳지 않은데, 만약 과분하기만 하면 그 속에 섞이는 것은 바로 탐내고 강제로 차지하려는 아주 큰 나쁜 마음이다. 수련 중에서 점차적으로 물질 이익을 중히 여기지 말아야만 비로소 최후에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달렸다.”(《전법륜》) 내가 안을 향해 찾아 이 근본적인 집착을 찾은 후에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이 일을 해주셨다.

작년 10월 난방을 책임진 사람이 나에게서 2000위안의 난방비를 받고는, 탈세하기 위하여 세금영수증을 주지 않고 수령서만 주었다. 그러나 단위에 가니 그 수령서는 청구할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 난방공사에 가서 세금영수증을 떼 오고, 또 나에게 100분의 7의 세금을 내라고 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불평했다. 돈은 당신이 벌고 세금은 나더러 내라고. 생각하면 정말 불합리했다. 협상은 하였으나 해결할 수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은 나에게 돈과 재물을 중히 여기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이 구나 라고 생각하고 내가 한걸음 물러서니 모순이 해결되고 쌍방이 평화로워졌다.

작년에 우리 단위의 지도자가 직장을 관두고 쉬는 간부들이 자립하지 못하면 매달 간병비 200위안을 준다고 알려 주면서 나에게 병원 진단서를 가져오면 해주겠다고 하였다. 당시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나는 자립 할 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그런데 올해 또 나에게 지금은 매달 간병비가 600위안데, 직장을 관두고 쉬는 우리 단위 간부들이 다 하고 나만 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나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거 내 입가까지 온 고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시 나는 응하고 집 식구들과 이야기 했는데, 모두 찬성하며 “단번에 그렇게 많은 돈이 올랐어요? 과거 당신의 한 달 월급과 같네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집착하는 것이 바로 돈인데 이번에 가져야 하는가? 사람을 찾아 거짓 진단서를 떼는가? 나에게는 넘어져 넓적다리뼈가 골절된 병력이 있었기에 진단서를 떼기가 아주 쉬었다. 그러나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고 생활도 자립할 수 있는데 이 돈을 내가 가진다면 구한 것이고 쟁탈해 온 것이 아닌가? 잘못하면 또 업력을 쌓는 것이다. 최후 나는 이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작년에 나는 아파트에 입주하고 원래 살던 집을 세 주었다. 올해는 그 세 준 집이 재건축에 들어갔는데, 세를 살았던 사람이 이사할 때 모순이 있었다. 원래 나는 좋은 의도에서 그녀에게 이사하라 한 것으로, 당시 나는 그녀에게 3개월 방세 400위안을 돌려주었다. 그녀는 아주 만족해하며 아무 때든 집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즉시 이사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사하라고 하니 또 난제를 내놓았는데, 나에게 개발 업체와 교섭하여 그녀에게 500위안의 이사 비용을 달라고 하였으며, 그렇지 않으면 이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내가 그녀에게 개발 업체와 협상하라고 하니 그녀는 “나는 그와 말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가져다주세요. 안 주면 이사 안 하겠습니다. 이사할 집도 찾지 못했다고 말하세요.”라고 말했다. 이쪽에서는 개발 업체가 나와 거듭 말하고 저쪽에서는 돈을 안 주면 이사를 못 한다 하고, 시 정부에는 이사 비용이라는 규정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그녀는 나에게 나는 그녀에게 거듭되는 다툼 속에서 반달이 지났다. 세 사람의 대립은 모두 돈 때문이었다. 긴 시일 늘 다투었으나 화해할 수 없고 계속 뻣뻣하게 뻗치고 있었는데, 바로 돈 때문이었다.

나에게 이 돈을 내라고 하니 손해를 보는 것 같았다. 정법으로 가늠하고 이 돈을 내가 그녀에게 주기로 최후 결정을 하였다. 결과 그녀는 나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내가 당신의 돈을 받으면 무엇이 되느냐고 자신의 겉치레를 하였다. 그럼 개발 업체의 손을 통해 그녀에게 그 돈을 넘겨주자! 그렇게 그녀의 요구를 만족시킨 후, 다음 날 이사 하였다. 사람 속에서는 돈이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모순은 정념으로 해결된 것임을 깨달았다. 3자는 또 예전처럼 화목해졌다.

보충한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하려 한다. 우리 부부(아내는 동수)는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하신 설법을 이미 네 번 보았고,《오스트레일리아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연속 7번 보았다.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철거한 집값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는 갖지 맙시다.” 이 돈은 우리 부부가 일생 동안 한번도 만져 본 적이 없는 금액이었다! 내가 생각해내지 못 한 것을 아내는 여기까지 생각해냈다. 당시 “나누자!”라고 응하였는데, 정말로 나누어 주려는 줄로 알고 10여 만 위안을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수련한지 않았다면, 이 돈을 남겨 노후 자금으로 쓰고 자기 자식들에게는 이렇게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 우리 둘 중에 하나는 돈을 생명보다 더 중히 여기고 하나는 아이스크림을 판 매우 적은 수입에 기댔다. 오늘 이렇게 개변되고 이런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일생에 처음이다! 그래 이것이 심성상의 승화가 아니겠는가? 또한 대법의 법력에 동화 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깨달음과 층차의 한계로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12월 13일
문장갱신 : 2008년 12월 25일 04:35:38
문장분류 : 수련 마당
중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2/23/1920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