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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알린 이모저모

글/ 산동 유방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2월 14일】 1997년, 나는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히 할 목적으로 다행스럽게 대법을 수련하게 되었다. 나의 전반생은 아주 고생스러웠다. 나는 아주 괴롭고 지치고 사는 것이 아무런 재미도 없다고 느낄 때 다행히 대법을 얻었다.

파룬따파의 박대정심한 내포는 나를 사로잡았고, 내게 광명을 보게 했으며, 법 속에서 마지막 귀착점을 찾게 했다. 대법은 내 인생의 가치관을 개변 시켰고, 내게 광명과 희망을 보여 주었으며, 사람이 세상에 사는 진정한 의의를 알게 하여 내 삶을 보다 즐겁고 충실하게 하여 강인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나를 변하게 했다. 나는 단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나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이라 말하는 것을 싫어해 사람을 보면 피하려 했고, 말을 하거나 표현할 줄도 모르는 유유낙낙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부터는 사람들이 모두 내가 변해 말할 줄 안다고 한다. 사실 사부님께서 내게 지혜를 열어 주신 것이다. 이는 내가 직접 사람을 만나 진상을 알리는데 아주 훌륭한 기초를 닦아 주었다. 이 몇 년 동안의 끊임없는 진상 알리기를 통해 자신도 갈수록 성숙해졌고, 말하는 것도 전혀 힘들지 않게 변했다. 나는 낯선 사람을 보면 미소를 지으면서 주동적으로 인사를 건네는데 마치 자기의 친인을 대하듯 온화하고 자비하며, 자연스럽고 대범하여 상대방에게 친절함과 믿음을 준다.

내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이 있을 뿐이다. 바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사람을 빼앗아 오며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선량함은 세인의 마음이 움직이고 각성하게 하며 그의 명백한 일면은 우리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진상을 말하고자 하면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할 수 있으며 지금껏 줄곧 비교적 순조롭게 해 왔다. 나는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며 나는 다만 다리로 뛰어 다니고 입을 놀렸을 뿐임을 알고 있다.

애초 직접 사람을 만나 진상을 얘기할 때 나도 아주 어려웠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입이 떨어지질 않아 이 일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법공부와 동수의 이끌음을 통해 내게는 커다란 전변이 있었다. 지금 수련생은 나를 보면 말한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잘하고, 삼퇴도 많이 하나요?” 나더러 말하라고 한다면, 말을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건은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 중시하는가 하지 않는가, 신사신법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가에 달렸다.

2006년의 봄, 나는 주동적으로 우리 지역에서 세 가지 일을 비교적 잘하는 한 수련생을 찾아 가 그녀더러 나를 데리고 함께 나가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자고 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진상을 알리는지 보고 싶었다. 우리는 먼 곳으로 가려 했다. 길에서 삼륜차를 모는 사람이건,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이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거나 상관없이 이 수련생은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직접 만나 진상을 알려 주었다. 당시 수련생은 그야말로 내 시야를 활짝 열어 주었다. 나는 너무도 감개무량했고, 자신과 동수와의 차이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인도 하에 나는 진상을 알려 3퇴를 권하는 이 방면에서 큰 개변이 있었고 동수들도 이 일체를 모두 보았다. 내가 노력하여 잘하게 된 성과도 보았으며, 주변 동수들도 분분히 나와 함께 나가서 진상하기를 원해 나는 다른 동수들을 이끌게 되었다. 특히 70세가 다 된 노년 수련생은 엄동설한이거나, 찌는 듯한 여름이거나 늘 나와 같이 매일 시장에 나가 진상을 알리고 3퇴하는 일을 견지했다.

우리는 보통 아침 8시에 나가서 낮 11시가 넘어서 돌아온다. 갈 때는 ‘9평’, 시디, 소책자, 명혜주간 등의 자료를 한 꾸러미 가져간다. 우리는 지금껏 이것을 임무로 간주하지 않았다. 만일 다 못 배포하면 다음에 다시 배포한다. 우리는 매 주마다 제때 진상자료를 가져온다. 매번 집을 나설 때면 자전거 바구니를 비우지 않는다. 문을 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말해 주는데 대부분은 시장 출입구에서 말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시장 안보다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아울러 드나드는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며, 물건을 다 산 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 들를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미소를 머금고 먼저 말을 건넨다. 그들에게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라고 알려 주고는 다시 묻는다. “대법진상을 아세요? 3퇴하면 평안을 지킨다는 말을 들어 보셨어요?” 혹은 “파룬궁 자료를 본 적이 있나요?” 하고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모두 알고 있고 보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권고하기가 쉬우면 몇 마디면 곧 탈퇴한다. 어떤 때는 자전거를 밀고 시장 안을 거닐면서 사람들과 말을 걸 수 있고, 동시에 자료도 줄 수 있으며 몇 마디에 탈퇴한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진상을 알고 있기에 다만 대법제자가 수속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은 뿐이다. 이는 우리가 이 몇 해 동안 고생을 하면서 진상 자료를 배포한 것과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야채를 사면서 돈을 치르고 다시 자료를 주고 3퇴를 권하거나 곁에 있는 사거나 파는 사람들에게도 결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어떤 때 나는 또 명혜주보, 소책자 같은 것을 반듯하게 접어서 대범하게 행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나와 수련생은 기본적으로 오전에 시장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오후에는 법공부를 한다. 어떤 때는 하루에 몇 십 명씩 탈퇴시켜도 환희심이 일지 않으며, 어떤 때는 몇 사람밖에 탈퇴시키지 못해도 낙심하지 않는다. 한 번은 반나절 내내 돌아다녀도 한사람도 탈퇴 시키지 못했지만 마음속에 실망감을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려주었고 그들에게 자비를 남겨 주었으며 또 다른 수련생이 말해줄 때 쉽사리 탈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시장에서 적지 않은 사람을 알게 되었고 어떤 사람은 만나면 진상자료를 달라고 한다.

나가서 진상을 하다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진상을 듣지 않거나, 비웃거나, 욕을 하거나, 악의적으로 제보하려는 경우도 있다. 물론 절대 대부분은 다 괜찮다. 실질적으로 진상을 알려주는 과정 역시 씬씽을 수련하는 과정이고, 일에 부딪치면 마음이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 볼 수 있다. 실은 어떤 일을 만나든 모두 우리의 제고를 위해 온 것이다. 오직 우리가 정념정행 하고, 법의 표준에 따라 하기만 하면 일체는 모두 구름이 흩어지듯 사라진다. 대법제자가 바르게 할 때,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우리를 위해 해 주신다는 것을 나는 체득했다.

작년 겨울 나는 오랜 파트너와 함께 차를 타고 여러 번 외지에 간 적이 있다. 여러 차례 진상을 알리러 다녔기 때문에 한 남자가 우리를 알게 되었다. 한 번은 그가 우리를 보더니 다급히 말하는 것이었다. “빨리 가세요. 이렇게 많은 연세에 이렇게 추운 날 집에서 따뜻하게 있지 않고 다니나요. 파출소에서 지금 도처로 당신들을 찾고 있답니다.” 우리는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때론 우리도 경찰차와 경찰을 만날 때가 있지만 모두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살핌 속에 무사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나는 3,4차례 사복 경찰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번은 중년의 사복 경찰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기질이나 옷차림을 보아 일반 백성이 아님을 보아낼 수 있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후 그는 엄숙하지만 상냥하게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조심하십시오.” 말하면서 호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책자를 꺼내 내 눈앞에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네 글자가 찍혀 있었는데. 인민 경찰이란 글자였다. 당시 나는 마음속에 두지 않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2008년 음력 2월 12일, 내가 행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내 자전거를 틀어잡고 놓지 않았다. 이 사람은 경찰복을 입지 않았고, ‘산서(山西) 수력발전’이라 찍힌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비록 현지 말을 쓰긴 했지만 오히려 현지 길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동수와 말하는 가운데 비로소 특무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먼저 발정념을 하여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런 다음 그에게 진상을 알려 주면서 나쁜 일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이렇게 하면 당신과 당신 가족들에게 모두 좋지 않아요. 나는 사람을 구하고 있는 것이지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을 뿐더러 경찰에 신고했다. 내가 자전거를 밀고 가려 해도 꽉 틀어잡고 못 가게 했다. 밀고 당기고 하는 바람에 자전거 바구니 속에 들어 있던 시디, 소책자, 지갑, 3퇴 명단이 전부 바닥에 쏟아졌다. 나는 재빨리 명단을 주어 들었다 (나는 왔다 가는 길에서 15, 6명의 사람을 탈퇴 시켰는데 모두 실명이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나는 자전거를 버린 경찰차가 곧 도착할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위험한 환경을 벗어났다. 돌발적인 사건에서 나는 두려움을 몰랐고, 마음이 아주 평온하여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9년 동안의 비바람 속에서 나는 늘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순조롭게 걸어올 수 있었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그날 나는 반찬 두 가지를 볶았다.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 왔는데 종래로 그가 그처럼 기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나와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어린애 같았다. 또 내가 한 반찬이 맛있다고 칭찬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그의 표현을 통해 나를 고무격려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4, 5학년 쯤 돼 보이는 초등학교 남학생 4명을 만났다. 나는 차에서 내려 그들을 불러 놓고는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곤 그들에게 진상 자료를 보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그 중의 키가 큰 한 아이가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즉시 그에게 말했다. “너 정말 물건 볼 줄 모르는구나.”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제게 주세요.” 잇따라 다른 애들도 분분히 손을 내 밀었다. 당시 그들에게 준 것은 주보였다. 내게 또 ‘칠채교(七彩桥)’도 있다고 하니 다투어 달라고 했다. 내가 그들에게 탈대 하여 평안을 보위하는 일에 대해 말해 주고는 한 아이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즉시 알려주었다. 내가 책과 종이를 꺼냈을 때 그들은 저마다 이름을 알려 주고 탈대 하려 했다. 이 귀여운 아이들은 모두 아주 기뻐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자료를 다 보고는 다른 애들에게 돌려주어 보게 하라고 당부 하였다. 그들은 아주 예의바르게 나와 헤어졌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애들과 진상을 말해준 경과이다.

동수여, 우리의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왔다. 나는 어떤 동수들은 각 방면에서 수련을 모두 잘했고 가정관도 아주 잘 넘겼지만 다만 3퇴를 권하는 방면에서 돌파하지 못해 몇 년이 되도록 몇 사람 밖에 탈퇴 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진도는 사부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얼마나 먼가! 우리 위대하신 사부님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수련의 길에서 용맹정진하자!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문장발표 : 2008년 12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12/14/1915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