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고히 법을 실증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사명
글 / 산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0월 27일] 최근 명혜망에서 옥중의 친인을 마땅히 돈으로 구출해야 하는가에 관한 일부 교류문장을 보았다. 이로부터 나는 몇 년 전 모 지역의 한 수련생이 취한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대략 2002년 초반에는 “정념으로 나간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한 어휘였다. 엄(严) 수련생은 자료를 만들다 사악에게 붙잡혀 불법(不法)으로 노동교양을 당했다. 엄 수련생은 초연하게 대하면서 일체를 내려 놓았다. 또 사존님의 점화로 자신의 부족점을 찾아 내었다. 이날 그에게 갑자기 엄중한 병업 증상이 나타났지만 엄수련생은 마음속으로 생각이 있었다. 이튿 날 노동교양소에서는 그의 형부더러 그를 데려가라고 하였다. 몇 겹이나 되는 철문 밖에서, 엄 수련생은 형부를 보았다. 그는 형부에게 물었다. “돈을 썼어요?” 형부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돌려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뜻인즉 당신이 돈으로 나를 사가려 한다면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형부는 다급히 말했다. “아니, 아니요, 정말로 돈을 쓰지 않았다니까!” 곁에 있던 경찰도 말했다. “정말로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엄수련생은 말했다. “그럼 그렇겠지!”
뒤이어 가서 결산 하라고 하였다. 엄 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소에 들어갈 때 한푼의 돈도 노동교양소에 바친 일이 없었는데, 갈 때에는 거꾸로 계산되어 오히려 6~7백 위안을 찾게 되었다. 원래 현지 “610”에서 엄 수련생을 노동교양소에 보낼 때 노동교양소에 천 위안을 바쳤던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오늘, 엄 동수의 당시 일을 생각하니 내가 몸소 겪은 일처럼 그렇듯 깊이 깨닫게 하였다. 대법제자는 법을 실증하러 왔다. 어떠한 환경이든 법을 실증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이다. 만약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꼭 법을 실증하였기 때문일 것이고, 대법의 초상적인 힘을 실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돈으로 사서 나왔다면 실증해낸 것은 돈의 힘이고 인맥(人脉) 관계의 힘이지, 법을 실증하지 못했으며 반대로 이는 대법에 대한 모욕이다. 이는 나오고 못나오는 간단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서든 모두 법을 실증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엄 수련생이 되돌아 들어간 것은 구세력의 박해를 승인한 것이 아닌가? 나 개인적으로 보건대 절대 그렇지 않다. 반대로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며, 대법에는 박차고 뛰쳐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데 대한 확고한 믿음이며, 자신이 꼭 바른 방법을 통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그때의 환경에서 이 점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는 “나는 대법제자이다. 나는 대법의 수호를 위해 존재한다. 나는 대법을 모욕하는 어떠한 일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를 확고히 지켰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일부 지역에서는 점차 몇 만 위안이라는 돈으로 사람을 사 내오는 방법이 나타나고 있으며, 심지어 가족인 동수도 “구출”이란 명의로 이렇게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한 방면으로는 박해받는 동수 자신이 안에서 마음이 움직여 가족더러 이렇게 하라고 했을 수도 있고, 그리하여 외부 환경의 변화를 야기시킨 것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가족 수련생이 돈으로 친인을 사 내온다면 우리가 실증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실증한 것은 우리가 반드시 사악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실증한 것은 돈과 인맥의 힘이 과연 크다는 것이 아닌가? 만약 대법을 실증하지 못하고 반대로 사악에게 순종해야만 출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우리는 무슨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상은 다만 개인의 조그마한 견해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10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10/27/1886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