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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을 내려놓고 중생에게 다가가자

글 / 대륙 허난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0월 1일 】 대면하여 진상하는 방면에 있어서 많은 동수들은 일찍부터 잘하고 있다. 여기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동수들에 대하여 말하자면, 대면 진상은 우리들에게 놓여진 하나의 길로써 “새로운” 과제이다. 낯선 사람에게 진상을 말하려면 먼저 두려운 마음과 체면을 내려놓는 것이 요구된다. 9년이란 비바람속에서 마련(魔炼)하여 오면서 동수들의 두려운 마음은 이미 아주 많이 적어졌다. 일부는 거의 없어졌다. 동수들이 자료를 배포하려고 할 때에는 정말로 천병천장(天兵天将)과 함께 신출귀몰(神来神往)하였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대면하여 진상을 말하면 많은 동수들은 뒷걸음질을 하는가? 사실 동수들이 말하기 싫어서 그런것은 아니다. 또 말할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큰 방면에서 볼때 가능하게 하나의 체면이란 마음의 장애로 인해 동수들이 걸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에게는 모두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 더욱이 평소 체면을 많이 차리는 동수들은, 체면을 내려놓고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확실히 아주 힘들어 하고 있다. 내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늘 일찍이 대면하여 진상을 말하려고 생각했지만, 바로 용기가 없었다. 늘 사람들이 들으면 좋고, 듣지 않으면 자신의 체면이 아주 깎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의 장애가 아주 오랜동안 지속되었다. 어떤 때에는 대면하여 진상을 말할 수 없으니 다른 것을 해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사실 바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지 못한 것이고, 올라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금년 여름에 나는 결국 결심을 내리고 체면을 내려 놓았다. 나는 이미 자신에게 더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나는 바로 자신을 “핍박”하여 낯선 사람에게로 나아가 입을 열고 진상을 말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거리변에 앉아서 한 사람이 나의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도무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10시가 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안 된다. 오늘 저녁에는 절대로 헛걸음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용기를 내어 한 쌍의 노년 부부의 앞으로 걸어가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했다. 반 나절이나 말했는데도 퇴출하지 않아 나는 아주 실망하였다. 집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물었다. ‘내일 저녁에 또 갈 것인가?’ 나는 견결히 “간다.”고 대답했다.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한번 또 한번,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 한번에 말해서 안 되는 것은 자신에게 경험이 없어서이다. 가능하게 방법이 틀려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내가 결심하면 능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낯선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은 바로 나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그 이튿날 저녁에 또 갔다. 그날은 말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으며 또 세명을 도와 삼퇴하게 하였다. 며칠 후에 나는 ‘저녁에만 하는 것은 안 된다. 시간이 너무 적다’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오전에는 나가서 대면진상을 하고, 오후에는 집에서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는 것을 견지하였다. 일주일에 몇십 명이 삼퇴하도록 하였다. 이 기간에 나는 또한 점차적으로 자신의 쟁투심, 현시심, 체면에 대한 집착심 등등을 수련하여 없애 버렸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한번은 사람들에 의해 밖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억지로 진정하고 웃음을 띄우면서 떠났다. 사실 그때 마음은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 억지로 웃음을 가장한 모습은 아마도 우는 것보다 더 보기 흉했을 것이다. 나는 거리변에 서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 “상해(伤害)”받은 마음, 그것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눌렀다. 마음속으로는 그 여자 아이의 그 신랄하고 매몰찬 음성을 “지워버리”느라고 있는 힘을 다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그 여자 아이도 역시 연분이 없다고 생각했고, 또 아마 그는 전세에 나와 원한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떠하던지를 막론하고 나는 이것으로 위축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심태를 조절하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쩐싼런 하오, 파룬따파 하오”을 읽기 시작했다. 잠깐 후에 다시 자신의 정념이 회복된 감각이 왔다. 나는 방금 부닥친 “타격”에 대한 생각을 모두 억제하고,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사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어디에 무슨 타격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체면의 마음을 버리게 한 것이 아닌가? 자신에게 제고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이러한 아주 좋은 일을 어디에 가서 찾는단 말인가? 이 한 단락의 시간을 경과하여 기본적으로 나역시 능히 체면에 대하여 담담해졌다.

이 며칠간 법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제8강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는 부분까지 외웠다. 나는 갑자기 사존께서 말씀하신 “장래에 전수제자(专修弟子)가 절에서 수련하면 반드시 속인 중에 가서 행각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이 속인속에서 대면하여 진상하면서 부딪치는 상황 역시 속인중에서 행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하였다. 이전에 여기까지 외웠을 때에는 왜 깨우치지 못했을까? (법은 그 내포가 무한하다. 내가 이해한 것은 다만 그중의 한층일 뿐이다)

나는 늘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이 절에서만 전수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대법은 속인중에서 문을 열었다. 우리 대법제자 절대 다수는 속인중에서 수련한다. 절에서 수련하는 제자는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처럼 이렇게 집에 있는 제자들은 지금 대부분 이미 전수(专修)하는 것이 되었다. 매일 가정에 필요한 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문적으로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록 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속인중에서의 집은 마치 속인사회의 자그마한 “절”이 아닌가? 이 작은 “절” 중에 가족들이 있고 어떤 이에게는 또 수련생이 있다. 이렇게 긴 시간을 거쳐 이 작은 “절” 중에서 이미 아주 힘들고 또 심성에서 큰 마찰이 있었다. 더욱이 모두가 동수인 가족은 작은 “절”의 환경에서 아주 적은 실천의 기회가 있었다. 동시에 나는 또한 사존께서 무엇 때문에 <<전법륜>> 제8강에서 “행각”에 대한 법을, 제9강의 제일 마지막에 “대인지심(大忍之心)의 법을 말씀하셨는지 깨달았다.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한 것을 말씀하면서 사존께서는 우리들에게 차근차근 잘 타일러 이끌어가고 있었다. 나는 사존께서 우리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신지 깊이 체득하였다. 그렇다. 밖에 나가 행각을 하지 않는다 하여 이러한 “건달”들과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역시 “사타구니 밑을 기여가는 치욕”을 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우리의 “대인지심(大忍之心)”은 현재 어디에서 체현되는가? 사부님께서는 이어서 “한신은 필경 속인이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우리는 그보다 훨씬 나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존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오늘의 특수한 수련 방식중에서 심성 표준이 최후로 이 일보에 도달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자신을 볼때 바로 이 문제에서 우리의 심성표준은 모두 한신보다 못하다. 자신의 체면을 고수하면서 “상해(伤害)”를 받기 싫어한다. 자신의 체면을 중생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얼마나 많은 하나의 사심인가? 이렇게 큰 하나의 사람의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천국으로 갈 수 있는가? 능히 올라갈 수 있는가?

동수들이여! 정법은 마지막 시각에 도착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와 마찬가지로 체면에 대한 집착이 있다면 우리들은 바로 냉혹하게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할수록 입을 열 수 없다. 그리하여 무의식 중에 구세력에게 힘을 가해준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입을 열지 못하지만, 그 일찍이 행각하면서 진상을 하는 동수들은 고급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능히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체면을 마땅히 더욱 내려놓아야 한다. 사존께서는 또 법에서 “바로 당신 자신이 가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두렵다. 가려고 생각하면 능히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산이 또 높고, 물이 또한 위험하다고 해도 오직 우리들에게 결심만 있다면 뛰어넘어 희망으로 갈 수 있다. 자비하신 사존께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다. 사존께서는 “주천” 1절 중에서 한 마디의 법, “내가 당신을 잡아 끌어 더 앞으로 내보낸 것과도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존께서 법을 직접 전수하실 때 참가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매 한번의 관을 넘을때, 매번 작은 제고를 감각할 수 있었다. 모두 사존께서 나를 잡아끌어 앞으로 내보낸 것이었다. 매 마난이 왔을 때, 자신의 마음이 아주 고통스러울 때, 오직 내가 즉시 사존의 유관되는 설법을 생각하고 법으로 대조해보고 나면, 내가 어떻게 관을 넘겠는가 하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그 관은 이미 넘어갔다. 사존의 자비는 늘 나로 하여금 얼굴에 눈물이 가득차게 한다. 우리들에게 그 무슨 두려울 것이 있으며, 또 집착할 것이 있는가? 우리는 손바닥에 마지막 그 “나무 찌꺼기”를 움켜쥐고 빨리 잃어버린 큰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손을 비우고 또 가서 중생을 구도하자.

아주 부끄럽다. 나 역시 금방 나오다보니 그 잘하는 동수들과 비교할 수 없다. 자신의 최근 시기 작은 감수를 써서 동수들과 교류하니, 틀린 곳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한다.

문장발표 : 2008년 10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10/1/18689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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