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북경에 가고 안 가고는 대법제자 자신이 결정할 권리가 있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9월 26일] 매번 악당의 이른 바 “민감시기”가 다가오면 사당 각지의 하수인들은 대법제자가 북경에 갈까봐 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거나 심지어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수감한다. 그들이 늘상 묻는 말이란, 당신은 최근 북경에 갔어 안 갔어 하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난 바빠서 안 가요!” 혹은 “사당이 이렇게 나쁜데 청월을 하러 가도 소용 없어요. 시름 놓으세요. 난 안가요.” 이러한 말을 한다.

나는 이런 밥법은 착오적이며, 모두 사악과 배합하는 것이며, 모두 사악이 하는 일이 합법적이라고 승인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환경이든지 막론하고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다 협조하지 말라. 여러분이 모두 이처럼 한다면 환경은 이렇지 않을 것이다.” (<<정진요지 2>>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북경에 가고 안 가고는 대법제자의 자유이자 권리이다. 중국 공민으로서 우리는 가고 싶으면 가고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으면 되는데, 박해를 집행하는 이런 악도들에게 고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당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가도 소용 없으므로 가지 않겠다는 말을 들은 악인은 큰 부담이나 던듯이 기뻐하며 돌아갔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이란 모두 그들이 기뻐하는 일인가?

사당이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 하든지를 막론하고 우리가 그를 도와 실현한다면 어떤 형식이던지간에 모두 틀린 것이다. 이를테면 악인은 외지에서 사업하는 대법제자의 전화번호를 요구한다. 오직 전화번호가 있고, 연결 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어디에서 사업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확인할 수만 있으면 더이상 추궁하지 않고 더이상 대법제자를 찾아다니며 시끄럽게 굴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문제에 부딪쳤을 때면 주의해야 한다. 절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대법제자의 전화번호를 악인에게 알려 주어서는 안 되며, 이제 곧 쓰지 않을 핸드폰 번호라 해도 안 된다. 알려 준다면 역시 사악과 배합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각도로부터 본다면 이는 사악에게 타협하는 것으로서 바꾸어 온 것이란 앞으로 더는 자신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대법제자의 신분에 대한 모욕이다. 하물며 우리는 우리의 동수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인데, 악당이 마음대로 우리 이곳에서 동수의 정보를 얻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9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9/26/18659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