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9월 21일] 최근 동수와 세 가지 일을 어떻게 잘할 것에 대해 교류 토의하는 중에 한 마디 물었다. “당신은 직장에서 어떻게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나요?” 수련생이 말했다. “평소에 나는 그들과 그다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요.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주 평범하지요. 아울러 지금의 인간관계는 서로 같이 지내기가 쉽지 않으므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기는 좀 어려워요.” 그의 말로 보아 이 동수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직장 동료에게 주동적으로 진상을 알려주는 일을 꺼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듣고나니 나는 일부 동수들이 바깥에 나가 전단지를 배포하고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기는 좋아하지만 직장에서 진상을 알려주려고 하면 흔히 일부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련생이 동료와의 인간관계를 처리함에 있어서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직장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는 일이 장애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본 후, 유감스러운 나머지 자신이 직장에서 진상을 알린 약간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내가 대법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안 되었고 사업도 막 시작한 때라 마음속으로 생각한 첫번 째 일이란 바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직장 동료들이 모두 진상을 요해하게 하여 구도될 수 있게 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러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아울러 여러사람이 모두 나의 말을 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두들 알다시피 지금의 중국 사회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고”, “서로 속이고 속인면서” (<<전법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기감은 전에 없이 높아져 모두 신뢰성이 극히 결핍되어 있다. 사람이 경계하는 것은 모두 나쁜 사람이지 누가 선량하고 착한 좋은 사람을 방비하겠는가? 그러므로 남이 일단 당신을 돈독하고 착실한 사람임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 마음속의 그 경계하는 벽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업상에서 우선 자신이 담당한 일을 참답게 책임지고 잘하였다. 속인마저 “어느 곳에 있으면 어느 곳의 일을 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어찌 사업을 잘하지 않을 수 있는가? 다음으로 우리는 동료간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 많은 동수들은 내 일만 잘하면 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나는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여기거나, 심지어 자신은 수련인이기 때문에 속인의 사업과 생활 방식을 보고 나면 역겨워 거들떠 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속인 특히 직장의 동료 사이의 관계는 멀어지거나 간격이 조성되기 쉽다. 만약 예전의 개인수련 때라면 이는 별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중생구도의 중임을 짊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동료간의 관계를 잘 처리한다거나, 동료와의 관계가 좋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만약 동료와 관계가 멀어진다면 우리가 한 말을 남들이 믿지 않을 것이며, 자세히 사고하려고는 더욱 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우리에게 위험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회상의 사람들은 사람마다 거의 모두 개인 이익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하기만 하면 모두 승인할 수 있으나 자신에게 불리하기만 하면 거의 모두 예외없이 배척해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 우리는 진상을 알려줄 때 이 점을 이용할 수 있다. 사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세간의 득실을 구하지 않는다” (<<정진요지2>> <최후의 집착을 버리자>) 기왕 세간의 득실을 따지지 않는 바에야 속인의 이익에 마음을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속인은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로 그것을 이용해 우리의 진상알리기를 위해 봉사하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선, 직장의 자질구레한 일을 우리는 모두 있는 힘껏 감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중 위생 청소같은 것은 누가 하고 누가 하지 않는 규정이 없으므로 이는 공중 도덕심의 문제이다. 우리 직장의 사무실은 매 주마다 모두 한 번씩 대청소를 한다. 나는 직장에 온 날부터 주동적으로 이곳 청소를 맡아 하였다. 다음으로, 속인은 일을 하면서 누가 많이 하고 누가 적게 했는가, 출근해서 했는가 퇴근해서 했는가 하는 문제를 따지기 좋아한다. 아울러 일하기 싫어 자기가 해야할 일을 남에게 밀어내어 내맡겨 완수하기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이렇게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일을 잘 완수하는 전제하에서 무원칙한 접수만 아니라면, 네것 내것 하면서 밀어버리지 말아야 하며, 좀 많이 하거나 좀 손해를 보아도 괜찮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동료와의 거리를 가깝게 할 수 있고, 모순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남들은 우리가 부지런하고 진심으로 일하며 사심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속인가운데서 사업하면 사람사이에 모순이 쉽게 생긴다. 왕왕 이 사람의 이익을 보증해 주면 다른 한 사람의 이익을 건드리게 된다. 하지만 책임이 당신에게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남은 아마 책임을 당신에게 밀어놓을 수 있고 심지어는 어떤 때 당신에게 듣기 구차한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이러한 때에 우리가 상화롭고 자비한 심태를 유지하고 그와 싸우지 않고, 그와 시비를 따지지 않으며, 해석을 한다 해도 선의적으로 한다면, 당시 그가 우리를 오해했다 해도 그가 일의 사실에 대해 알게된 후에는, 대법제자가 훌륭하고 선량하며 너그러운 사람이란 것을 알게될 것이다. 한번은 사업상의 문제 하나를 잘 알 수 없어 곁의 동료에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이 동료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르게 나왔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손가락질 하면서 큰 소리로 훈계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왜 본인 할 일을 모두 나에게 묻는거야?” (실은 물은 적이 별로 없다) 나는 그때 더없이 억울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대법제자이며 그 동료도 내가 구도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는 묵묵히 감당하였다. 나중에 이 동료도 자신의 당시 결례를 의식하고는 나를 보기 부끄러워 하면서 나를 피했다. 나는 주동적으로 그녀와 인사를 건네면서 동료 관계를 잘 처리하였다. 또 한 가지는, 속인은 사업하는 가운데 이렇쿵 저렇쿵 하면서 시비를 일으키기를 특별히 좋아한다. 또 사람을 끌어모아 패거리 짓기를 좋아하는데, 바로 <<전법륜>> 중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은 좋고, 그는 나쁘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이러한 속인의 시비에 참여하지 말아야 하고 수구를 잘 해야 한다. 하지만 평소에 우리는 사람과 물건을 대할 때 예절과 한도가 있어야 한다. 이래야만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가깝게 할 수 있다.
이런 방면에서 우리가 모두 잘하기에 주의 한다면 다른 사람은 우리 대법제자가 착하고 무사(無私)적이며 믿을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상 사업중에 하고 있는 자그마한 일도 남들이 모두 보고 있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입으로는 영원히 말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일단 우리가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줄 때면 그들은 아마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한 말을 가늠하는 의거로 삼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량하고 착한 사람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잠시는 삼퇴를 하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대법제자가 모두 좋은 사람이며,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며, 간접적으로 법을 실증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만약 평소에 우리가 직장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고, 심지어 남들에게 우리가 속이 비좁고 자사(自私)적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줘도 그다지 믿으려 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 모두의 관계가 나쁜 탓으로 우리 자신이 진상을 알려주기도 싫을 것이다.
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게으름 없이 진상알리기를 견지하였기 때문에, 비록 많은 마난을 겪긴 했지만 직장 동료들 거의 모두 대법 진상을 알게 되었고 사당(邪黨)의 독해를 알게 되었다. 비록 모두 믿는건 아닐지라도 그래도 탈퇴할만한 사람들은 모두 탈퇴했다. 이에 따라 나의 직장 환경도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예전에는 동태망을 접속하려고 해도 남몰래 해야 했는데, 지금은 정정당당하게 책을 봐도 아무 일 없다.
좋은 사람과 사귀기를 누가 싫어하겠는가? 만약 사람들이 대법제자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모두 알게 되고, 우리가 모두 사업환경 가운데 진정으로 대법제자의 “쩐(眞), 싼(善), 런(忍)”의 일면을 나타낼 수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멀리 피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진상 알리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 있겠는가?
어떤 동수들에게 여전히 진상 알리기에 문제와 교란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공동으로 교류 촉진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부족한 곳은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9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9/21/1862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