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곽정(郭正)
【명혜망 2008년 9월 1일】(계속 이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의 두려운 마음을 버릴 수 있는가? 우선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이미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破)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破除)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堅定)하게 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셨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법은 우리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해 버릴 수 있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하는 전제 하에서 우리는 주동적으로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찾아내야 하며 아울러 발정념으로 자심의 공간장을 청리하는 몇 분 동안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한다는 이 일념을 추가한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두려운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물론 여기서 주요하게는 사부님께서 없애주시는 것이다.
2003년 이전에 내게도 두려운 마음이 아주 중했다. 왜냐하면 박해가 시작된 그 몇 해 동안 자신이 많은 사람마음과 집착을 지녔기 때문에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사악의 검은 명단에 중점인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사악은 그야말로 천지를 뒤덮을 듯이 내려왔다. 나는 유리실소 하면서 타향을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후에 법공부룰 많이 하고 명혜 교류문장을 많이 보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근본 집착과 두려운 마음을 찾아냈고, 하나의 이치를 분명히 하였다. 수련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바르게 잘 걸어가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가령 우리가 저마다 모두 두려운 마음을 품고 집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면 모두 환경이 좋게 변하기를 기다려 다시 나오려 한다면, 사부님의 정법노정이 언제 가서야 종결되겠는가.
두려운 마음에 대하여 사부님께서는 『홍음 2』「두려울 게 뭐냐」란 시에서 아주 똑똑히 말씀 하셨다. 동수들이 모두 암송했겠지만 깊이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바로 당신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음으로 인해 사악이 틈을 타고 당신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으로 정념이 있을 때면 사악은 즉각 무너지게 되고 그것은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법공부를 많이 하여 마음속에 시시각각 모두 법을 담으며, 발정념을 많이 하여 흑수와 난귀를 청리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참여한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들을 청리하여 시시각각 우리 자신 공간장의 순수함과 자비를 유지한다면 어떠한 삿된 물건도 들어오지 못할 것인즉 누가 감히 와서 박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번 박해를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이 세상의 사람을 조종하여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악한 생명은 아무것도 아닌데 다만 우리에게 정념이 족하기만 하면 그것은 즉각 소멸될 수 있다. 우리가 왜 아직도 그것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우리는 신이다. 우리는 세간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으며, 세간에서 세인과 중생을 구도하여 우리의 사전 대원을 완수하고 있으며 누구도 우리를 박해할 자격이 없다!
물론, 여기서 대법제자들이 안전에 주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며 안전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안전문제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중시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법에서 인식해야 하고 사람의 생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문제에 부닥치기만 하면 사람의 생각이 나오며 지나치게 사람의 방법과 조치를 강조한다. 나는 사이트에서 정념과 안전에 관한 적지 않은 교류 문장을 보았는데 일부는 정념이 있었고 일부는 문제를 완전히 사람에 대한 사람의 박해로 보고 있었다. 사람의 방법으로 대하는 것은 정념이 아니다.
이를테면, 어떤 지역에서는 일이 생기기만 하면 끊임없이 전화로 의논하여 어떤 동수들은 감히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데 대법 실증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른바 ‘민감일’기간에 감히 대법을 실증하지 못한다.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대법에 책임지고 중생에 책임지는 것이며, 동수에 책임지는 것이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실증하는 것마저 죄다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번 박해가 완전히 우주 구세력이 우리에게 억지로 들씌운 것이며, 그들은 완전히 그들의 이념에 따라 행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것들은 대법제자에게 누락이 있고, 틈탈 곳이 있다고 여겨질 때라야 비로소 인간세상의 사악을 조종하여 박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전화를 사용할 때 안전에 주의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도 전화 안전에 아주 주의한다) 나는 단지 우리 동수들이 좀 더 정념을 강화하고 평소에 아주 바른 정념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으면 누구도 박해할 자격이 없다. 정념이 강해야 하지만 또한 안으로도 찾아야 한다. 바로 사부님께서 『홍음2』「슬퍼하지 마라」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처럼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이다.
동수에게 “일이 생기려” 하거나 이미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조용히 자신의 집착과 사람마음을 찾아본다면 아마 재빨리 “막다른 골목에서 길이 열릴 것”이다. 전화(電話)에 대해 나는 어떤 때 생각한다. ‘이 생명은 참으로 불쌍하구나, 오늘 세상의 일체 생명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인데 이 전화는 속인만을 위해 쓰이고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만 쓰이다니. 그래 대법을 위해, 대법제자를 위해 쓰일 수는 없단 말인가? 그것이 우리가 사악을 억제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법기로는 될 수 없단 말인가?’ 동수들이 아직도 잘못된 영역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의 정념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는 이 생명이 남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한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이 생명에게도 마땅히 있어야 할 위치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개인 수련 중에서 때로 정념이 충족하지 못한 표현이 있긴 하지만 사부님께서 『미국 서부 국제법회설법』마지막 단락에서 하신 말씀을 단단히 기억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한 수련인으로 말하면, 능히 자신을 견정하게 할 수 있고, 능히 무엇이든 동요시킬 수 없는 한 가지 견정한 정념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마치 금강처럼 반석같이 견고하여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면 사악마저 보고 모두 두려워한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다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한 정념이 단호한 한 마디 말은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시킬 수 있다.”
나는 사부님의 이 말씀이 바로 우리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가장 유효한 법보임을 깨달았다. 가령 동수마다 모두 이 단락 법을 외우고 여기에 포함된 진정한 내포를 깨달을 수 있으며, 시시각각 자신의 정념을 강화할 수 있다면 두려움의 검은 그림자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원만에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정법의 홍세는 급속하게 앞으로 추진되며 변화하고 있다. 다른 공간의 사악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고 갈수록 지탱할 힘이 없게 되었다. 또 정말로 마땅히 즉각 이 9년에 걸친 박해를 끝마칠 때가 되었다. 중국대륙에는 아직도 그렇게 많은 세인들이 사당의 거짓말에 기만당했으며, 아직도 그렇게 많은 중생들이 구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진정으로 법리상에서 이번 박해가 발생하고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된 원인에 대해 법리에서부터 명확해야 한다. 강대한 정념을 튼튼히 수립하고, 우리 정체의 수련제고에 영향 주는 두려운 마음과 기타 사람마음을 철저히 제거해 버려, 근본적으로 너무나 오래 지속된 이번 박해를 종결하고 더욱 많은 세인과 중생을 더욱 잘 구도해야 한다. 우리의 사전 대원을 원만히 완수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진정 부끄럽지 않게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끝)
문장발표 : 2008년 9월 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9/1/1849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