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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 구원함은 한시도 미룰 수 없다

글/하남 대법제자

【명헤망 2008년 9월 3일】 사부님께서는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에서 우리는 구세력과 사람을 빼앗고 있으며, 더욱이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진정으로 사람을 빼앗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기왕 사부님께서 사람을 빼앗으라고 하신 이상 나는 다시 한번 ‘빼앗다’란 의미를 이해하게 되였다.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며 3퇴를 권하는 것을 전선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에 비유하자면, 마치 전쟁터의 불바다 속에서 부상병을 하나 하나 구출해 신속하게 지혈시킨 후, 붕대로 감아 임시로 구급한 다음 후방병원으로 보내 치료하면서 천천히 회복시키는 것과 같다. 전쟁터에서는 전면적인 치료를 할 수 없으며 또 그럴 만한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빼앗다”라고 하는 말이 물론 이지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일체를 고려하지 않고 가서 “빼앗”으면 부상병과 구호자 모두 좋은 점이 없다. 잘못하면 사람을 구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신도 함께 끌려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이지적으로, 지혜롭게, 신속하게, 안정적으로 해야만 부상병을 전선에서 구출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을 구하는 제 1보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3퇴를 권할 때 단도진입적으로 말한다. 주동적으로 상대방과 말을 걸면서 두세 마디로 주제에 들어간다. 직접 그에게 당, 단, 대에 가입했는지 묻고, 가입했다고 하면 바로 그에게 얼마나 위해성이 크며 생명 위험에 직면했는지 알려주어 깨달으면 바로 탈퇴시켜 구도한다. 그리고 또 그에게 늘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일반적으로 모두들 기뻐하면서 받아들이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내 생각에 제 1보의 “빼앗다”란 여기서 기본상 완성된다. 물론 우리들의 자료가 없는 곳이 없으니 어느 때나 그가 접촉하여 잘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이 이미 그를 관할하기 때문에 그는 곧 완전히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비록 해외 동수들처럼 그렇게 대대적으로 하진 못하지만 환경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일부 지역에서, 사실 우리는 이미 현재 반공개적이다. 오직 우리가 나와서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매 대법제자가 바로 하나의 움직이는 진상판이자 탈당센터가 된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대법제자가 자비하고 상서로우며 대범한 모습으로 세인들 앞에 나타나 당신의 입에서 흥미진진하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면 인연 있는 사람들이 들은 후 모두들 자리를 떠나기 아쉬워한다. 그는 직접 대법제자가 강권(强權)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을 무릅쓰며, 세인을 구하기 위해 사심없이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았다.

자료 중에서 대법제자의 아름다움을 말했는데, 단번에 확실하게 그 앞에 펼쳐 보이고 한마음으로 그를 위한다면 사람은 모두 명백한 일면이 있는데 그가 감동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당신이 ‘파룬궁’이라고 말한다. 종종 이런 때 나는 급하게 부정하거나 긍정하지 않고 순리에 따라 계속 말을 한다. “아! 보아하니 당신은 ‘파룬궁’을 아주 잘 아시네요. 3퇴도 알고 있다니 잘 됐습니다. 그럼 당신도 탈퇴하세요?”

정말이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표면 공간에서 본다면, 마치 찌르기만 하면 곧 뚫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이미 아주 적게 남았다.” (『2008년 뉴욕법회설법』)

그날 한 중년 남자가 내 말을 듣고는 그는 “아! 마침내 당신들을 만났어요. 전에는 물건만 보이고 사람은 보지 못해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싶었는데 이번에야 당신들을 만나게 되었네요. 빨리 앉아서 내게 말 좀 해줘요.” 그후 그는 기쁘게 탈단했고 또 친인들을 도와 탈퇴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몇 장의 3퇴 카드를 주면서 대신 하면 안 되니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거쳐야만 효과가 있다고 당부했다. 물론 이것은 연분이다. 상대방이 듣기 좋아 한다면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말해주어야 한다.

지금의 세인들은 깊이 미혹된 생활 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당신이 그에게 말하면 그는 들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또 어떤 사람은 한손에 핸드폰을 들고 한쪽 귀를 막고 안하무인인데 당신이 그를 구하자면, 인내심을 갖고 그의 통화가 끝나길 기다려야 한다. 어떤 때는 당신이 말하고자 하면 전화가 걸려오는데 사실 이것은 일종 교란이며 발정념으로 제거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반나절이나 말해도 그가 “당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곧장 몸을 돌려 가버린다.

어떤 사람은 아예 믿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는 비록 집착은 없지만 그러나 실망으로 낙심할 수 있다. 속으로 사람은 왜 이렇게 구원하기 힘든가 생각하는데 바로 실패 때문에 위축된다. 이때 나는 바로 즉시 심태를 조절해 다시 할 것을 준비하고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왜냐하면 내가 한번 낙심하고 위축되면 기뻐하는 것은 오직 구세력뿐이기 때문이다. 안 된다. 그것들을 기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로 인해 근심하시지 않게 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조급해 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울고 싶다. 나는 오직 자신에게 경고 주면서 다시는 낙심하지 않고 위축되지 않으며 문제에 마주치면 안에서 찾고 부족한 점을 찾아 보완하면서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제자가 오직 정진해야만 사부님께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릴 수 있다.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한 가지 일이 생각난다. 한번은 두 남자 아이들을 만났는데 물어보니 모두 단원이었다. 그중 한 아이는 이미 진상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탈퇴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왜 탈퇴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그때 외지에 있는 수련생이 ‘파룬궁’에 대한 이야기를 반나절이나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탈퇴하라고 하면서 가명으로 하고 또 무슨 번호를 말했는데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탈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가명을 쓰는 것은 네 안전을 고려한 것이고 무슨 번호라는 것은 없다고 했더니 그들 둘은 내 말을 알아듣고 모두 실명으로 탈단하였다.

동수여, 내 생각에 우리가 그 무슨 번호를 사람들에게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다고 하면 속인들에게 도리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본래 탈퇴를 대답했다가 그에게 가명을 말하면 놀라서 달아나 버리는데 번호는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가명을 만들어 뭘 하느지 물으면 나는 “신 앞에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신이 우리를 구하고 보호해 주기 때문에 이름이 없으면 신에 대해 불경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당신의 생명에 대한 보호이기 때문에, 당신이 신을 믿어야만 신의 구도를 받을 수 있다. 당신의 탈퇴하겠다는 그 일념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하면 이름에 대한 그의 의혹이 사라진다.

우리가 탈퇴를 권고할 때 당신이 상대방의 성명을 안다면 다시 가명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낯선 사람이나 우리가 그의 성명을 모를 경우에는 오직 가명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실명을 알려주면서 탈퇴를 원하면 더욱 좋다. 불편하고 말하기 싫어한다면 나는 길거리 가게의 이름을 본따서 한다. 일반적으로 모두 길한 것을 좋아한다. 듣기 좋은 1-2개의 글자로 하면 된다. 그에게 대기원 사이트란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들에게 두려워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에게 무슨 조직에 가입시키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저께 두 남자 아이 앞에 가서 물었을 때 그중 한 이이는 이모가 그날 내게 한 말을 가슴 깊이 명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도와 소선대를 탈퇴시켰다. “깊이 간직하고 명심한다”는 이 한마디가 내게 대법제자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게 했다. 오직 자신이 수련을 잘하기만 하면 하는 말이 자비로 충만되어 능히 상대방을 움직여 그로 하여금 가슴깊이 간직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이 일체를 잘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전제 조건은 법공부를 잘하여 시시각각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기억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곁에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며, 이 일체는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상을 알리는 가운데 칭찬하는 사람도 있고, 풍자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 무례하게 자신을 밀어내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로 만감이 교차해 아주 쉽게 사람의 집착이 생기게 한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인류 사회는 바로 나의 대법제자들이 수련하는 큰 연공장이다.”(『2007년 뉴욕법회설법』)는 것의 보다 깊은 내포가 체험할 수 있었다.

사악이 극히 적게 남은 오늘날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찌르기만 하면 뚫리는” 수련환경을 창립해 주셨다. 그럼 우리 전체 대법제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이 표면 공간에 조금도 남지 않도록 전면적으로 쿡 찔러 뚫는다면 사악은 숨을 곳이 없게 될 것이며 구세력은 철저히 연극을 끝내게 되는데 박해 역시 자연히 결속될 것이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8년 9월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9/3/18520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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