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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은 늘 피동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9월3일】

최근 한 시기 올림픽을 통하여 수련중의 일부 문제가 폭로 되었다. 많은 동수들이 모두 시간에 대한 집착, 예언을 집착하는 마음으로 올림픽을 대하였고, 그런 예언이 실현되지 못하게 되자 일종의 실망한 감수를 갖게 되었다.

필자는 오랜 시기동안 줄곧 문제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어떤 동수들의 수련이 아주 피동적이라는 것이다! 매번 마난이 올 때마다 대법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의 일면으로 대하고, 지나간 후에야 잘못했다는 것을 발견하곤 하는데, 늘 한 층차에서 배회하면서 제고하지 못한다. 매번 큰 일이 닥쳐오기 전에, 마땅히 대법제자는 어떻게 법에서 이런 문제를 대하겠는가를 생각해야 봐야 한다. 사후에야 수련에 누락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여전히 그 층차에서 배회하면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이러하기에 수련에서의 손해는 여러 방면으로 나타난다.

우리 다시 개인수련에 대해 말해 보자. 어떤 수련생은 신체 어느 곳이 불편한 감이 있거나 어떤 문제에 부딪쳐야만 비로소 발정념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뿌리를 세심히 파 보아야 할 것 같다. 왜 자신이 괴롭게 되어야만, 사부님이 점화해 주셔야만, 비로소 안으로 찾을 줄 아는가? 어떤 수련생은 평소에 안으로 찾는 것을 씬씽제고의 관건으로 전혀 여기지 않고 있다. 한사코 일이 발생하기를 기다려서야 안으로 찾을 생각을 한다. 비록 사후에 제고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미 손해를 조성하였다.

자아실증과 대법실증과 취사논사(就事论事)

많은 동수들은 자아실증과 대법실증을 분별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어떤 진상을 한 일이거나 대법의 일을 한데 대해 말하는 동시에 개별적 수련생은 자신이 어떻게 강대한 정념으로 아주 커다란 마난을 넘어 왔고, 자신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 얼마만한 중생을 구도했고, 얼마나 되는 자료를 배포했는가 하는 등등을 이야기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동수들이 함께 앉았을 때는 응당 어떻게 세 가지 일을 잘 할 것인가, 어떻게 법에서 제고할 것인가를 많이 말해야지 사람을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당신이 얼마를 했는지는 사부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데 당신이 얼마를 했다 해도 여전히 응당해야 할 일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법에서 온 것이 아니겠는가? 들고 나와 동수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 말한다면 지금은 아직 안전문제가 있는 만큼 수구 역시 아주 중요하다.

동수들이 함께 모였을 때면 진상 알리기나 대법일을 하는 과정의 경험, 교훈 같은 것을 많이 교류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한 동수님은 자료를 붙일 때 속인에게 발각 되었는데 그 속인이 뭘 붙이는가라고 물었다. 그 동수 분은 ‘장xx의 여러 가지 나쁜 행위’라고 말했더니 그 속인은 보겠으니 한 장 달라고 하였다. 이는 일부 경험의 교류와 일부 진상 알리기에서 어떻게 제고하고 어떻게 인식하는가하는 과정이지 과시심을 지닌 자아실증이 아니다.

또 개별적 수련생은 다른 동수에게 자아실증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후부터 아예 입을 다물고 발언하지 않는다. 사실 자아실증과 대법실증에는 두 가지 상태가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자아실증을 돌파했을 때라야 그런 상태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교류하는 동시에 일만 의론하고 사람은 의론하지 않는데 취사론사(就事论事)[역자주: 실제의 상황에 따라 사물의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을 논하다.]하지도 말고 취사론인(就事论人)은 더구나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한가지 일은 자신의 작은 울타리를 실증하는 것이다. 우리의 법공부팀이 어떠어떠하게 법공부를 잘하여 정진하지 않는 동수도 모두 이끌게 되었다고 하면서 외부에 자랑을 한다. 기타 동수들은 그 곳에 가서 “경을 얻고자” 하고 교류하고자 한다. 법을 잘 배우는 것만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잘했는가 못했는가는 스스로 말 할 바가 못 된다……

한 마디 더 할 것은, 개별적 수련생은 동수 집에 놀러 가면 아주 오래 있고 또 불필요한 잡담을 하면서 동수의 귀중한 시간을 지체하게 한다. 동수 집에 가서 일이 있으면 말하고 없으면 가야 한다. 우리는 효율을 따지는데 더 많은 시간을 세 가지 일을 잘하는데 써야 할 것이다.

일하는 마음

일부 동수에게는 일하는 마음이 있어 자료를 얼마나 배포했는가를 첫째가는 일로 여기고 한다. 어떤 수련생은 얼마만큼 했는가 하는 것으로 한 대법제자의 수련이 잘되고 못된 것을 가늠한다. 수련생이 불법 수감되면 다른 수련생은 의논한다. 아니, 그 수련생은 그렇게 잘했는데 어찌 잡힐 수 있는가? 어떤 수련생은 가택수색을 당하고, 세뇌반에서 나오자 또 다시 기계를 사고 재료를 사들이면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어느 수련생이 그와 교류하면서 그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아보며 안전에 주의하라고 알려 주었지만 그는 괜찮다고 하면서 지금은 경찰이 그를 아주 좋게 대해준다고 말하였다. 그런가? 그렇게 좋은데 왜 당신을 세뇌반에 잡아넣었는가? 왜 당신의 자료를 몰수하였는가! 그들은 당신을 박해하고, 그런 다음 위선으로 당신을 미혹시켰다. 동수여 얼떨떨하지 말라.

최근 한 동안 동수들의 법리상에서의 제고와 인식을 듣기가 아주 드물어졌는데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심이 좀 기울어진 것 같다. 진상 알리기, 발정념, 법공부 연공, 이 세 가지 일은 상부상조한다. 법공부를 잘해야 진상도 비로소 제대로 잘 말할 수 있고, 정념도 비로소 순수할 수 있으며, 비로소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를 해체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마치 세 가지 일을 함께 병진하지 말아야 하고 뭔가 편애하는 듯한 감각이 있다. 또 지금은 임무를 맡기는 식으로 동수에게 자료를 주면서 얼마만한 시간 내에 완수해야 한다고 하는데 임무식이다. 수련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며 순서 있게 점차적으로 밀고 가는 것인데 당신이 그를 단숨에 당신의 상태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가?

또 하나의 문제를 말하고자 하는데 바로 협조인이 불법수감 된 것에 많은 동수들이 아주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그는 수련을 아주 잘 했는데 어찌 잡힐 수 있단 말인가? 교류를 통하여 발견한 것인데 협조인마다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ㅡ 그들은 모두 몹시 바빴다. 협조하는 데만 바쁜 것이 아니라 또 종이를 사고, 가루를 사고, 기계를 사고, 이것저것을 사고 또 동수에게 자료 송달을 책임지고, 또 수련생을 도와 자료점을 세워야 하고, 물건을 모두 얻어 들이고도 장기적으로 소모자료를 공급해 주어야 했다. 더욱 한심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자료를 보내주지 않으면 나는 보지 않겠다는 등등. 참으로 모를 일이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수련하는지! 한사코 다른 사람더러 끌고 가게 하고 잡아 당겨야만 간다. 이런 일들은 이미 대량 협조인의 세 가지 일을 할 시간을 점하였다. 협조인이 잡힌 것도 그 지역 동수들이 마땅히 청성하게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는가, 만약 협조인이 한동안 떠난 후에도 이런 사람들이 여전히 수련하는가 안 하는가, 여전히 진상을 하는가 안 하는가를 보라. 수련인으로서 왜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는가?

법공부

대법제자가 속인과 구별되는 것이란 바로 대법제자는 법으로 지도하지만, 속인은 그렇지 않다. 대법제자가 법공부에 태만하거나 게을러질 때면 속인의 관념이 대신하게 되고 심지어 당신의 사상을 점령한다. 당신이 이러한 사상으로 대법의 일을 하게 되면 흔히 교란이 쉽게 생기고 쉽사리 구속받게 되며, 이러한 사상으로 진상을 말하면 효과가 나쁠 것이니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매번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면 그건 아직도 법공부가 깊지 못하고 법리가 명확하지 못하여 조성된 것이다. 그렇지! 또 한 가지 법보 ㅡ안으로 찾는 것이 부족하다.

대법제자는 속인사회의 홍류속에 잠겨 있다. 어떤 이는 이 홍류속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넋이 빠졌고 어떤 이는 방향을 잃었으며, 어떤 이는 도처에서 암초에 부딪치고, 어떤 이는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져 행동이 느리다. 사부님께서는 매번의 설법마다에서 법공부를 많이 하라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왜 늘 얼떨떨한 수련생이 있는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전진하지 않으면 밀려 내려가기 마련이다!

문장발표 : 2008년 9월 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9/3/1852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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