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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음이 수련’에 대한 약간의 인식

글/미국 동부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8월 18일】 많은 동수들이 어떻게 한 가지 일을 잘할 것인가 또는 남에게 일을 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지적을 받을 때 늘 사부님의 말씀 중에서 ‘할 수 있음이 수련’이라는 구절을 인용해 이 구절의 법을 ‘할 수 있어야지만 수련이다’라고 해석한다. 이는 일종 단편적이며 부정확한 인식으로 진정하게 사부님의 법을 잘 이해한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착실하게 수련」중에서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

내가 이해하기에 우리는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동수들과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며’ 공동 제고해야 한다. 또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혹은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모두 대법으로 가늠해 하는 것이야말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며 단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일의 결과는 분명 가장 좋을 것이다. 현재 대법제자들이 부딪힌 그 어떤 일이든 모두 자신의 수련제고와 중생의 구도를 목표로 한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4월 20일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에서 수련생의 질문에 대답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가 세간의 득실을 구하지 않는다고 늘 이야기하는데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일을 함에 있어서 과정을 가장 중요시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게 진상을 알게 할 수 있고 과정에서 세상 사람을 구도 할 수 있고 과정 중에서 그 진상을 폭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수련생은 또 단편적으로 “결과는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오로지 하기만 하면 된다”라고 이해하는데 이렇게 되면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보통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으로 변해버린다. 사부님께서는 같은 단락에서 진일보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한 효과에 도달하면 그것은 더욱 좋은 것이고 사부도 동의한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흔히 결과를 중시하고 이 과정 중에서 당신들이 마땅히 알려야 할 진상을 모두 제대로 알렸는가는 주의하지 않는다. 마땅히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에게 모두 알게 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것이다.”

여기서 “마땅히 알려야 할 진상을 모두 제대로 알렸는가”라는 이 요구는 우리가 마음을 써서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수련인이란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따라 행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 도를 깨닫고 제고하는 것이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할 책임이 있다. 이 외에는 일을 하거나 혹은 한 가지 일을 완수하는 자체는 수련이 아니다. 마치 지금의 화상이 절을 세우는 것이 수련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일을 하는 과정 중에서 수련할 수 있으며 경지를 제고할 수 있고 수련인의 상태를 체현해 낼 수 있으며 또 중생을 구도할 수 있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를 해낼 수 있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8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8/18/18428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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