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윤구 동수와 교류-
글/ 풍윤구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8월 12일] 최근 우리 지역에서 일부 동수들이 진상을 알릴 때 대법진상만 하는 게 아니라 인민보, 대기원 사이트, 중국보기 사이트와 고금 예언들을 활용해 진상을 알리고 있다. 모두 어느시간에 어떤 대재난이 발생한다는 것이며, 어떤 수련생은 올림픽이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 집착하면서, 심지어 이 때문에 속인과 쟁론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면서 명혜망 대법 사이트에 올려진 진상에 관련된 자료는 아주 적게 활용하거나 심지어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 인식으로는 이 부분 동수들은 이미 엄중하게 정법의 요구를 빗나 갔다고 본다. 진상을 알리는 게 아니라 속인의 물건으로 사람을 위협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01년 7월 17일《대법의 위엄》이란 문장 평어에서 말씀 하셨다. “대법제자의 선이 없으면 수련인이 아니며,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할 수 없으면 대법제자가 아니다. ”
속인 사이트와 예언 등을 우리는 선하게, 바르게 쓸수는 있다. 하지만 속인의 것을 전부 그대로 옮겨다가 말하고, 배포한다면 그래도 그것이 우리가 법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속인의 그 무엇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법을 실증하지 않는데 그 수련생이 그래도 정법시기 대법제자인가?
사부님은 《길을 바르게 걷자》란 경문에서 말씀 하셨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는 바로 쩐(眞)싼(善)런(忍)을 실증하고 신우주(新宇宙)를 성취시킨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것인데, 어찌 쩐(眞)싼(善)런(忍) 신우주에 속하지 않는 그런 것을 전하고 실증할 수 있겠는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하여 대법제자가 왜 존재하는지 고려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기실 중생구도 중에는 개인수련의 제고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 중생을 구도하든, 개인제고를 하든, 박해를 반대하든 모두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으로서, 당신들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만 법을 실증한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말하는 수련생이 있다. 오직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면 된다. 뜻인 즉 어떤 문장이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론 이는 정법의 길을 잘 걷지 못한 것이고, 진정으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지 못했으니 그 무슨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더욱 말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오늘의 인류 말겁은 오직 “진, 선, 인” 대법만이, 오직 대법제자만이 오늘날의 인류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 2004년 9월 19일 명혜망에 발표된 《4중 전회는 수련인이 집착할 일이 아니다》란 문장과 이 문장에 대한 사부님 평어, 그리고 2005년 9월 25일 명혜망에 발표된 《지옥을 소개한 시디롬과 기타 정행을 빗나간 현상을 동수들과 교류》 이 문장과 사부님의 이 문장에 대한 평어를 돌이켜 다시 읽어보는 것도 무방할 것 같다. 나 개인적으로 인정하건 대, 비록 당신이 예언 등의 것으로 부분적 민중을 사당 조직에서 탈퇴시켰다 하지만, 그 민중은 예언 등에 겁을 먹고 탈퇴한 것이지 진정으로 사당의 사악을 알고 탈퇴한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제자의 수련, 박해당하는 진상을 알고서 탈퇴한 것은 더욱 아니다. 아마 그들의 머리 속에 담은 것은 여전히 죄다. 중공사당이 파룬따파에 대한, 대법제자에 대한 모욕날조와 비방일 것이며, 사상 가운데 담은 것은 여전히 죄다 대법에 대한 불인정일 것인즉, 당신이 말해보라, 법정인간 때, 머리 속에 대법을 적대시하는 염두를 담았으니 그들의 생명이 남을 수 있겠는가?
동수여!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걷는 것만이 비로소 법을 실증하는 것이며,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걷는 것만이 진정한 중생 구도이고, 우리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만 비로소 정법시기 대법제자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동수들이 정법진행 속에서 절대로 반성을 잊지 말고, 법을 스승으로 삼고서 정법의 길을 바르게, 잘 걸어가길 바라는 바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부족 된 곳은 동수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8월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8/12/18395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