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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농촌에 가서 “9평”을 배포한 체험

글 / 길림 장춘지구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31일] 2005년 말부터 나와 몇몇 수련생은 농촌에 가서 “9평”을 배포 했다. 우리시 에는 37개 향이 있는데, 인구는 약 130만 명이다. 1가구당 한 권만 배포해도 20만 권은 더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큰 압력을 느꼈으나,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9평”을 널리 전하라고 하신 것과 또 도처에 꽃을 피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중생구도를 위하여, 사전 염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힘들고 어려워도 해야 한다. 사실 모두 사부님이 하고 계신다. 오직 당신에게 이러한 원망(愿望)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지도도 없었다. 우리 두 수련생은 버스를 타고 어느 대대에 가서 동네가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았다. 매 동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도로는 몇 가닥이 있는가? 어디로 들어가고 어디로 빠져 나오는지 조사를 했고, 집에 돌아와 합하면 이 대대에 몇 가구가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저녁에는 “9평”을 지고 가서 배포를 한다. 가까운 곳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조금 먼 곳은 택시를 타고 갔다가 이튿날에 버스를 타고 올라온다. 더욱 먼 지역이거나 자료가 많을 때면 차를 가지고 간다. 어떤 대대는 800부를 필요로 한다. 그럴 때는 네 사람이 가서 밤을 새워 배포를 하고 아침에 돌아온다. 우리 조에 연세가 제일 많은 사람은 62세이고 제일 적은 사람은 53세이다. 2년 동안 우리는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혹한더위(严寒酷暑)를 무릅쓰고 종래로 멈춘 적이 없다. 어떤 때에는 한주에 3번 다녀온다. 현재는 기본상 37개 향을 거의 돌고 끝부분만 남았다. 이 기간에 어떤 수련생은 발에 물집이 생기고 어떤 분은 발톱이 빠졌다. 힘들어도 원망하는 수련생이 없었다. 반대로 우리 모두는 기쁨과 위안을 느꼈다. 우리는 대법제자들이 응당해야 할 일을 했다고 느꼈다. 어떤 수련생은 말하기를, “나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여행과 같이 수월하다.”라고 했다.

당연히 첫 시작은 쉽지 않았다. 개가 짓는 것도 무서웠고 사람을 만날까도 두려웠다. 그러나 법학습과 발정념을 잘하고 협조를 잘하면 매번 순리로웠다. 몇 번이나 준비하여 농촌으로 내려가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고 했다. 우리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여 비가 내리지 말게 했다. 어떤 때에는 호법신(神)과 연계를 했다. “삼계 내의 신(神)은 모두 정법을 위해 존재한다. 당신들도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응당 우리를 도와 중생구도를 해야 한다.” 정념이 바르면 비는 금방 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달이 뜬다. 이때에는 달도 우리에게 미소를 짓는 것 같다. 그것은 더욱 우리의 중생구도에 대한 신심을 북돋워 주었다.

우리가 깨달은 것은 시골에 내려가 “9평”을 배포하면서 동시에 그곳 환경을 청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시 내려갈 때는 한 사람은 숫자를 세고 거리 교통정황을 살핀다. 나머지 사람은 마음으로 발정념하여 그곳 환경을 청리한다. 이렇게 하니 너무 좋았다. 마당에 개가 있는데 우리가 거기에 서있어도 개는 짖지 않았다. 개가 짖을 때는 입장하고 발정념하면 개는 짖지 못했다.

어떤 때에는 사람과 마주쳤고, “뭐하는 사람인가?”하고 물어오면, 바로 진상을 한다. 진상을 해서 통하기만 하면 그는 우리를 가게 한다. 어떤 때에는 삼퇴를 시킨다. 그는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어떤 때에는 자료를 다 준비해놓고 어떤 동수에게 두려운 마음이 올라와 어떻게 말해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로서도 난감하다. 그러나 당신이 힘들다 하여 감옥 안에 동수보다 힘든가? 당신이 사부님보다 힘든가? 사부님을 생각하면 정념이 나온다! 오늘 한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가겠다. 대법제자는 응당 한 사람이 열 사람을 감당해야 하고 열사람이 백 사람을 감당해야 한다. 오직 나의 염이 바르면 긍정적으로 나를 따라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일체는 순리로울 것이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작년에 한동안 공안국에서 300명의 보안 인원을 뽑아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한번은 길도 다 알아 보았다.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알려 주었다. “당신이 가려는 대대에 잠복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오토바이도 있다. 당신들은 피하시오.” 그때 나는 사부님의 한 말씀이 생각났다. “반드시 정념을 유지하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 (<<시카고시 법회 설법>>) 애초에 우리 모두는 천담(天膽)을 무릅쓰고 속세에 내려가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한다고 했다. 이렇게 큰일을 어찌 사악이 파괴하라고 하겠는가? 저녁에 우리는 여전히 가서 배포를 한다. 그날 정말 순찰하는 차가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특별히 어두웠고, 차는 밝은 쪽에 있고 우리는 어두운 쪽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오면 우리는 피했다. 그들이 가면 우리는 계속 배포를 했다. 이튿날 우리는 순조롭게 돌아왔다.

한번은 우리의 기사분이 경찰에 납치되었다. 핸드폰이 경찰 손에 들어갔다. 그 결과 몇몇 기사 동수들의 전화번호가 악인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다시 기사를 찾아 자료배포를 하자 하니 두려운 마음이 올라와 못가겠다고 했다. 누가 뒤를 따른다고 했다. 나는 그 동수에게 우리집에 가라고 했다. 여기는 따를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나는 다른 한 동수와 기사 동수와 같이 법에서 교류를 했다. 그는 우리와 같이 농촌으로 가기로 했다. 차에 앉아 우리는 즉시 발정념을 했다. 시내를 벗어나서야 기사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는 그제야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 결과 우리는 순리롭게 돌아왔다.

매번 우리는 돌아와 함께 법학습을 하고 부족점을 찾음으로써 마무리지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동수에게는 환희심이 나왔다. 어떤 때에는 법학습도 중히 여기지 않고 일이 있으면 안으로 찾지 않고 수련생을 원망한다. 기억하건대 한번은 백리 밖으로 가서 “9평”을 배포하는데, 도중에 나는 기사에게 그 대대의 길은 들어가기 힘들기에 마을 근처의 큰길에 내려달라고 알려주었다. 이때 한 동수분의 심태가 좋지 않았다. 그는 고생을 하기 싫어하여, 기사에게 목적지까지 가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말이 맞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즉시 일깨워주지 못했다. 나는 다른 동수와 자료를 메고 길 서쪽으로 향하고 그 수련생은 기사와 함께 길 동쪽으로 갔다. 멀리 가지 않아 차가 구렁텅이에 빠졌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6개 마을에 돌렸으며, 자료가 남아 두 마을을 더 돌렸다. 돌아온 후에야 차가 도중에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자료도 배포하지 못하고 친척을 찾아 차를 끌어냈다. 그는 주동적으로 안으로 찾았다. 자신에게 고생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지 못했다. 수련생이 주동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보고 나는 동수에게 너그럽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망을 하지 말고 사람과 차가 평안하기만 하면 된 것이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당시 내가 만약 그와 교류를 했다면 그분도 가능하게 자료를 지고 갔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교훈을 접수하고 이후에는 잘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친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 때문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시카고 법회에서의 설법>>) 라고 하셨다. 며칠 전에 다른 한 수련생이 팀을 조직하여 농촌에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그는 담력과 지혜가 있었다. 그러나 성숙함이 좀 모자랐다.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반드시 차근차근 해야 한다. 법학습을 많이 하고 정념을 강하게 하고 반드시 협조를 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길을 알아보고 나에게 차를 한 대 찾아달라고 했다. 또 사람을 더 찾아 하루 저녁에 전부 배포하려 했다. 나는 그의 뜻대로 했다. 그 결과 기사가 잘못 알아듣고 당일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이튿날에는 다른 일이 있어 가지 않았다. 지역 동수들이 그날 일부분을 배포했다는 것을 듣고 나는 다른 두 동수와 오늘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역 동수들을 끌어낼 것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들도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참여해야 한다. 나는 자료배포를 조직한 수련생을 찾아갔다. 생각밖으로 그는 듣자마자 화를 냈다. “누구도 나의 계획을 바꿀 수 없다. 오늘 꼭 가야 한다. 당신은 가지 말라!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가겠다.” 내가 보기에는 공산사령이 우리 두 사람 간의 간격을 보고 틈을 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좀 냉정하시오. 우리는 단순하게 자료만 배포하는 것이 아니오. 우리는 이 과정 중에서 자신을 수련해야 하는 것이요. 또 지역 수련생을 이끌어내야만 하오.” 그는 듣자마자 화를 냈다. 다른 두 수련생이 그의 계획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해석해도 듣지 않았다.

그가 간 다음 나는 안으로 찾았다. 도대체 내가 어디에서 틀렸는가? 2년 동안 “9평”을 배포했어도 종래로 동수와 이런 일이 없었다. 이것은 교란이다. 나는 서둘러 정념을 강하게 하고 사부님께 가지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동시에 나의 명백한 일면은 동수의 명백한 일면과 교류를 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둘 사이의 간격을 제거해야 했다. 나는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인원 상에서 조절을 했다. 나이든 두 사람을 빼고 그가 인정하는 동수 두 분을 찾았다. 저녁에는 차에서 계속 발정념을 했다. 자료는 순리롭게 배포되었다. 이튿날 아침 돌아오는 도중에 집과 4.5킬로미터 되는 지점에서 바퀴 너트가 빠져버렸다. 고속도로라 아주 위험했다. 다행히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가 있었다.

돌아온 후 그는 우리 집에 왔다. 우리는 간단하게 교류를 했다. 객관적인 원인은, 차가 노화되었음에도 가기 전에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전에는 몇 십 킬로미터 거리였지만, 이번에는 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이다. 주관적인 요소는, 내려가기 전에 나는 줄곳 동수의 그 상태가 교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고 인식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바로 구세력을 승인한 것이었다. 이전에 단체 활동에서 제일 근심하게 한 것이 동수간의 간격이었다. 지금 인식하기로는 이런 근심 자체가 사실 다른 방식으로 구세력을 인정한 것이다. 동수에게 집착심이 있으면 응당 법에서 바로 잡으면 되는 것이다. 사부님이 관계하시고 있기 때문에 구세력은 대법제자를 고험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관념을 고쳐야 했다. 나의 교훈이 다른 동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층차의 한계가 있으므로 타당하지 않은 곳은 동수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3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7/31/1831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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