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27일】
2008년 신운공연은 다채롭기가 비할 바 없다. 훌륭한 것이 너무 많아 어림잡아 헤아리기도 힘들다. 매번 공연을 감상할 때면 나는 내심으로 감동을 받는다. 그렇게 순정하고 부드러우며 순선(纯善)한 메시지는 나의 심령을 부단히 정화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시간만 있으면 컴퓨터 앞에 않아 보곤 했다. 한 프로그램을 보면 또 다른 한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바로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강렬한 감수 때문에 나는 신운 CD를 돌리는데 특히 적극적이었고 마음을 썼다.
속인에게 올해 신운 공연을 보급할 때 나는 먼저 나 자신의 생생한 감수를 묘사하는 동시에 공연의 상황과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이때 속인은 나의 열정적인 추천에 종종 흥미를 갖고 몹시 보고 싶어 한다. 아주 쉽게 CD를 받아들이고 예의 바르게 고맙다고 한다. 합당한 장소에서는 속인이 현장에서 보려고 한다. 같이 보면서 한편으로 정념을 하고 한편으로 프로그램 변화에 따라 소개를 하여 그들이 빨리 프로그램의 미묘함과 함의를 깨닫게 한다. (당연히 본인은 매 프로그램의 함의를 이해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접수하고 찬양한다. 어떤 세인들은 만회에서 직접 파룬궁 진상을 하는데 대해 긴장하는데 이럴 때 우리 자신은 민감하지 말아야 한다. 태연하게 대법이 전 세계에 홍전된 사실 및 진상을 그에게 들려주어 진상을 알린다. 그러면 속인은 긴장하지 않고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아울러 그들의 많은 좋지 않은 염두를 제거할 수 있다. 공연을 시청한 후에는 파룬궁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 도리어 주동적으로 파룬궁 진상을 담론한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 만회는 사람을 구도하는 공연이다. 우리는 그 의미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올해 대부분의 동수들은 사부님의 설법을 본 후 공연을 사부님께서 친히 지도하셨다는 것을 알 것이다. 공연의 의미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 공연을 보급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동수들은 아주 피동적이며 마지못해 하는 것 같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공연에 대한 감수도 그저 괜찮다고만 평가한다. 더 할 말이 없다. 이때 공연을 소개하면 효과가 좋지 않다. 속인들이 보기 싫어하거나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듣고 동수의 마음은 더 쉽게 움직이며 속인들이 공연을 잘 접수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공연 보급에 좌절을 겪는 몇몇 동수들과 교류를 한 후 나의 느낌은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1.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동수들과 교류할 때 동수들이 매 프로에 대해 세심하게 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저 프로에 대한 대략적인 인상만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 동작이 표현하는 뜻을 전혀 모르며 함의도 보아낼 수 없다. 내심으로도 깊은 감수가 전혀 없다.
모두들 알다시피 무용이란 언어이다. 그것은 몸동작을 통해 표현한다. 그러면 무용을 알아보려면 우선 표현자의 매 세밀한 동작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동시에 프로의 주제와 배경 문화를 연계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일반인도 이 무용의 대략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무용 방면에 조예가 있는 사람은 아마 다양한 각도에서 더 깊은 뜻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외 유명 인사들이 신운 공연을 높게 평가한 원인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수들이 시간을 내어 공연을 많이 보고 많이 체험해 볼 것을 건의한다. 우리 자신이 알아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어떤 동수들은 공연 시간이 2시간이 넘어 한번 보고 이해하면 끝이라고 본다. 많이 보면 법학습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긴다. 사실 그렇지 않다. 우선 우리가 공연을 보는 기점은 속인이 TV를 보며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심령을 청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순선순미한 보다 많은 정보를 세인들에게 전달하는데 있다. 어떻게 시간을 낭비한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법학습을 하는 목적도 이것을 위한 것이 아닌가? 동수여, 늘 자신이 중요하고 생각하는 일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는 무조건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원용해야 한다. 이것만이 비로소 생명의 가장 큰 승화이이며 가장 큰 선념이다.
2. 정(情)에 집착하면 만회의 순정함을 느낄 수 없어
어느 정도 음악을 애호하는 수련생이 말하건대 신운 만회의 가곡이 아름답지 못하고 완벽하지 못하다고 한다. 속인들의 음악처럼 변화무쌍하지 못하고 곡이 너무 간단하고 부드러우며, 가수가 부르는 맛도 은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국내 모 유명 민족가수보다 못하고 그저 가사만 그보다 낫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선 신운 공연 노래를 스스로 과소평가 한다. 속인에게 소개할 때면 속인도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수련생은 그럼 자신의 생각이 정확하다고 여긴다. 더불어 자신도 무용의 함의를 심도 있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운 공연을 중시하는 정도가 약해진다.
공연 노래 심지어 다른 대법 노래에 대한 동수의 이런 평가를 들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서글프기 그지없다. 어찌 그렇게 인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또 무슨 이치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속인이 현대 음악을 듣고 도취하여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수련생이 공연의 노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우연히 몇몇 속인들이 노래를 듣는 것을 보았다. 우아한 노래가 녹음기에서 들려 왔는데, 진한 정이 있었고 깊은 물처럼 부드럽고 슬퍼하며 격앙하거나 혹은 깊은 심오함이 있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의 그런 정을 체험하게 했고 심지어 대뇌 속에는 노래 가사 속의 광경이 펼쳐졌다. 속인들이 빠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찰나 대법 노래와 속인 노래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대법 노래가 체현하는 것은 부드럽고 순정하여 정이란 그런 맛이 없다는 점이다. 있는 것은 오직 자비이다. 그러나 속인은 정속에 파묻혀 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제자가 쓴 법회원고 평론과 같았다.
“화려하거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구절이 없었다. 실재(實在)적이고 준확(準確)하며 깨끗하고 사람의 정(情)을 갖지 않는 문장은 속인이 능히 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련인의 내경(內境)은 청정(淸靜)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숙』)
이 한 단락 법 속에서 나는 대법제자가 창작한 노래도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사람의 정이 없으며 사람의 정이 없는 것이야말로 더욱 순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야만 세인들의 본원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만 사람을 구도할 수 있다.
다시 되돌아와 우리 신운공연 노래를 이해해보자. 가수가 부르는 것은 중생들이 미혹에 빠진 것에 대한 연민이며, 중생들이 진상을 모르는 긴박함으로 자신의 좋지 않은 요소가 없었다. 감탄과 초조 중에 체현한 것은 완전히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이다. 이런 경지는 속인의 가장 훌륭한 가수라 해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동수들이 후천적인 집착과 관념을 내려놓고 신운 공연 노래를 세심하게 음미하기 바란다. 내 생각에 집착을 내려놓고 들을 때면 반드시 감수가 다를 것이며 신운 공연의 의미를 보다 중시하게 될 것이다.
이상은 본인이 신운공연을 널리 알리는 데서 얻은 감수와 생각을 적은 것이다. 목적은 하나인데 우리 모두 신운 공연을 중시하고 대법제자의 사명을 완수하자는 것이다.
문장발표: 2008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7/27/1828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