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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과 자연스럽지 못함

글 / 쑈붜(小波)

“삼퇴”할 때 가명을 작명하는 문제에서 나는 몇몇 동수와 개인적인 이해를 교류하였다. 당시 동수분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인식으로 인해 그 동수의 삼퇴명단이 되돌려 왔다. 동수분이 나를 찾아와 명단이 되돌려 왔다고 설명을 할때 나의 마음속은 몹시 부자연스러웠다. 당시 마음속으로 수련생을 배제하였다. ‘이후에는 나혼자서 삼퇴명단을 발표하겠다. 다시는 명단을 주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것은 진심으로 동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나온 일념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속은 왜 부자연스러울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는가? 안으로 찾아 내려갔더니, 자신의 깨달음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깨달음을 인정받기를 집착했다. 자신의 깨달음이 충격을 받았을때 이성적으로 안으로 찾지 않고 법리상에서 진정으로 제고하려 하지 않고 도리어 부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배제를 한다. 승화할 수 있는 기회를 밀어낸다.

이것은 나로하여금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 했다. 협조인 회의 에서 나는 한 가지 건의를 했다. 당시 여러분들은 모두 좋다고 느꼈다. 정체를 형성하는데 이롭다고 했다. 두세 번의 토론을 거쳐 아직 실천되지 않았을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도 말할때 태도는 처음 건의를 할때와 달리 상화롭고 자비롭지 못했다. 또 몇 번의 회의를 거치는 나의 말투는 나로 하여금 스스로 놀라게 했다. 나는 그렇게 충동하였고 정서속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감춰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나의 의견이 실천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이 산생되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깨달음과 작법을 너무 집착했고 자신의 깨달음과 작법이 인정받기 바랐으며 채용되기 바랐다. 원래 그런 원망과 부자연스러운 것은 자신을 집착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에서 산생했다. 나는 왜 자신의 깨달음과 작법을 집착했는가? 진정으로 제고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오직 자신의 관점을 내려놓고 실질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관용하는 것이 진정으로 더욱 제고하는 것이 아닌가!

문장발표 : 2008년 7월 1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7/10/1817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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