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2008년 7월15일】 나는 한 동수의 문장을 보았다. 그는 중공 사당의 소굴에서 박해를 받았다. 박해에 직면하여 수련생은 사악이 자신의 어떤 공간을 뚫었는지 심사숙고했다. 마지막에 하나의 공간을 찾았는데, “바로 그가 사악들의 환경 속에서 아직 의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무엇을 듣거나 보았을 때 바로 사악들이 또 나한테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 마음을 버린 후에 사악들이 다시는 그를 박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 역시 늘 중공 사당에게 납치되어 노교소에 감금되었고, 역시 사악들의 잔인무도한 박해를 받은 감수가 아주 많다. 나도 한 가지 체험이 있는데 “바로 사악의 표현에 직면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의지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만약 집착으로 무엇을 보았다면 예를 들어 다른 수련생이 사악에게 어떻게 되었다. 나는 어떤가, 혹은 집착으로 사악이 나에게 어떠어떠한 말을 한다면? 자신은 꼭 번거로운 일에 부딪치게 되며, 사악이 말한 게 역시 사실로 만들어진다. 우리 모두 몇 년 동안 수련하였기에 능히 이에 대해 인식 할 수 있다. 사악들은 모두 우리들의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을 대처한다. 절대로 사악들이 어떻게 한다고 생각하면 바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사악이 어떤 구실로 수련생이 납치되어 구치소에 갔던 지를 막론하고, 그 수련생이 정념을 가지하면 반드시 돌아올 수 있다. 만약 착오적인 염이 있다면 바로 사악에게 불법으로 판결 받지 않으면 노교소로 가게 된다.
위에서 말한 것은 모두 사악의 박해시 사악에 직면하여 절대로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체험이었다. 우리들이 소굴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역시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늘 사악이 어떠어떠할 것이라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사악이 어떠어떠하게 하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사람의 마음이 올라온다. 내가 문장을 쓰면서 나 역시 사부님의 말씀을 응용한다. “보고도 보지 못한 듯하니, 미혹되지 않노라. 듣고도 듣지 못한 듯하니, 마음이 어지럽지 않노라.(홍음 도중)
나는 또 다른 동수의 한편의 문장을 보았다. 그는 종래로 “사악이 어떠하게 할 것이라는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 역시 같은 방법이라고 나는 인식한다. 사악들이 소위 모두 대법을 교란하고 박해하지만, 우리가 사악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말을 전하는 이것이 바로 사악을 도와주는 게 아닌가? 이것이 사악이 수련생을 교란하는 것을 도와주는 게 아닌가? 또 명혜망 7월 12일 수련생이 쓴 《석가장시 “7월 4일”의 사건에 대한 인식과 반성에 관하여》란 문장을 보고 나는 더욱 깊은 인식을 가졌다. 우리는 절대로 사악이 어떠어떠하게 하련다는 말은 전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출발점에서 사악의 안배에 따라 전하였던지를 막론하고, 여기에는 모두 사악의 안배가 포함되었다고 인식한다. 가상하여보면, 우리들이 사악들의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능히 마치 못들은 것처럼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정말로 대단하다. 만약 자신에 대한 교란이 있을 때,《생사를 놓고, 태연하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썼다. 이 문장의 동수처럼 교란을 배제하고 무엇을 하려면 계속 무엇을 해야 한다.
많은 말을 해도 모두 우리 수련 중의 말이다. 만약 우리들이 평소 줄곧 모두 아주 안전에 주의했다면, 당시 무슨 말을 들었을 때 그 어떤 마음을 움직여 또 동수들에게 주의하라고 알려줄 필요가 없다. 만약 우리 모두 평소 능히 발정념을 중시하였다면, 그 사악이 어떻게 하려고할 때 또 발정념을 가강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역시 우리들로 하여금 아주 피동에 처하게 한다. 사존께서는 “”하나의 부동(不動)은 만 가지 움직임(萬動)을 제어하는 것이다.” (미국 중부 법회설법) 지금까지도 우리의 아직 일부 사람들은 일에 부딪쳤을 때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못하고 있다. 아울러 무엇을 들었을 때 도처에 돌아다니면서 전할 것이다. 사존께서는 《정진요지 (도법)》에서 “제자로서 마난이 왔을 때 진정 능히 태연하게 움직이지 않고 혹은 능히 마음을 부동한 층차에서 당신에 대한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게 할 수 있다면 바로 관을 넘는 것은 쉽다.” 나는 가상으로 우리들에게 그 어떤 공간에서도 사악이 뚫을 곳이 없다면 만약 우리들이 사악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능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역시 사악의 안배도 곧 해체된다.
그 외, 우리는 동수들의 발정념에 주의해야 한다. 안전에 주의해야하고 역시 사악에게 어떻게 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가히 이전의 교훈을 말할 수 있으며, 가히 법공부의 체험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좋지 못한 것을 가지고 갈수 없다.
이상은 나의 인식이므로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8년 7월 15일
문장분류:[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7/15/18207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