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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하는 것을 개인수련과 용해해야

글 / 호북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9일] 예전에 진상할 때 우리는 듣지 않거나 믿지 않으며 심지어 비난하거나 악담을 퍼붇는 그런 세인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저 유감을 지니거나 원망을 품은 채 떠나 버리고는 하였다. 사존님의 설법은 나를 도와 이런 나쁜 요소와 나쁜 물건을 없애버렸다. 지금 또다시 이처럼 진상을 알지 못하면서 또 진상을 거절하는 세인을 만나면, 나는 더이상 그들을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금후 대도태 중에서 가능하게 부딪칠 위험이나 예상할 수 없는 일 때문에 마음속에는 자비가 생겨났다. 때문에 이번에 행한 진상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나도 급히 자리를 뜨지 않으며 사람 구하는 일을 다그치려고 한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 앉히고 사존님의 《2008년 뉴욕법회 설법》을 여러 번 읽었는데, 특히 두 번 낭독한 후, 사존님의 간곡한 지시에 비추어 보면서 나는 자신의 법공부가 깊지 못하여 인식이 높지 못하고, 잘하지 못한 원인으로 하여 심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또한 사람을 구하는 긴박함과 중대한 책임감을 심각하게 감수하였다. 여기에서 나는 자신의 조그마하고 천박한 체험을 써 내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동수들의 도움과 지적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예전에 나는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유할 때, 상대방이 내가 한 말을 인정해주고 접수하면 나는 기뻐하였고, 만약 상대방이 믿을 듯 말 듯 하면서 두리뭉실하게 명확한 태도표시를 하지 않으면 나는 곧 유감스러워 하고 몹시 불쾌해 하였다. 어떤 사람은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악담을 퍼붓거나 위협하고 욕을 한다. 나는 곧 그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 이런 사람은 그야말로 좋고 나쁨도 모르니 장차 도태되어도 알바 아니라고 여겼다. 나의 사상관념 중에 이렇게 나쁜 속인의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존님의 설법을 공부한 후 도리를 깨닫게 되어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법을 실증하는 것과 사람을 구하는 것은 또한 우리 자신이 수련하고 제고할 수 있는 기회이다. 왜 우리가 고생스럽게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어떤 때는 순조롭지 못한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아 보면, 어떤 때는 단순하게 “나는 당신을 구하러 왔다”는 이러한 심리상태를 가지고 사람을 구한다고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홀시하였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알든 모르던 간에 응당 모두 접수해야 하고, 모두 우리에게 감사해 해야만 정상적이라고 여긴다. 가령 상대방이 듣지 않고 이해해 주지 않거나 일시적으로 접수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좋고 나쁨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사존님 설법을 학습한 후 나는 알게 되었다. 만약 관념이 형성되고 아울러 아래로 미끌어져 가는대로 방임한다면 쉽사리 자신을 우월하다고 여기는 등의 속인 마음을 야기시키게 되어 듣는 사람에게 저촉하는 정서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사존님은 말씀하셨다. “당신들로 말하면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도하는 동시에 또한 수련하는 사람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사람 마음이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로 하나의 신이다. 신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신은 수련할 수가 없다. 오직 사람의 몸을 갖고 있어야만 비로소 수련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수련이라고 한다.” (《2008년 뉴욕법회 설법》) 사존님의 설법은 미로에 빠진 나에게 길을 알려준 것과도 같이, 나로 하여금 법을 실증하는 것과 사람을 구하는 것은, 동시에 자신도 수련할 수 있는 도경(途径)이라는 법리를 알게 하였다. 다시 말해서 법을 실증하는 것과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우리 수련의 기회와 방식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는 우리가 제고할 수 있는 도경(途径)이자 기회인 것이다! 정법의 이 최후 시각에 우리는 다만 법실증과 사람 구하는 일을 개인수련과 긴밀히 한데 용해시켜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제고될 수 있고 원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온갖 방법을 다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구하며, 될수록 진상과 선념을 세인들 귀속에 넣어주고 마음속에 담아주어 다음 일보의 구원을 위해 기연을 다져 주어야 한다. 우리는 가급적 시기를 다그쳐 간단명료한 언어로 다 알고 있는 “하늘이 내려 보낸 신기한 바위”, “쓰촨대지진 가운데 대법제자 및 그 가족들이 평안무사했던 일”, “파룬따파 하오, 3퇴하여 평안을 지키자”는 등의 중대한 정보를 상대방의 귀에 보내주고 마음에 담게 하며, 몇 마디라도 말할 수 있다면, 다음 일보의 구원의 기연을 다져주는 것이다. 실천을 통하여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한 번 말해 탈퇴에 성공할 수 없는 세인에 대해서는 이 최후의 몇 마디를 더 많이 말하면 일반적으로 아직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상대방의 정서 반응에 따라 “시기”를 잘 장악하여 얼마를 말할 수 있으면 얼마를 말해야 한다. 상대방은 보통 모두 평화적으로 묵묵히 접수하고 들어준다. 문제는 우리의 이 마음이다. 상대방이 아직 진상을 잘 모르는데다가 또 저촉 정서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여전히 말해주려 하는가 안 하는가, 최후까지 그를 구원하려고 노력하는가 안 하는가는, 이후에 다른 동수들이 인연이 닿아 이 사람에게 진상을 알려줄 때,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를 다져주게 되는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7/9/1817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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