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법제자 무진
[명혜망 2008년 7월 2일] 최근 일부 동수들과 접촉하면서 함께 협조하는 중에 자신의 일부 사람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폭로되어 나왔다. 처음엔 스스로 발견하지 못했는데, 단지 자신의 상태가 예전처럼 그렇게 상서롭지 못한 것 같은 느낌만 있었다. 일에 부딪치면 더욱 조급해하면서, 자비는 자신과 더욱더 멀어짐을 느꼈다.
출근하는 길에 “자비는 신의 영원한 상태이다.(신운만회의 가사)”가 갑자기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렇다! 신이 문제에 부딪치고 모순에 부딪치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결하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활연히 깨달았다. 대각자는 자비로 중생을 가르친다. 자신이 사람의 사유속에 빠졌으며, 낮은 층차의 사유속에 빠진 것에 대해 부끄러웠다.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수련인은 모순에 부딪치고 문제에 부딪치면 우선 먼저 자신을 찾아보아야 하며, 모순속에서 자신의 그 마음을 실질적으로 닦아야 하는데, 이 마음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일에 부딪치면 언제나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 사존은 우리들이 무사무아(無私無我) 정법정각의 생명이 되도록 수련되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나는 이 점에서 오히려 한 번 또 한 번 매우 많은 마음을 수련하는 기회를 놓쳤다. 자신이 수련의 길에서 무기력하여 부끄럽다. 동시에 일에 부딪치면 단지 다른 사람만 지켜보지 말도록 스스로 훈계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한무더기의 결점을 보아내고 유독 자신에게서는 찾지 않는다. 사실 내가 동수의 결점을 보았을 때 우선 먼저 자신과 대조해야 하며 자신을 찾아보고야 하는데, 이것이 수련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을 개변시키려 하면서 자신을 개변시키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낡은 우주의 위사위아(爲私爲我)가 아닌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존께 향을 올렸다. “자비는 안 좋은 일체를 용해시켜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할 수 있도다” (《홍음2》, )가 나의 머리속에 들어왔다. 사존의 홍대한 자비에 감사드린다. 한 번 또 한 번 제자의 손을 잡고 제자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향해 가고 있다……
자비는 일종의 경지이다. 이것은 대법의 용련중에서 부단히 승화하고 부단히 제고하는 것이다 – “자비는 신의 영원한 상태이다!”
문장발표 : 2008년 7월 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7/2/1812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