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광동 령남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6월 22일] 명혜망에 발표된 교류 문장들은 모두 대법제자들이 오랫동안 대법을 실증하면서 체험한 심득으로 얻기 어려운 우수한 작품들이다. 특히 《명혜주간》은 이런 우수한 작품 중의 우수한 작품이다.
대법제자로서 만약 장기적으로 《명혜주간》을 견지해 본다면 사실이 증명한 바와 같이 이런 수련생은 곧 법리가 똑똑하고 문제를 전면적으로 보며, 정법 진행을 따라 갈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사이트에 들어가는데 편리하고자 “매일 명혜” 중 문장의 제목만 한 번 훝어 본 뒤 개별적인 문장을 보지만 《명혜주간》 전부는 기본상 보지 않는다. 이같이 제목에 근거하여 내용을 보는 방식엔 결함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어떤 문장은 아주 잘 썼지만 제목이 아주 평범하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주간을 선택 편집하는 수련생은 “매일 명혜”중의 매 편 문장을 모두 보아야 하고 어떤 것은 심지어 반복적으로 보고 수개한 다음에야 나중에 십 몇 편의 그런 문장을 선별하여 내온다. 다시 말해서 명혜동수들은 우리를 도와 이런 것을 다 잘해 줌으로 우리가 다시 시간을 허비하면서 고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어떤 수련생은 “나는 사부님 설법만 보고 동수의 문장은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런 수련생에게는 하나의 불복하는 마음 ㅡㅡ 질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한 대법제자로서 어찌 이런 나쁜 마음에 가로 막힐 수 있는가?
어떤 수련생이 《명혜주간》을 보지 않는 것은 사이트의 동수의 관점과 자기 견해가 흔히 맞지 않기 때문에 아예 보지 않는다. 동수여, 어찌하여 이렇게도 부동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단 말인가? 흉금이 고만한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동수의 관점과 부동하다면 그래도 자신을 많이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수련생이 《명혜주간》을 보지 않는 구실은 사업이 바쁘기 때문이란다. 이는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정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칼을 가는 것은 장작 패는 일에 지장주지 않는다.” 고 누구도 내가 날마다 장작을 많이 팬다 해서 칼을 갈 시간이 없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수련생이 《명혜주간》을 보지 않는 것은 자신이 대오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라 하는데, 정법 수련의 정체적 인식에 대한 차이가 너무나 멀다. 사실 이런 수련생은 더욱 마땅히 더 많이 보아야 하며, 다그쳐 따라와야 한다.
물론 대다수 수련생은 대부분 《명혜주간》을 본다. 비율은 높지 않지만 인수가 적지 않은 이런 수련생들은 《명혜주간》이란 이 정토를 소중히 여기기 바라며, 보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도 실제적인 손해이다!
문장발표 : 2008년 6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6/22/1807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