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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향해 찾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5월 21일] 2008년 이래 악경은 우리 지역의 여러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였다. 동수 갑은 납치당한 그날밤에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였다. 나는 처음에 그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동수 갑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가 도대체 돈이 필요한지 아니면 인력이 필요한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줄곧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발정념을 하였다. 발정념할 때 나는 교란이 대단히 크다고 느꼈다.

이튿날 내가 동수 갑의 집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과연 동수 갑이 납치를 당하였으며 집도 수색당했다는 것이었다. 동수 갑의 가족들이 나에게 알려주기를, 공안국에서 이미 나를 주의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동수 갑의 핸드폰은 이미 공안국의 악경에게 빼앗긴 상태이다. 동수 갑의 핸드폰에는 내가 과거에 전화했던 내역과 나의 전화번호가 있으며 원하면 나의 집 주소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직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게 사부님의 요구대로 이번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 이 박해는 우리 현지 대법제자 정체를 향해서 온 것이다.

그후에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이 소식을 같은 단위에 출근하는 동수 을에게 알려주었다. 동수 을은 나의 상사이다. 우리는 함께 수련의 길에서 매우 간고하게 한 단락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그에게 꼭 발정념을 하라고 알려주자 그는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조용하게 팀의 기타 관리자들과 회의를 열어 나를 면직시키려 하였다. 그것은 내가 폭로되면 아마 팀에 연루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팀의 발전을 위해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의견은 기타 두 관리자의 지지를 얻었다. 그후 그는 한 부주임(속인)을 파견하여 우리 집에 와서 나에게 출근하지 말기 바란다고 통지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대신할 사람을 이미 물색해 놓았다.

나는 부주임에게 말하였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수련은 매우 엄숙한 일이다. 만약 내가 당신의 요구에 동의한다면 그럼 나는 이번 박해에 참여한 것과 같다.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면 무엇이 온다. 나는 그와 그의 일체를 훼멸할 수 없다. 현재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장래에 그는 알게될 것이다.” 부주임은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그를 찾아가 상의하라.”

나는 마음속으로 견결하게 생각하였다. ‘나는 오직 사부님이 배치하신 길을 걷는다.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모두 사부님이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정법중에서 수련하는 것이며 중생을 구도하는 길이다. 내가 아무리 보잘것 없다고 해도 대법을 수련하기만 하면 사부님의 홍대한 배치 가운데 한 개 입자이다. 그러면 누가 나를 건드리려고 한다면 근본적으로 사부님의 배치를 움직이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부님의 정법을 교란하는 것은, 이런 나쁜 일을 한 일체 생명으로 하여금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경지로 몰아가게 한다. 대법제자가 잡착이 있다는 구실로 사악이 마음대로 사부님의 배치를 교란하고 파괴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나는 견결히 승인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자 동수 을과 그 몇 명 관리자의 “배치”는 마치 유치원의 어린 아이가 나무쌓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유치하고 가소롭게 느껴졌다.

그 결과 나를 대신하여 선택된 사람이 와서 출근하려 하지 않아 나도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 출근하였다. 그 기간에 동수 을은 줄곧 나를 피하였다. 나는 그제서야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았다. 왜 나는 이런 일에 부딪치고 있는가?

나는 자신에게서 한 가지 “중의(重義, 교정주 – 의리를 중시함)”의 마음을 찾았다. 이 “의(義)”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의 것으로 이는 곧 사람의 것이다.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요소이긴 하지만, 대법수련 중에서 과분하게 의리를 중히 여기는 것은 장애이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그 뉘가 지혜 크다고 말하는가 정(情) 속에 건곤이 춤을 추네” (《회수(回首)》) 나는 장기적으로 이 유가가 제창하는 “의(義)”를 매우 진심으로 믿었다. 심지어 내가 대법을 믿는 기점도 모두 “의(義)”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믿고 또 믿어도 “정 속에 건곤이 춤을 추는” 것이었다.

나자신이 특별히 “의(義)”를 중시하기에 동수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였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동수 을의 사상과 행위가 “불의(不義)”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특별히 그가 처음 대법수련의 문에 들어섰을때 자주 생명의 위험에 부딪쳤다. 나는 개인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대법수련인의 정념으로만 그를 지지하였다. 이 과정중에서 나는 사부님이 그를 도와 이 거대한 마난을 처리해주신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걸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매우 똑똑히 알고 있다. 만약 그가 악경에게 교란받거나 혹은 병업의 형식으로 교란당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를 도왔을 것이며 그와 함께 걸어나갔을 것이다. 유독 “의(義)”와 불의(不義)”의 문제에서 나는 한꺼번에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기 매우 어려웠으며 진정으로 그를 대신하여 생각하였고 그를 도와주었다.

이 한 단락 시간에 나의 머리속에는 줄곧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나의 법에 대한 이해는 이러하다. 우리는 위대하다. 그것은 우리가 관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용하기에 우리는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사부님은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다스릴 수 있다. 특무도 다스릴 수 있다. 이렇게 큰 흉금으로……”

나는 생각하였다. ‘사부님은 이토록 중생을 소중히 여기신다. 사부님의 제자로서 나는 이 일에서 동수 을을 밀어내지 말았어야 한다. 오직 정법이 끝나기 전이라면 매개 생명은 아직도 기회가 있다. 심지어 반면으로 나아간 사람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이렇게 생각되자 나는 차츰차츰 많은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이 기간에 사부님도 가족의 사람들을 이용하여 나를 일깨워주었다. “당신은 당신의 그 보답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동수의 입을 빌어 나의 문제를 점화해주셨다. “당신과 그는 학우이다! 학우로서 어떻게 당신에게 이토록 상처를 줄 수 있는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내가 생각나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당신을 이렇게 대한다!” 사실 나는 종래로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사람에게 잘 대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람에게 잘 대하는 것은 조건이 있다는 것을 점화하신 것이었다. 나는 보답받는 것을 요구한다. 금전의 보답이 아니면 정(情)의 보답이었다……

나는 더욱더 자신이 매우 “정의(情義)”를 중시하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관건적 시각에 진정으로 법 가운데서 중생을 선하게 대하고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이 마음을 내려놓고 동수 을에게 메시지 몇 개를 보냈다. 내가 그를 매우 소중히 여기며 우리 사이의 이 연분을 소중히 여긴다고 알려주었다…… 동수 을은 여전히 나와 정면으로 교류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내가 자세히 조사해보니 자신은 동수에게 아직도 요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과거에 나는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면 동수의 문제에 대해 불평하였다. 심지어 수련생을 찾아가서 그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표면으로는 다같이 제고하려고 의도하였지만 실제상 아직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언제나 자신이 좀 손해본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한다.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한다.

이날 오전에 발정념한 후 나의 마음속은 줄곧 흐뭇하였다. 점심식사 시간에 동수 을은 미팅에서 나를 면직시키는데 동의한 그 관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며칠전에 나는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나를 보면 좀 어색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흐뭇하게 있으며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게 되자 그도 흐뭇하게 나를 보았다. 마치 일체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중에 나는 앉아서 밥을 먹었다. 무의식중에 웃으면서 머리를 들었더니 동수 을이 보였다. 그도 처음엔 어색해 하였지만 나는 그때 이미 완전히 그 어떤 불평이 없었다. 그는 걸어와서 나의 맞은편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이때 그는 나에게 그의 당시 그런 두려운 마음을 말하였다. 그런 압력은 나도 이해할 수 있다. 수련은 이러하다. 누구나 모두 지름길로 갈 수 없다. 우리가 걸은 것은 이미 지름길이기때문이다. 걸어나온 많은 대법제자도 모두 두려운 마음과 집착을 내려놓는 간고한 과정을 거쳤다. 사실 오직 사부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넘길 수 없는 관이 없다. 나와 동수 을이 이 일보에 온것도 모두 사부님의 배치이다. 이후의 수련의 길에서 나는 나의 수련생을 어떻게 소중히 여길 것인가 하는 것을 더욱 잘 알게 되었으며, 우리는 함께 세간에서 법을 얻은 이번의 연분을 소중히 할 것이다.

이 한 단락 시간에 나는 정말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내심으로 법에 대한 믿음이 매우 든든하였다. 나는 “안을 향해 찾는다”는 자체가 일종 매우 강대한 힘이며 이런 힘은 무사(無私)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동수의 문장에서 한 가지 사소한 부분을 통해 나는 매우 큰 진감을 받았다. 수련생은 문장에서 말하였다. 어느 날 밤, 그가 잠에서 깨어났다. 사부님의 법신이 그를 위해 신체를 청리하신 후 그를 향해 자비롭게 웃으시더니 사라지셨다. 그때 나는 갑자기 사부님의 자비심을 깊이 느꼈다. 중생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고난을 감당하셨지만, 그러나 또 그토록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으신다!

문장완성 : 2008년 5월 19일
문장발표 : 2008년 5월 21일
문장수정 : 2008년 5월 21일 02:53:11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5/21/17880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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